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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ug 23. 2016

[M.M.C] 24편/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사이코 스릴러

 Madam Mystery Cabinet No. 24     


        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사이코스릴러∥ 염정용·장수미 옮김        

 


 예고는 없었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제목이 제 역할을 다 했다.(‘눈알’이라는 제목 때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알렉산더 초르바흐의 비극을 『눈알수집가』에서 끝냈을지 모른다.) 2016년 8월 여름. 서울의 폭염이 끝나지 않았듯이 『눈알수집가』 역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눈알수집가』는 알렉산더의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눈알사냥꾼』은 그 비극에서 출발한다.      


  그리스 비극에는 이야기의 원천이 되는 두 가문이 있다. 오이디푸스 가문과 아가멤논 가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신탁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해 자식들을 낳았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큰 딸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한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왕위를 놓고 싸우다 서로를 죽인다. 큰 딸 안티고네는 외삼촌 크레온에 의해 동굴에 갇힌 뒤 목을 맨다. 안티고네와 결혼을 약속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따라 자살한다. 하이몬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죽음을 듣고 자살한다. 이 정도면 막장 중의 막장이다. 근친에 친부 살해. 자살의 릴레이니 말할 것도 없다.      

  


  아가멤논 가문이라고 덜 할까.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동생의 두 아들을 죽여 요리를 만들고 동생을 초청했다. 그 결과 동생의 저주는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에게 간다. 메넬라오스는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뺏긴다. 형 아가멤논은 트로이 출진을 앞두고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클뤼타임네스트라는 큰 딸의 복수를 위해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한편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누나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를 죽인다.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삼촌이 모르고 자신의 친딸과 동침해 낳은 아들이다. 오이디푸스 가문에 뒤지지 않는다. 근친, 친딸 살해, 남편 살해, 친부 살해.       

 

 다시 『눈알 사냥꾼』으로 돌아오자.

그리스 비극은 ‘운명’과 ‘복수’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알렉산더 초르바흐, 알리나 그레고리 에프)들도 마찬가지다. ‘운명’과 ‘복수’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들너무 혹사당한다는 것이다.(표현 방법이 달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이야기의 삼분의 이 이상이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할애된다.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당해 알몸으로 수술대에 묶인 알리나. 게다가 그녀는 맹인이다. (나는 최근 개인적 이유로 수술대 위에 누워야 했다. 그래서일까?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이루어졌다.) 칼에 찔리고 총에 맞는다. 정신은 분열되고 모든 고통의 수치는 한계치를 넘어선다.

 

   결말은? 『눈알수집가』만 보았다면 완전히 몰랐을 ‘반전’과 ‘비극’이다.  

  초르바흐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끝난 『눈알 수집가』와는 다르지만 확실히 비극적 결말이었다. 아내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 일명 ‘눈알 수집가’에 의해 살해당했다. 아들을 납치당했다.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쏘았다. 은인의 생명을 제 손으로 끊었다. 그리고 놈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초르바흐는 ‘운명’의 제물이 되지만 ‘복수’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 ‘복수’는 얼핏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반전’에 발목이 잡히기 전까지는. 결국 끔찍한 악몽을 하나 더 얻게 되었을 뿐이다. 또 다른 주인공 알리나는? 그녀라고 괜찮을까? 초르바흐는 그녀도 잃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눈알수집가’ 나 ‘눈알사냥꾼’ 같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괴변이나 듣고 있어야 하느냐고? 그런 면도 있다. 또한 그들의 비뚤어진 헛소리에 흔들리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한 단면을 볼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나 아가멤논에게 닥친 참혹한 ‘운명’을 초르바흐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초조해하고 절망하며 분노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장을 한번 펼치면 놓을 수 없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열대야. 운명에 농락당해 너덜너덜해진 타인의 비극을 보며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그래도 작가는 주인공을 살려두었다. 나도 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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