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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쓰반] 4편 연극 <꽃의비밀>& 뮤지컬<투란도트>

연극과 뮤지컬 리뷰

by 이야기술사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


연극 <꽃의 비밀> vs 뮤지컬 <투란도트>


※ 주의 : 이 리뷰에는 연극 <꽃의 비밀>과 뮤지컬 <투란도트>의

결말 부분을 포함한 다량의 스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꽃의 비밀 투데이 캐스트.jpg

연극 <꽃의 비밀>과 뮤지컬 <투란도트>는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

우리나라에서 만든 창작극이다.

극의 배경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시골마을(꽃의 비밀)이거나

가상의 수중 왕국인 오카케 오마레(투란도트)

<꽃의 비밀>은 네 명의 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

송년회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들끼리 유벤투스와 AC밀란의 경기를 보러 떠난 사이,

그들의 아내인 소피아, 자스민, 모니카, 지나는 소피아의 집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하지만 지나는 어딘가 계속 불안해 보인다.

결국 지나는, 모니카가 남편인 세르조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자신이 저지른 짓을 고백한다.

지나는 자신의 남편인 안토니오의 바람 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안토니오의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장냈는데,

그 차에 다른 집 남편들도 모두 옮겨 타는 바람에 죽게 됐다고.

축구를 보러 간다던 남자들은 사실, 축구장에 가는 게 아니라

산조반니의 환락가로 가는 중이었고, 가는 도중에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차가

부르노 계곡에서 미끄러져 네 명의 남자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고 말이다.

소피아는 남편의 죽음을 알고 멘붕에 빠진 여자들에게

내일 보험공단에서 메디컬 체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간단한 신체 검사 항목만 통과하면, 남편들의 보험 가입 절차는 모두 완료 될 것이고,

보험 가입만 완료되면 20만 유로의 사망 보험금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소피아는 남편이 갑작스레 죽은 것을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왔음을 고백하고,

지나와 모니카 역시 남편의 바람 때문에 고통 받아 왔다고 말한다.

자스민은 자신은 남편과 이미 오래전 이혼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성 기능이 부실한 남편 리노하고는 부부 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저마다 비밀을 고백한 여자들은 이제 내일 있을 남편들의 메디컬 체크를 위해

남장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메디컬 체크 당일, 네 명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흉내를 내며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연극이 재미있는 것은, 배우들의 찰진 연기력은 물론이요,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언행을 재치 있게 꼬집으며

폭로하는 재기발랄한 대사 때문이다.

대학로에 귀환한 장진 감독의 언어 조탁력은 정말 일품이다.

다만, 이 연극에서 조금 걸렸던 단어가 제목인

‘꽃’이라는 단어였는데

이미 여러 매체에서 여성들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이

일종의 언어적 폭력이자 편견일 수 있음을 시사 한 바가 있다.

그러나 나는 장진 감독이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꽃’이라는 제목을 붙이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소피아는 공과대학을 나온 엘리트인 지나,

장래가 촉망되던 예술 대학 출신의 신인배우인 모니카가

자신의 꿈을 접고, 지금은 그저 농사꾼의 아내로만 살아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는 대사를 극 초반에 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메디컬 체크를 끝낸 뒤,

남편들이 기적적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들이, 지금까지, 대체 우린 뭐한 거냐고, 허탈해 하자

소피아는 보험 가입증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보험에 가입했어. 그 말은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말이야.

투란도트.jpg

연극 <꽃의 비밀>이 졸지에 과부가 된 줄만 안 여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블랙 코미디 소동극이라면,

뮤지컬 <투란도트>는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가 벌이는 참혹극이다.

하지만, 뮤지컬 <투란도트>가 원전으로 삼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도 그렇듯,

진정한 사랑, 이라는 당의정을 덧입혀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재탄생시켰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페르시아의 민담집인 <천일일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천일일화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수수께끼,

그리고 뮤지컬 투란도트에 나오는 수수께끼의 버전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뮤지컬 <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것은 고통의 폭포, 슬픔의 호수, 기쁨의 강, 뻔뻔한 마음의 거짓말, 너무 흔하지만 나에겐 없는 것은?

둘째, 악마에게 얻어낸 지옥 같은 기도, 불행을 담은 선물,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투란도트를 살게 하는 풀 수 없는 증오심은?

셋째, 살아있는 죽음, 희망도, 눈물도, 웃음도, 행복도 없는, 차가운 나는, 나는 누구인가?

수수께끼는 셋, 목숨은 하나.

이 수수께끼의 정답을 말하는 자, 공주 투란도트와 결혼하여 왕국의 후계자가 될 것이고,

정답을 말하지 못하는 자, 날카로운 도끼의 칼날에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 주인공 보정을 잔뜩 받은 패망국의 왕자 칼라프가 있다.

칼라프는 수수께끼를 모두 풀고, 투란도트와 결혼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투란도트가 결혼을 거부하는 것.

사실, 투란도트는 악마의 청혼을 거절한 대가로

잔인하게 유린당하고 죽음을 택한 어머니 로링공주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천명에 이르는 수많은 남자들의 목숨을 담보삼아, 수수께끼를 낸 것이다.

칼라프는 만약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자신의 죽음으로 투란도트와의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 믿었던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시녀 류를 잡아와 고문하지만

그녀는 왕자 칼라프의 이름을 말하는 대신

자결하며 그의 행복을 빌어준다.

투란도트는 류의 행동에 충격을 받지만,

곧 그녀의 행동이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칼라프와 결혼해 사랑을 믿지 않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살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어머니의 원한 때문이라지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투란도트의 행동을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한눈에 반해 청혼하는 칼라프에게

내 눈엔 그저 욕정에 눈이 먼 짐승만 보인다거나

아버지의 목숨까지 걸고, 자신의 수수께끼에 계속 도전하는

칼라프에게 천하의 패륜아, 라고 일갈하는 모습은

솔직히 속 시원했다.

대부분의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은 한없이 가녀리고, 순종적인 모습을 지닌

위대한 사랑의 현신 같은 캐릭터로 주로 등장하는데,

뮤지컬 투란도트에서는

주연 남녀의 캐릭터가 뒤바뀌어서 등장하니까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투란도트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투란도트가 남자에게 한없이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라는 점이 신선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수동적인 존재로

대부분 그려지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연극 <꽃의 비밀>과 뮤지컬 <투란도트>는

여자의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뮤지컬 투란도트.jpg
꽃의 비밀 티켓.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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