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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Aug 26. 2021

사진

좀 전에 점심을 먹고 오면서 하늘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초록이 또 예뻐서 찍었습니다.  그러다 꽃이 예뻐서 또 찍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동안 찍는 사진이 작게는 10장 많게는 몇 백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시간이 나면 혼자 훌쩍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그런 날은 몇 백장씩 찍어와서는 밤새도록 찍은 사진을 보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되곤 하지요.

그렇게 찍은 사진이 어느 순간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인물 사진도 그렇습니다. 대부분 만나면, 잠시라도 현실에서 좀 벗어나는 공간에서는 사진을 찍습니다.

카페에서도 공원에서도, 또 공연장에서도, 하다못해 누구네 집에 모이면 그때도 사진의 홍수 속에서 날마다 사진을 정리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을 받으며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찍은 다신을 다시 보는 일은 잘 없습니다.

어쩌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요즘은 시대가 좋아 '당신의 1년 전입니다'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면 '아,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라며 그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사실 나는 이 친절한 안내 때문에 SNS에 사진을 많이 올리기도 하고, 또 사진을 많이 찍기도 합니다.

추억은 늘 그리워서 사진으로나마 소환할 때가 행복하거든요.


앞에도 말했지만 나는 사진을 무척 많이 찍는 편입니다. 셀카도 많이 찍고 함께 여행을 하거나 근처 가까운 곳에 나들이 가면 대부분 사진은 제 담당입니다. 어느새 저는 사진사가 되었고 가짜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사진 찍기를 즐기다 보니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또 그 사람의 행동이 예뻐 보이면 무조건 셧터를 누릅니다.

대부분이 좋아하는데 더러는 영혼을 팔린다고 싫어하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니 당연히 모두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습니다.


내가 사진을 많이 찍기 시작한 건 요양원에 계신 친정엄마 덕분이었습니다.

어쩌다 면회를 가면 엄마는 날마다 사진첩을 꺼내십니다. 젊은 시절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간 사진, 가족들과 찍은 사진, 제주도에 계신 큰외삼촌과 막내 외삼촌 댁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 젊은 시절 통통하게 살 오른 사진, 엄마의 얼굴에 함박꽃이 필 때는 바로 그 사진첩을 꺼내보여 주실 때입니다.

옛날에 누구랑 어딜 갔고, 무슨 일이 있었고, 이 사람은 누구고, 어디에 살고.....

기억의 행간을 오고 가는 가운데서도 지난 일들을 또렷이 기억해 낼 뿐 아니라 그 순간은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엄마를 보고, 나의 현재를 미래에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 보니 풀꽃도, 꽃도, 나무도 하늘도 찍게 됩니다. 작은 꽃들을 찍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고, 또 그 작을 꽃을 찍으려 꿇어 엎드려 겸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앵글 속에 들어오는 사물이 모두 가슴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이 순간이 미래에 더듬어 볼 수 있는 더 행복한 시간이 될 거라 확신하며 나는 오늘도 셧터를 누릅니다. 곳간마다 가득 찬 사진을 1년에 한 번도 꺼내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먼 훗날 나도 엄마처럼 요양원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면 그 사진들을 꺼내서 보게 될 테지요.


그래서 오늘을 더듬어 기억하게 될 테지요. 젊은 날의 나를 돌아보며 순간 착각의 늪으로도 빠져 들 테지요.

사진은 내게 찍을 때나 찍힐 때나 볼 때나 행복입니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 붉어지는 하늘을 찍으려고 셧터를 누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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