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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Sep 16. 2016

[달.쓰.반]34편/영화 밀정(스포주의)

추석 연휴 추천 영화(스파이 및 느와르 무비들)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34

※ 주의: 이 영화는 밀정의 주요 스포일러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 송강호의 모든 작품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안 본 작품을 꼽는게 더 빠를 것이다. 그의 수많은 대표작에서는 조금 뒤로 밀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우아한 세계>와 <박쥐>에서는 섹시한 송강호를 볼 수 있다. 서두에 배우 송강호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그렇다.  

<밀정>에서 송강호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배우 <밀정>에서 좋았던 것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송강호의 연기를 선택하겠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도 숫자를 세어보니 내가 안 본 작품을 꼽는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만큼 김지운 감독의 영화도 즐기는 편이었다. 이번 영화, 김지운 감독의 냄새도 꽤 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콜드 느와르풍이며,  그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이병헌도 까메오(의열단장 정채산 역할/김원봉이 모티프)로 등장한다. 

기차안에서의 액션 씨퀀스도 <밀정>이 김지운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대놓고 말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무간도> 등 스파이물이면서 차가운 느와르풍의 기조를 잃지 않는 영화를 꽤 인상깊게 보아서 <밀정>도 많이 기대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작품성은 기대보다는 별로였다. 

만약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이정출이 아니었더라면,

내게 그저 그런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추석 연휴 극장가를 노리고 만든 영화로. 

물론 의열단을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있다. 

지난해 <암살>이 개봉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보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쭉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의열단 소재 영화라니, 스파이 영화라니. 대단한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밀정>을 보고 와, 이 영화 만든 감독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밀정>은 의열단 내부의 밀정을 찾는 것을 서브 플롯으로 가져오고는 있지만, 그 플롯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진 않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열단 내부의 밀정이 밝혀지는 순간이 그리 허술할 리가. 

대부분들의 관객들은 의열단 내부의 스파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감독이 의열단 사람들의 서사를 탄탄하게 쌓아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밀정 역할을 맡은 배우의 (아마도 별그대에서의 역할로 인한) 기존 이미지때문에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신성록이 맡은 조회령은 의열단의 행동대장격인 김우진과 절친 사이로 나오는데 관객들은 이 사실이 드러날 때쯤 어리둥절하게 된다. 

"니들이 언제부터 절친이었어? 10년지기였다고?" 

의열단의 내부 밀정이자 10년지기를 처단해야 하는 김우진의 고뇌는 총성 한방에 가볍게 날아가버린다.

이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웠지만, 그보다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두 사람의 사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극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구경꾼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감독이 이 플롯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되긴 한다. 

좀 더 메인 플롯에 집중하란 뜻인지도. 그렇다면 성공이다.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인 이정출의 감정선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메인 플롯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 감독이 만든 영화의 서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배우의 연기에 기초한 것이라면?

송강호가 맡은 이정출의 역할은 실존 인물이 모델이라고 한다. 

이정출의 모델이 된 인물은 황옥. 황옥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그가 정말 일본이 의열단 내부에 심어놓은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의열단을 돕기 위해 일본 경찰의 신분으로 

폭탄 사건을 일으킨 독립운동가인지. 

그는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도운 죄로 법정에 섰는데, 법정에서 한 그의 진술은

영화 속의 대사랑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법정 진술씬은 이정출의 감정 변화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의 백미이다. 

저 사람은 정말 어떤 마음으로 저런 일을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은,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이정출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아, 하고 납득하게 된다.

학계에서는 황옥을 일본이 심어놓은 밀정이라고 보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고 하지만, 

영화는 후자의 입장에서 극을 전개하고 있다. 

영화 초반의 프롤로그에서도 이정출에 대한 인물 소개를 할 때 

그가 단순한 친일파는 아니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까메오로 등장한 김장옥은 그의 오랜 친구이다. 

김장옥은 김상옥 열사를 모티프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도망가던 김장옥의 엄지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실화에 기초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의열단의 단장 정채산은 친구 김장옥의 죽음을 통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이정출에게

역으로 접근할 계획을 세운다. 

당시 확신에 찬 친일파도 있었을 것이고, 

이정출처럼 친일을 하긴 하는데, 마음 속으로는 이게 지금 뭐하는 건가, 

긴가민가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인물들을 두고 회색분자라고 부른다.)

하시모토의 등장은 이정출에게 더욱 깊은 회의감을 안겨주고, 내면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이럴 때 등장한 정채산은 이정출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개인적으로 장면 장면에 대한 납득은 되었지만,

솔직히 주입식 이해였다. 

김우진과 정채산, 이정출은 너무 서로를 쉽게 믿고, 

하시모토 역시 이정출을 견제한다고는 하지만, 그를 견제하는 사람의 행동치고는 어딘가 허술한 면이 있다.

(하시모토 역할의 배우는 <밀정>으로 인해 확실히 각인되었다.

특히, 부하 뺨 때리는 연기가 압권)

법정씬도 좋았지만, 한지민이 맡은 연계순을 고문할 때의 송강호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 장면에서 이정출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히가시 부장은 정말 일본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인 배우(츠루미 신고)였다.

이정출이란 인물은 명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만약 내공이 부족한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더라면 그의 감정선을 잘 따라갈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부산행에서의 공유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극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딸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부성애가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 묘사되는 김우진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김우진이 맡은 역할은 김시현이 모티프였고, 김우진과 이정출의 관계는 

김시현과 황옥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만든 만큼

더 많은 긴장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우진과 이정출 사이의 긴장감은 느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김우진이 이정출을 쉽게 믿는지도 모르겠고, 

그가 의열단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회령에 대한 감정도, 연계순에 대한 감정도 감정선이 툭툭 끊겨서 이해하기 힘들다. 

공유는 아직 자신의 연기만으로도 시나리오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내공은 지니지 못한 것 같다.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 등 배우로서 많은 장점을 지닌 연기자인 만큼 

이제는 좀 더 깊은 감정 표현 방법을 연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지운 감독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커서 그렇지, 영화 <밀정>은 연휴에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송강호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영화 티켓이 아깝지 않다. 

그의 수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봤지만, 볼 때마다 

언제나 그 기대를 버리지 않는 배우, 송강호. 

추석 연휴 막바지 혹은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밀정>을 추천한다.


ps.1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국 정보국 MI6 내부의 두더지(스파이)를 찾아라.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아하고, 차가운 스파이 영화.


Ps2. 영화 <달콤한 인생>

왜 이병헌이 김지운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라는 희대의 명대사도 나온다)


Ps3. 무간도 

홍콩 느와르의 부활 신호탄을 쏘아올린 바로 그 영화, 무간도.

이중 스파이물의 정수를 보여준다.


Ps4. 성월동화 

장국영이 홍콩 비밀경찰로 나오는 영화로,

멜로와 느와르가 결합된, 세기말적 감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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