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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Aug 27. 2021

그날의 히치하이킥


몇 대의 차가 지나가도 나는 붙박은 동상이었다. 도대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만치 차가오면 심호흡을 하고 작정을 하다가도 정작 가까이 오면 얼음이 되었다.

“니가 해 봐, 난 못하겠다.”

그녀에게 떠넘기며 한 걸음 물러서려고 한다.

“아니야 이모, 이런 건 난 부끄러워 못해, 이모가 더 잘 하잖아, 이쁜 이모가 계속해!”

나이는 같은 사촌언니의 딸이라 어쩔 수 없이 이모가 된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와 있을 때는 책임감이 더 생긴다. 그녀의 잦은 칭찬과 너른 배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연둣빛 봄, 그녀와 단양에 있는 제비봉을 오르고 있었다. 제비봉에 올라가려면 장외나루터에 차를 세워두고 올라가야 한다. 완만한 흙길과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청풍호를 만날 수 있고, 청풍호에 몸을 쭉 뻗고 엎드려 수영을 하는 거북의 옆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곳곳에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사위어 뼈대만 남은 사목과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양들이 태고의 세상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한참 데크계단을 오르다가 숨이 턱에 차오를 쯤 뒤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구단봉의 풍경과 가슴이 탁 트이도록 널리 펼쳐진 경관이 짜릿해지는 곳이다. 가방에 먹을 것을 잔뜩 넣어 간 탓에 좀 무겁긴 하지만 곳곳이 쉼터인 우리는 가는 도중 몇 차례나 바나나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고, 앉아서 노래도 불렀다. 돋아나는 연두색 이파리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생글거리며 첫 꿈을 꾸고 있다. 부끄럽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빼꼼이 내다보는 진달래와 나지막이 피어있는 작은 꽃들, 우리는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며 한참동안 주변을 둘러 경치에 빠졌다. 정상에 오른 희열도 잠시 생각 없이 얼음골로 하산한게 화근이었다. 내려올 때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에 반하고, 산봉우리 만한 바위에 환호하며 폴짝거리며 정신없이 내려온 곳이 얼음골이었다.

그런데 다 내려오고 나서가 문제였다. 우리 생각엔 얼음골에서 장외나루가 가까울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얼음골에서 장외나루까지는 1시간을 족히 걸어야 할 거리 였다.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산을 탄 것 같아 우리는 장외나루 바투 곁 어디쯤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먼 거리일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었다. 사전 조사가 없었던 탓이다. 우리는 이미 에너지를 많이 써 너무 지쳐있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셀카도 찍으며 노래도 부르며 걸었지만 끝없는 오르막길과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에 이내 지쳐버렸다.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의견을 모은 것이 히치하이킥을 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해 보자’ 한 걸음 도로 쪽으로 발을 옮기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차를 잘 고르는 일이 성공에 가깝다는 걸 찰나에 생각해 냈다. 일단 검은 승용차에 썬팅이 진하게 되어 있는 고급차는 선택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혹시나 거절당했을 때의 무안함을 감당할 멘탈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가고, 오른손을 올릴락 말락 망설였다. 내 마음이 먹은 일이지만 내가 행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이다. 또 몇 대의 차를 보냈다.

그때 저만치 회색 차가 온다, 한눈에 보아도 좀 오래된 차인 것 같다. 언 듯 본 운전석에 앉은 분은 까탈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모야!” 그 한마디에 나도모르게 오른손이 올라갔다. 아차, 그러나 차는 그냥 우리를 스치고 휙, 지나간다. 그러면 그렇지. 민망한 나는 딴전을 피우며 다음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차가 오는 방향, 구부러진 길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보는 순간이었다. “이모야!”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다, 바로 그거였다. 우리를 휙 지나가던 차가 10여 미터를 가서는 서는 것이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재빨리 확인한 차 안의 뒷자리는 분명 비어있었고, 중년의 부부가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가시는 길에 저희를 장회나루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최대한 잘 보이려고 말했다. 60살은 좀 넘어 보이는 머리 희끗한 남자와 나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컷트머리의 여자였다.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태워 드릴 수는 있는데 저희 차가 누추해서요.” 그러면서 남자는 뒷 자리에 있는 짐을 트렁크로 옮기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저희는 엉덩이만 들어가면 돼요.” 차를 잡을 땐 소심하던 그녀도 얼른 뒷자리에 엉덩이를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맞아요, 금방 가는데 저희는 서로 덧 앉아 가도 돼요.” 나도 거들었다. 산을 오르고 내린 다리가 의자에 앉으니 그제야 아팠다. 먼 길을 다시 걸어가려니 아득했는데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그녀도 나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낭에 있는 먹을 것을 꺼내고 있었다. “저희 돈 드리면 안 받을 테고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커피와 초콜릿과 귤과 과자, 우리는 가방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 내밀었다. “아이구, 아닙니다. 차가 불편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 남자는 그렇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 했고 여자는 “와, 언니들이 맛있는 거 준다. 여보 나 이거 먹어도 돼요?” 그러고 보니 여자는 어디가 좀 아파 보인다. “선생님들 드실 건데 그래도 될까?”

