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찬란한 명절: 2편 임아연의 이야기

너와 나

by 이야기술사


오색찬란한 명절: 2편 임아연의 이야기

너와 나



“그래. 네 맘대로 해!”

재혁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지금 날 두고, 혼자 가겠다는 거야?”

재혁은 내 말을 무시했다. 걸음이 빨라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혼자가 되었다. 한국인과 비슷한 듯 다른 체형의 사람들이 내 주위를 지나가고 조금전까지 들리던 K-POP이 들리지 않았다.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들이 나를 스쳐지나간다.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재혁의 전화일까봐 얼른 액정을 보았다. 액정에는 ‘부재중전화: 이영준’이라고 떴다. 바로 보이스톡 알림음이 울렸다.

“너 여행중이야? 언제 갔어?”

“어제 왔는데, 이제 여행 끝났어.”

차가운 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리고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해는 지고 날씨는 점점 쌀쌀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대학입학과 동시에 엄마에게 혼자 여행을 하겠다했다. 그 때, 엄마가 나를 말리며 약속을 했다. 내가 스물일곱살이 되면 혼자 여행을 보내주기로. 그 후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스물일곱살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스물일곱이 되는 해에 바로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이제껏 여행을 갈 때면 친구나 엄마와 같이 가다 혼자 여행을 가려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여행지는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일본으로 정했다. 우리나라와 제일 가까운 나라니까 위험부담이 적을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어떻게 여자 혼자 여행을 가? 안 돼.”

재혁이 반대를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부모님도 허락하셨고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간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재혁은 그럴거면 자기와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행비용은 다 본인이 내겠으니 꼭 같이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혼자 여행은 다음기회로 미뤄두고 재혁과 함께 가는 여행을 선택했다.

재혁은 정말 나를 혼자보내기 싫었는지 회사일에 바쁜 와중에도 여행준비를 혼자 했다. 평소라면 내가 도맡아서 했을텐데. 재혁의 행동이 내심 든든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했다. 혼자 여행가는 것 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며 기뻐한다. 하지만 막상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허탈해진다고들 한다. 그러니 혼자 여행을 하고 나면 생각처럼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전신사진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여행이 될지도 모르지.

재혁의 회사 때문에 여행날짜는 설날로 정했다. 여행을 갈 때 패키지여행이 아닌 이상에는 내가 전부 일정을 짰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혁이 스스로 하겠노라 했다.

그러나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네모를 어떻게 하느냐다. 작년 여름에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네모를 동물병원에 맡겼다. 하루에 오만원을 내는 애견호텔이였다. 여행을 마치고 네모를 데리러 동물병원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 네모가 네모난 철창에 갇혀있었다.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며 다시는 이 동물병원에 오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 이번 여행은 2박 3일. 네모를 집에 혼자두기에는 긴 시간이다.

“네모야, 이리와.”

네모는 내 목소리에 쪼르르 달려와서 안겼다. 립글로즈에서 달달한 향이 나는지 네모는 연신 내 입술을 핥았다. 네모를 들어올렸다. 네모의 혀는 허공에서 날름거렸다.

“널 데려가면 좋을 텐데. 어떡하지? 어떡할까?”

재혁에게 네모를 데리고 가자고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재혁과 네모는 서로 앙숙이다. 재혁은 네모가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네모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혔지만 소용이 없었다. 네모는 귀신같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꼬리를 흔들며 반겼지만 어느새 으르렁 거렸다.

“빨래 걷으러 갈까?”

네모를 안고 옥상으로 향했다. 네모는 내 품에 조용히 안겼다. 재혁도 나처럼 네모를 예뻐해주면 좋을 텐데. 옥상의 빨래건조대에는 아침에 걸어놓은 베개피와 수건이 말라있다. 반나절동안 햇볕아래 있어서 포근한 냄새가 났다. 옥탑방에 불이 갑자기 켜졌다. 네모는 옥탑방을 향해 짖었다. 지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왔다.

