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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Sep 06. 2016

[M.M.C] 26편/아메리칸 보이/앤드루 테일러

반동의 시대를 담은 풍속화

 Madam Mystery Cabinet No.26     

     앤드루 테일러 장편소설

          박아람 옮김

아메리칸

      보이

THE AMERICAN BOY

- 반동의 시대를 담은 풍속화

 


  이 소설의 화자인 ‘톰 쉴드’의 기록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쥘리앙 소렐’(스탕달의 『적과 흑』에 등장하는 주인공)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가진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 때문이었다.     

  

  먼저 시대이다.

  1819년은 유럽의 지배계급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던 시기였다. 일명 빈 체제(1815년 빈 회의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국제 정치 체제) 시기. 이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온 유럽에 퍼진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 이념을 말살하고 절대왕정이라는 구체제의 질서를 되살리려 했던 짓이다.

(어느 시대나 지배계급의 오만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저들의 오만방자함이라니.) 무너져가는 신분제도를 끌어안고 자신들의 특권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지배계급. 자신들이 만든 질서대로 세상을 통치하려는 자들. 하지만 이미 유럽의 공기는 이전과는 달랐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짜릿하고 위대한 정신이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반동의 시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쉴드와 소렐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행동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필연적으로 두 사람은 보잘것 없는 출신이어야 한다.

  두 번째 공통점이기도 한 출신은 두 주인공의 욕망을 극대화한다. 쉴드는 첫눈에 소피 프랜트에게 반한다. 그와 동시에 한눈에 그녀가 자신과 다른 신분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쉴드의 욕망은 이제 프랜트 부인과 그녀가 속한 상류 사회로 향한다. 소렐? 그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말하자면 소렐이 훨씬 강렬할 뿐만 아니라 솔직하다. 쉴드는 프랜트 부인과 그녀의 사회를 원했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첫 만남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이들, 하찮은 출신의 두 젊은이는 생계 혹은 출세를 위해 어떤 직업을 선택했을까?     

 

  여기서 이들의 세 번째 공통점이 드러난다.

  군대. 마침 이 시기의 유럽은 젊은이들의 육체와 정신을 송두리째 원하는 전쟁터가 곳곳에 있었다. 쉴드의(그가 왜 군에 들어갔는지 구체적 설명은 없다.) 군 복무 이력은 그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로 작용한다. 그는 워털루 전투(1815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VS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 참전했지만 훈장을 근위 연대 장교에게 던진 죄로 재판에 회부된다.

이 일은 쉴드의 이력에 큰 오점이 되었다. 소렐 역시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군인으로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접는다. 이제 남은 것은 교회다. 로마 제국 시절 크리스트교가 공인된 이후 유럽 역사에서 교회의 비중은 남다르다. 특히 교육에 관해서는. 쉴드는 브렌스비 목사가 운영하는 매너 하우스의 보조 교사가 된다.(소렐은 교회에서 출세의 다른 길을 찾으려 했지만 가정교사가 된다.)      


  그리하여 두 젊은이는 상류사회의 일원이 아니면서 상류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정교사’라는 애매한 신분. 상류사회의 전유물인 교육을 받았다는 점은 일반 하인들과 달랐지만 그들에게 고용된 입장은 하인과 다르지 않았다.

  이 작품 『아메리칸 보이』에서는 이러한 쉴드의 입장이 매우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쉴드는 프랜트가에서 고용주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하인처럼 불려 가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정함은 상류사회에 속한 인물들의 위선과 허영, 부조리를 냉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위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들의 마지막 공통점은 청춘이다.

  반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층민 출신의 두 청춘. 이들은 교육과 젊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대답은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쉴드는 우연히 미스터리와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그 가운데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어 한다. 모든 미스터리가 해결되고 난 후, 회고담처럼 엮인 이 작품은 쉴드의 기록으로 되어있다. 1819년 9월부터 1820년 5월까지의 기록.

  21세기에 쓰인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독자를 완전하게 그 시대로 끌고 간다.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그랬다. 서울에서 약 9,095Km가량 떨어져 있는 런던의 거리가 2016년으로부터 196년이나 떨어진 그 시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작품의 위력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은? 순조 19년, 기묘년(己卯年)이다. 정조 사후의 세도정치 시기였다.     

 

 *P.S: 참고로 제목의 아메리칸 보이는 [에드가 엘런 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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