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는 손재주가 좋아 각종 리폼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하고, 손으로 만드는 건 못 하는 게 없다.
외숙모와 조카 사이로 만났지만 인연이란 게 쉽게 촌수가 정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아직은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은 점심을 먹고 은주가 준 메리골드차를 우려 마신다.
얼마 전 오른쪽 눈 가에 새까만 실먼지들이 떠다녀 안과에 갔더니 '비문증'이라는 듣기도 처음인 병이라 했다. 주로 50-60대에 많이 나타나는 질환인데 잘 이해는 못 하겠지만 망막 사이에 떠다니는 계란 흰자 같은 것이 노화가 되어 거기 실핏줄 같은 게 생기는데 그게 동공을 조금 막고 있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약을 넣고 검사를 하고, 또 처방을 받아와서 먹으면서 눈의 피로에 좋다는 이 '메리골드'차가 생각나
요즘은 이 차를 만들어준 은주에게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마시고 있다.
물을 끓여 일정시간 조금 식힌 다음 꽃잎이 든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금방 노란 메리골드가 몸을 풀자 이내 물이 주홍빛으로 조금씩 짙어진다
색깔이 이렇게도 고울 수가 있을까?
고 작은 꽃송이 두 개가 이렇게 진한 꽃물을 풀어내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꽃물을 하얀 컵 위에 따르니 빛깔이 더 곱다. 새하얀 천을 푹 적시면 금방이라도 오렌지빛 스카프를 만들 것 같다. 한 잔은 과장님께 드리고 또 한잔은 내가 마신다.
그리고 아직 노란 빛깔이 남아 있는 꽃잎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놓는다
차의 향기는 풀향이 난다. 꽃향기보다는 풀향기에 가깝다. 하지만 그 향기 끝에 메리골드 특유의 향이 남아있다. 살짝 입술을 데어 보니 따뜻하고 부드럽다. 참 신기하게도 꽃잎을 물에 넣었을 뿐인데 물이 이렇게 순해졌다. 몰도 꽃의 향기에 노곤하게 몸을 푸는 것일까?
한 모금 입에 넣으니 입 안이 온통 꽃향기다. 식도가 뜨끈해진다. 금방이라도 눈이 시원하게 밝아질 것 같다.
두 모금, 세 모금, 마실 수록 온몸이 조금씩 데워진다. 뜨끈해지더니 노곤해진다.
물처럼 내 마음도 순해지는 것 같다.
옆방 예쁜 선생님이 집게를 빌리러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우와! 선생님 향기가 참 좋아요!" 한다
단 세 송이의 마른 꽃이 이렇게 큰 일을 해내고 있다. 맛으로, 향기로, 온기로 모두를 점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