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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Oct 17. 2016

[M.M.C] 30편/실업자/피에르 르메트르

Madam Mystery Cabinet No.30

 

C A D R E S  N O I R S

   실 업 자 

피에르 르메트르 장편소설

임호경 옮김      

  

  도서관에서 내 걸음을 멈춘 것은 제목이었다. 실업자

  엄혹한 시절 권력집단은 반대파의 목을 쳤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생명과 인권에 대한 의식이 전파되었다.

  이제 그들은 목 대신 목구멍을 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서 목구멍을 앗아간다.

  목을 친 것이 아니니 살인은 아닐지 모른다.

  그에 못지않을 뿐이다.      

  

  서가에서 책을 뽑았다.

  노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단숨에 내 시선을 사로잡고 놔주지 않은 문구.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


  표지 위에 실린 이 한 문장으로 작가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했다.     

  

알랭 들랑브르. 쉰일곱 살. 전에는 간부급 회사원이었으나 4년 전에 실직. 현재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몇 개를 전전하고 있다.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 날 알랭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를 본다. 다음은 그를 지켜본 알랭의 생각이다.


  “승객들은 돈을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다. 노숙자들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이들,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말을 찾아내는 이들에게만 돈을 준다. 그 결론은 실로 충격적이다. 심지어는 밀려난 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자들, 경쟁에서 가장 뚜렷이 부각되는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일 노숙자가 된다면 과연 살아남는 축에 낄 수 있을까?” p51


  실직은 알랭의 일상과 가족, 사랑까지도 뒤흔들어놓았다. 실직 상태가 지속되는 4년 몇 개월 동안 꾸준히. 매 년, 매 월, 매 일, 매 시간, 몇 초 간격으로 그의 주변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작품의 곳곳엔 잠언처럼 가슴을 흔드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다른 회사의 출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건 실업자에게는 언제나 기분 더러운 일이다. 아니, 질투 때문은 아니다. 힘든 것은 일 없이 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노동경제를 바탕으로 한 사회 안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p55


  젊은 시절 알랭은 대출을 잔뜩 받아 파리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얻었다.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빚을 잔뜩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기적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의식조차 못했던 어떤 행운에 의해 우리는 별문제 없이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이 시절, 행복의 비밀은 사랑이 아니었다. 왜냐면 사랑은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딸애들 때문도 아니었다. 행복의 비밀은 그때 우리에게 직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p115~116   

  

  

  알랭은 구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넣고 또 넣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위한 사건이 일어난다. 꽤 알려진 컨설팅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류심사에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실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차 필기시험. 놀랍게도 합격했다. 이제 남은 3차 면접. 그런데 이 면접 방식이 독특했다. 알랭을 고용하려는 회사는 최종 시험을 실전으로 치른 다고 했다.


  A라는 다국적 기업이 있다. 이들은 프랑스 모 지사를 폐쇄하고 그곳의 노동자 825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자사의 임원들 중 이 임무를 가차 없이 수행할 사람을 골라야 한다. 이 일을 이번에 새로 고용할 인력관리 보좌역의 최종 후보자 4명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즉 A사의 임원들 중에서 사업장 폐쇄와 노동자 해고를 단행할 만한 인물을 골라내는 것. 이것이 그들의 최종 시험인 셈이다. 이에 대한 알랭의 소감을 들어보자.

 

 “들어오는 자들이 나가는 자들을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가 일종의 영구 운동을 발명해낸 것이다.” p82     


  이 최종 시험을 위해 채용 대행사인 컨설팅회사가 하는 일을 보자. 이들은 최종 시험장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 무대엔 A사의 프랑스 사장과 임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컨설팅회사가 고용한 배우들. 이들은 테러단체 단원들로 변장한 채 회의장을 급습하기로 했다. 물론 사장은 미리 알고 있다. 임원들을 극도의 긴장상태에 몰아넣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하려는 것이다. 이때 알랭을 비롯한 최종 후보 4명이 테러범 역할을 하는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려 임원들을 테스트한다. 테스트인 동시에 테스를 받는 식이다.


  독자들은 작품의 전반부에서 알랭의 절박함을 절절히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실직당한 중년 남자의 감상들로 채워진 작품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작가는 [능숙한 솜씨]의 피에르 르메트르 다. 긴장과 속도감을 잃지 않는다. 반전에 이은 반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같은 자본주의 하늘 아래 사는 사람으로서의 비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의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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