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다가
봄비 / 전영임
봄이 울 때가 있지
메마른 대지가 가여워 보슬보슬 울 때가 있지
울음을 뚝, 그치고 싶어도
차마 못 그칠 때가 있지
허기져 시든 싹들이 생기를 찾을 때까지
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지
들일에 지친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실루엣을 보았지
나는 아프다고 울었어
눈물샘 둑을 허물며
눈물이 마를까 봐 구피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며
물을 마시곤 했어
엄마가 내 이마를 짚으려 앉을 때까지
한참을 울던 내가 잠잠해지고
쫑긋 세운 귀에 일어서려는 엄마의 기척이 들면
울음소릴 더 높였어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울음소리를 뒤채며 굽 낮게 웃었어
저녁밥을 해 주지 않아도
밤이 깊어가도 나는 자꾸,
자꾸 울고 싶었어
내가 울어야 엄마가 쉴 수 있었거든
내가
여덟 살 때 일이었어.
**** 오늘 시를 쓰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많이 떼를 쓰고 울었던 이유
그래서 깍쟁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단순히 엄마에 대한 내 마음 도 한몫을 했다.
엄마는 마흔둘에 막내인 나를 낳으셨는데, 봄여름 가을에는 들일을 하셨고
여름에는 들일과 함께 온 산을 헤매며 칡을 잘라 오셨고,
겨울이면 언 땅을 호미로 파 복숭아나무아래 떨어진 복숭아 씨앗들을 주워 오셨다
복숭아 씨앗을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한약건제상에 가져가면 얼마의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엄마는 늘 일에 지쳐 있었다.
쪽진 머리가 흐트러지도록 날마다 일에 찌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골수염이 재발되어 자주 아프곤 했었는데
몸이 자주 아프니 짜증도 많은 아이였다.
어느 날 들일에서 돌아온 엄마가 잠시 앉을 새도 없이
다시 집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흐트러진 머리, 땀에 얼룩이 진 흰모시옷,
그때부터 나는 울기시작했다
아프지도 않은 다리를 부여안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떼를 썼다
내가 아프면 엄마는 만사를 제치고 나에게로 달려왔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곤 내 옆에 앉아 아픈 내 다리를 계속 쓸어주시곤 했다
그날도 엄마는 나를 무릎에 누이시고 벽에 기댄 채
내 아픈 다리를 만져주고 계셨다.
그러다 엄마의 손길이 조용해 보니 엄마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나는 울음소리를 낮추고 빙그레 웃었다
일을 하지 않는 엄마가 편안해 보였기 때문에
그날은 저녁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플 것 같았다
밤이 깊어도, 엄마가 계속 저렇게 잠들어 쉴 수만 있다면
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여덟 살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어린 나였다.
엄마를 생각하던 내 어린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