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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탔다

모든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by 민들레


버스를 탔다.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기사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물어 확인한 후, 안내방송이 나오겠거니 하고 무심히 앉아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알림 방송이 나오지 않아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이미 지났다고 한다. 당황했지만 버스를 내려 반대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하는 말 "그냥 계세요. 이 버스가 돌아서 다시 거기까지 가요." 그러니까, 목적지를 한참이나 지나왔다는 얘기다. 도중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안내방송을 놓칠정도로 집중한 건 아니었다.


이 버스는 웬일인지 여느 버스와 달리 안내방송을 하지 않았다. 전광판에 자막으로 하차역을 알리고 있었지만 시종일관 전광판만 보고 있지 않고서야, 이 노선버스를 처음 타보는 나 같은 사람은 목적지를 놓치기 십상일 것 같았다. 아마 근처 시내와 주변 마을을 순환하는 일종의 마을버스여서 주로 길을 아는 승객들이 이용하기에 안내방송에 신경을 안 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지를 한참이나 놓쳐버린 나는 속이 상하고 난감했다. 하지만 가능한 감정을 석지 않은 목소리로 기사분에게 "방송 좀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기사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방송해요."라고 맞받았다. 나는 버스 앞좌석에 앉아있었으므로 룸미러에 비친 기사분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누군가 가만히 건드리기만 해도 화를 툭 터트리려고 기다리는 사람 표정이었다. 대체로 오늘 같은 경우, 자칫 기사와 입씨름할 수가 있다. 안내방송을 왜 안 하느냐, 언제 해줬느냐 등, 하지만 나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첫째는 목적지를 놓친 내 불찰도 있으며, 둘 째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도착했어야 할 곳을 다시 30분 정도를 더 가기 위해 버스에 앉아있는데, 마음 안에서 못마땅함과 속상함이 작은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와 꼬물거렸다. 꼬물거리는 연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다. 기사분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연민의 마음이 일어났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고 마음이 불행하면 저런 얼굴일까. 안내방송은 여전히 없었다. 나는 두어 번 더 기사에게 목적지를 확인했다. 아저씨는 조금 미안했던지 말투가 처음보다는 부드러웠다.


이 글을 쓰면서 약간 후회되는 것은, 버스를 내리면서 기사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한 점이다. 목적지에 잘 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면 기사분 마음도 가벼워졌을 테고,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표정도 조금은 밝아졌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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