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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 Oct 08. 2018

아름다운 부재

그가 없으므로 나는 더 사랑합니다.

        

  언니 클라이밍 안 갈래요?


   왜?

 

   몸 쓰고 싶어서요.     

  

  지금 이렇게 묻는 후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우리는 생전 두 번째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 만났다. 매달려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특히 나처럼 무거운 몸으로 매달려 한 발 한 발 딛다가 떨어져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하면 근육통과 함께 정신을 딴 곳에 팔 수가 없다.      


   언니. 

  후배는 벽에 매달려 용케도 말을 했다.     

 

   나 헤어졌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는 바닥에서 30센티 정도 되는 공중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야. 내려와 봐.      

  우리는 매트에 나란히 앉았다. 초등학생들이 우리보다 상급 코스인 노란색 스톤만 밟으면서 저 높은 곳에서 지나갔다.     

  

  연락을 안 해요. 

 

  은행 다닌다며. 바쁠 거 아냐.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카톡 해요. 이건 좀 아니잖아?

  

 출근 전과 퇴근 후냐?

  

 응. 그게 다야. 회식 가도 끝나고 연락 와. 중간에 연락하는 일이 없어.

  

 그 사람은 점심도 안 먹고 똥도 안 싼대?

  

 몰라. 무시받는 기분이에요. 이런 문제로 싸운 적 있어. 근데 또 날 안 좋아하는 건 또 아니래. 

  

 그래서? 

  

 그래서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알았대.

 

   헐.

  

 근데 언니…

  

 연락하고 싶구나?

  

 언니는 작가니까 멘트가 다를 거 아니야.     

  


  그 매트 위에서 우리는 그 남자에게 뭐라고 문자를 보내야 하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물론 말리고 싶었다. 헤어지자고 했는데 알았다고 하는 남자, 끝났다 싶었으나 후배는 별 볼일 없는 나를 작가라고 불러줬고, 또 무엇보다 뭐라도 해야 미련이 안 남을 것 같아 나 역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남으면 정리가 안 되니까. 내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실마리 같은 희망이라도 남아 있으면 계속 계속 정리가 안 되니까. 이런 문제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 뚜껑을 열고 확인해야 실감이 난다. 그래야 이쪽이든 저쪽이든 마음이 정리된다.      


  고심 끝에 우린 헤어졌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문자를 보내기로 합의했다.     


  근데 좀 양아치 같지 않아요?     

 

   야 뭐 어린애들도 아니고 그 사람 폰에 니 이름 한 줄 찍히면 끝나는 거야. 네 마음은 그걸로 다 전달된 거야.      

  그다음 엔요?     


  답이 오면, 사과해야지. 사실은 화가 난 게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지.  

    

  헤어진 지 아니 헤어지자 말한 지 5일이 지났고, 오늘은 그가 고향집에 갔다가 올라오는 날이었다. 그러니 지금 올라오는 차 안일 것이고, 바빠서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을 거란 예상을 했다. 잘하면 함께 저녁까지 먹는다는 플랜으로 우리는 작전을 짰다. 그의 세로토닌을 다량으로 나오게 해줄 고기를 굽고 소주를 한 잔 마시면서 나는 이런 부분이 섭섭했단 말이야. 하고 가볍게 앙탈을 부리는 것으로 화해한다. 그것이 굵직한 계획이었다.      

 

   대전 오는 길이야?      

  

  우선, 심플하게 보냈다. 생각해봤는데 어쩌고, 좀 만날 수 있을까 어쩌고 보다는 덜 구질구질하고 담백해 보이니까.      


  꼭 물음표로 보내야 해. 그래야 상대가 답장을 하고 싶지. 대답을 유도해야 해.     

 

  나의 말에 후배는 조심스레 문자를 찍고 보낸다. 보낸다. 으악, 보낸다. 몇 번 소리쳤다. 언니는 작가니까 믿는다. 보낸다. 꾹! 후배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우리는 눈알이 빠지게 기다리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탈의실에 놓고 클라이밍에 집중했다. 


  파란색 스톤만 골라서 조심조심 거의 땅 위에서 걷는 것처럼 벽을 탔다. 나보다 가벼운 후배는 금세 노란색 스톤으로 위치를 바꿔 벽을 탔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겨우 오분, 십 분이 지나있었다. 딱 한 시간 뒤에 확인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더디갔다. 한 시간도 못 채우고 우리는 정확히 이십 오분 만에 탈의실로 달려갔다.  

    

  왔을까? 왔겠지?  

    

   후배는 도박하는 사람이 화투패를 확인하듯 조심스레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매운 갈비찜에 소주를 왕창 마셨다. 인근에 있는 연애 전문가 한 두 명을 불러내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를 잘근잘근 씹었다.      

  

  읽고 씹었어. 


  그새 벌써 여자가 생겼나?     


  언니는 작가라매 남자 하나 못 잡아줘!

 

  아 처음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너 얼마나 만난 거야?     


  ... 한 달...     


  우리는 말없이 소주를 마셨다.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안심일 수도 있겠다. 안 보이는 곳에 있어도,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것이 믿음이라 믿는다. 어떤 애인은 한 시간에 한 번씩 통화를 해도 불안하다. 매 순간이 불안하다. 그의 문자 소리에 그가 휴대폰만 만져도 그렇다. 금방이라도 그는 떠나버릴 것 같다. 내 눈 앞에서 영영 사라질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정신이 한 사람에게 족속 된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주변과 그 사람의 도시와 그 사람의 우주까지 그를 유혹한다. 그가 걸어가는 허공마저 질투가 난다. 안녕 인사하고 그의 차에서 내렸는데 내가 문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그의 자동차가 출발할 때도 그렇다. 멀어지는 그의 빨간 브레이크 등을 보면서 나는 불안이라는 불행에 손발이 꽁꽁 묶인다. 물론 마음이 이렇게 위험해진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그런 관계에 불안이 쳐들어오면, 이때부터는 행복한 연애가 아니다. 불안한 사람과 그 불안한 사람이 더 불안한 사람만 남을 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종일 연락이 없어도 안심이 된다. 내 사람은 지금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닐 것이다. 비록 지금 연락은 없지만 그는 거래처 사람과 점심을 먹으면서, 바쁜 서류를 결재받으면서, 임원회의에 들어가서도, 그 사람 휴대폰 화면에 있는 내 얼굴을 이따금씩 보고 있겠지. 그럼 나는 괜찮다. 너도 나를 생각하고 있으니.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로 가득할 테니까. 갑자기 비가 내리면 우산 꼭 가지고 나가. 차 조심하고. 너는 1분도 안 되는 통화일지라도 짬을 내서 전화를 걸어줄 테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괜찮다. 퇴근하고 회식자리에 가서도 미안해. 오늘 같이 저녁 못 먹어서. 주말에 맛있는 거 먹자. 뭐 먹을지 생각해놔. 그런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니까. 그럼 불안은 안심이 된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는 나를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나는 너의 그런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분할만큼 충분히 아팠고 성숙했으니까. 너의 아름다운 부재로 인해 우리는 두꺼워진다. 그런 사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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