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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Nov 02. 2021

엄마의 의자

엄마의 의자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부터 교실 맨 뒤 구석자리에 의자 하나가 새로 놓였다. 엄마의 의자였다.
 
  마흔둘에 8남매의 막내로 낳은 딸이 국민학교 1학년 때 골수염을 진단받았다. 돈이 없어 큰 병원에는 가지 못하고 영주의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하지만 의료보험도 되지 않던 시절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난한 살림에 병원비도 낼 수 없었던 아버지는 가슴에 이는 통증을 깨물며 나를 퇴원시켰다. 오래전 한약방을 하시던 할아버지 밑에서 한약 조제법을 배웠던 터라 그때도 보약 정도는 재료를 사서 마을 사람들에게 지어주곤 하셨는데 민간요법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퇴원 후 민간요법에 기댈 요량이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퇴원한 나는 한동안은 하루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뼈와 뼈 사이의 고름을 거즈로 닦아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다. 어린 딸이 통증을 이기지 못해 악을 쓰고 우는 모습이 가장 고문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그때의 기억을 불렀었다.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다 보니 완전히 고름을 말리지 못했는지 수시로 상처가 덧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 년의 반은 학교엘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상태가 심할 때는 선생님께서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셔서 가르쳐 주고 숙제를 내기도 했다. 워낙 내가 학교에 가겠다고 조르니 엄마가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그렇게 성적이 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생님만의 방법을 선택하셨다. 상처가 덧나 코끼리 다리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방문을 열어놓고 학교 가는 친구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를 부러워하다가 나도 학교 가겠다며 떼쓰는 걸 말리지 못한 엄마는 결국 굽은 등에 나를 업고 물 건너, 고개 넘어 학교에 갔다. 땀으로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엄마가 맨 뒤에 앉아 수업이 마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야윈 몸을 지탱해 준 건 성글고 오랜 나무 의자였다. 그 자리에서 떠드는 아이를 조용히 타일렀고, 아픈 아이의 이마를 짚어주며 엄마는 의자와 낯을 익히고 체온을 나누었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학교 앞도 못 가본 까막눈의 엄마는 그 의자에 앉아서 국어를 배우고, 산수도 배우고 음악시간에는 같이 젓가락 노래도 부르며 눈을 깨웠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넓은 배려와 딸에 대한 엄마의 교육열, 학교에 대한 나의 애성이 그 시간들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한 자 한 자 깨쳐 나갈 때마다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평소 요양원은 감옥이라던 엄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나마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도착해 수술은 받았으나 한 번 손상된 길을 잃어버린 뇌의 회로는 복구되지 않았다. 새색시처럼 수줍어하고 곱기만 하던 엄마는 차츰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말을 두 번만 해도, 엄마가 하려는 걸 못하게만 해도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기처럼 떼를 쓰며 울었다. 뇌수술 후유증이라고 했다. 더 무서웠던 건 순간순간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해 쓰러지는 거였다. 시대의 흐름이 어쩔 수 없는 건지 저마다의 핑계로 엄마를 집에서 모실 수 있는 형제는 돌아가신 큰오빠를 제외하고 7남매 중 아무도 없었다. 사실 모시고 싶어도 화내며 떼쓰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완전히 예전과는 다른 엄마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도 엄마가 화를 낼까 봐 말을 못 했으니 말이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병으로 인정하지 못했다. 먼눈으로 보면 보이는 것을 가까운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구순이 가까워 오는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반은 강제로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고 난 후 엄마의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내가 쓰다가 엄마에게 준 낡은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그곳에 쓰인 글씨를 보는 순간 우리는 말문을 막혔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수없이 써 놓은 이름 오 인순, 엄마의 이름이다. 오래전 눈이 밝아진 엄마가 써 놓은 당신의 이름.


 40여 년 전 그때 그 성성하고 낡은 의자에서 배웠던 것들이 오랜 시간의 여백을 지나 선명하게 내려앉아 엄마의 낙관이 되어 웃고 있다. 우리는 한 권의 노트와 볼펜을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앞으로 어떤 글을 그곳에 쓰게 될까? 언젠가 노트에 써진 오늘은 월요일, 오늘도 월요일, 또 오늘도 월요일...... 하던 엄마의 글이 생간 난다.    

말씀은 없었지만 우리를 만날 날이 더디 가고 있음을 엄마만의 표현으로 써 놓은 것 같다. 코로나19 바리어스로 인해 엄마의 맨살을 만져본지가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그리고 일요일을 기다리는 엄마의 월요일은 언제쯤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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