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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Sep 13. 2016

[M.M.C] 27편/마술은 속삭인다/미야베 미유키

 Madam Mystery Cabinet No.27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미유키 장편소설∥ 김소연 옮김      

 


  미야베 미유키에게 빠지는 길은 많았다.  

  그녀의 작품 수만큼 많지만 도착지는 하나다. 그녀에게 빠지고 만다는 것. 나는 그랬다. 이유? 먼저 인물이다. 주인공과 주요 인물은 물론이고 잠깐 등장하는 사람조차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풍성하다. 밋밋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을 건져 올렸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누구라도 좋다. 잠깐이라도 짬을 내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다.

  다음은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그녀의 태도이다. 따뜻하다. 사람이 죽고, 죽이는 이야기가 주축인 미스터리의 세계지만 그렇다. 주인공을 둘러싼 공기가 아무리 비극적이라도 그렇다.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그렇다.

  문장은 어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묘사. 인물들의 감정을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적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이것 말고도 이유를 일일이 들자면 너무 많다. 이렇다 보니 내가 그녀에게 빠지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미야베 월드]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 월드의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 작품을 [미야베 월드]에 꽤 익숙해진 후에 만났다. 작가의 초기작이며 분량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600페이지 분량의, 그것도 상, 중, 하로 나눠진 작품에 비하면.) 그럼에도 앞에서 든 작가의 강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마모루는 고등학생이다.

  아버지는 공금횡령 혐의를 받고 실종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그녀도 병으로 죽는다. 마모루는 이모님 댁으로 왔다. 학교도 가정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사건이 터진다. 사건은 마모루의 일상을 다시 흔들어 놓는다. 유년기 아버지의 부정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놀림과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런 일이 다 지나갔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모부가 모는 택시에 젊은 여성이 치여 숨졌다. 사고 소식이 지역 신문에 올랐다. 학교 칠판에 마모루의 이름이, 도둑의 아들이란 낙서가 등장했다.  


  이모부 사건이 터진 후, 마모루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장난 전화로 치부하기에는 내용이 단순하지 않았다. 세 명의 젊은 여성이 차례로 죽었다. 죽은 장소도 방법도 달랐다. 다만 ‘자살’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마모루는 이모부의 택시에 뛰어든 여성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살’이라 했지만 이상한 전화가 자꾸 걸렸다.

  전혀 별 개의 사건은 마모루의 행보에 따라 연결고리를 찾는다.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그 와 함께 마모루 아버지의 실종사건에 대한 실마리도 잡힌다.

  마지막에 드러난 범인의 자기변명은 여느 미스터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답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헛소리. 확실히 이런 점은 초기작답다. 그녀의 강점 중의 강점은 범인이 진부하지 않다는 점인데 말이다.       

 

 몇 년 전, 동경에 갔었다.

날은 뜨거웠고 거리는 붐볐다. 냉방이 잘된 실내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카페 창밖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몽롱한 상태였다. 아스팔트 위로 더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문득 마모루가 떠올랐다. 서점을 찾아 [마술은 속삭인다]의 문고본을 샀다. 한자와 간단한 단어만 알아보았지만 어쩐지 머리가 천천히 식는 느낌이었다.

  문장들이 춤을 추었다. [미야베 월드]에 온 걸 축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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