“그럼 안 돼?” 금방 시무룩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이구! 아니예요. 저희는 실컷 먹었어요. 남은 거예요.” 우리는 합창을 하듯 말했다.

“안 그래도 돈을 드려야 하는데 안 받으실 것 같아 그냥 저희가 가져온 것 드리는 것도 죄송해요” 곧 앞자리로 건너갈 듯 몸을 빼고 그녀와 나는 번갈아 제발 받아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감사하다고 말했고, 여자는 금방 표정이 밝아지며 과자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린 마주보고 웃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소도시에서 과일가게를 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속아 큰 빚을 지고 마음의 상처만 안고 근처의 더 작은 도시로 이사를 했다. 장애가 있는 부인은 일을 할 수 없어 종일 집에 있지만, 남자는 작은 차에 식품을 싣고 여기저기 배달도 하고 판매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주말이면 자신의 아내를 오늘처럼 차에 태워서 좋은 곳을 여행 다닌다고 한다. “먼 곳은 못가요. 집사람이 차를 오래 못 타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곳만 이렇게 다녀요. 일주일 동안 집에서 혼자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10년째 이러고 살아요.” 알고 보니 남자는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우리 남편 참 좋아요. 날 데리고 좋은데 많이 다니고, 참 좋아요 우리 남편.”

어눌한 말투로 여자가 남편을 바라보다 우리를 돌아보며 자랑하듯 말했다. 저 표정만 봐도 얼마나 고마워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갑자기 차 안의 온기가 따뜻해져 온다.

우리는 ‘네, 네,’ 하는 대답 외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아름답게 사는 부부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내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조차도 사랑하며, 아내가 외롭지 않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아내도 챙기는 남자, 그런 남자를 믿고 일주일 동안 남편을 믿고 기다리다가 주말이 되면 남편과 함께 나들이 가는 것만이라도 행복한 여자, 남자도 여자도 서로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집사람이 가난한 나를 만나 고생이 많지요.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그래서 돈으로 못 해주니 이렇게 기분이라도 풀어줘야지요.” 남자의 말끝이 더 따뜻했다.

“괜찮아 여보, 나는 지금이 좋아요. 참 좋아요.”

남편을 향해 몇 없는 치아를 보이며 어눌한 말로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장외나루에 우리를 내려 준 차는 청풍명월을 향해 뒷모습을 보이며 떠났다. 나는 분명 보았다. 그 차 지붕 위 하늘에 걸린 일곱 빛깔 찬란한 무지개를,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해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과 그녀의 자랑스러운 미소를.

우리는 그 차가 완만한 곡선을 따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았다. 그러다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말 없어도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를 아는 정말 신기한 인간만의 텔레파시를 주고받았다. 

준비 없이 간 산행 덕분에 참 아름다운 부부를 만났다. 낯선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차에 태워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험을 보아도 흉흉한 세상 탓을 핑계로 두렵다는 핑계와, 잘 태워주고도 덤탱이 썼다는 간간이 들리는 뉴스에 인정마저 메말라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종종 차를 타고 가는 나를 향해 드는 손을 못 본 듯 지나칠 때는 양심이 자꾸 꿈틀거려서 그날은 내내 미안한 마음이곤 했었다. 하지만 이 메마른 세상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차가 누추해서 더 미안해하는 사람들, 우리가 먹다 남은 과자를 주어도 고마워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만나 참 아름답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또 아직은 인정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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