“또 너냐?”

그래. 네모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다.

지운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지운의 품에 네모를 안겼다. 지운은 얼떨결에 네모를 안았고, 네모는 편안한 표정으로 지운을 올려다보았다.

“언니, 이번 설에도 여기서 일 하지? 그럼 우리 네모 좀 맡아줘, 삼일만. 애견호텔비용 15만원 언니한테 다 줄게. 알았지? 고마워!”

지운은 내 말에 싫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네모의 거취가 해결되었다.

다음으로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면세점에 들어갔다. 며칠 전 바닥을 보인 아이크림과 파운데이션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운에게 선물도 사줘야겠다. 조금 전, 지운의 얼굴이 푸석해보였다. 수분크림이 필요할 것 같아 내 화장품과 함께 결제를 했다.

컴퓨터를 끄고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일본 맛집과 쇼핑리스트를 검색했다. 캡쳐를 잔뜩 해놓고 사진폴더를 정리했다. 일본 화장품과 예쁜 문구류를 사와야지. 생각만해도 설렌다.

설날에도 공항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휴가철과 크게 차이가 없어보였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8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나왔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고향이든 외국이든 집에서 나와 돌아다니나 보다. 재혁과 함께 수하물을 보내고 비행기에 탔다. 가족단위의 여행객, 친구나 연인끼리 온 사람들. 여행객의 유형은 명절이든 휴가철이든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살짝 건조한 비행기의 공기를 마주하니 상쾌해졌다. 기름냄새를 풍기는 집에 있지 않으니 살찔까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내 옆에는 재혁이 있다.

“우리 내리면 어디어디 갈 거야?”

재혁은 일에 집중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까지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회사업무를 했다. 비행기가 떠오르자 재혁은 노트북을 덮고 스마트폰을 비행기모드로 설정 한 다음, 자기 시작했다.

“오빠, 자?”

“나 요즘 계속 철야했어, 여기 오느라. 아직 일도 조금 남았어.”

재혁의 목소리에 피곤이 묻어났다.

“그래도 같이 여행 왔잖아.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해.”

“나 너무 피곤해.”

재혁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숙면에 빠졌나보다. 설마 여행가서도 이러지는 않겠지.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재혁이 예약한 호텔은 비즈니스 호텔이다. 재혁은 룸에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내서 책상에 앉았다. 십 분, 이십 분이 지나도 재혁은 나 대신 노트북만 보았다. 일본에 온 건지 회사에 온 건지 모르겠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이것만 하고 나갈 거야.”

늦은 오후에 체크인을 했는데 해가 져서야 재혁이 일어났다.

“이제 나갈까?”

“지금 시계를 봐. 이 시간에 어딜 나가.”

“그래? 그럼 내일부터 놀자.”

재혁은 침대에 누웠다. 비행기에서처럼 금방 잠들었다. 씻지도 않고 양말도 벗지 않은 채로 코를 골았다. 재혁을 흔들어 깨웠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재혁 옆에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났다. 창문 너머의 거리를 보았다. 문을 닫은 곳도 있고 아직 영업하는 곳도 있다. 혼자 맥주라도 한 잔 마시고 와야겠다. 아니면, 클럽을 갈까. 드라마 속의 멋진 여자주인공처럼 말이다. 지갑을 챙기고 코트를 입었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재혁이 눈을 떴다.

“어디 가?”

“잠시 나가. 피곤하면 자.”

“삐졌어?”

“몰라.”

그제야 재혁이 일어났다.

“미안해. 요즘 바쁜 시즌인거 알잖아. 여기 오는 거 무리해서 온 것도 알 테고. 그러니까 우리 내일부터 재미있게 놀자. 알았지?”

재혁이 다정하게 이야기하자 방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코트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럼 내일은 어디 가?”

내 질문에 재혁은 코골이로 대답했다.

재혁은 아침 아홉시가 넘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좁은 비즈니스호텔에 있으려니 따분했다. 핸드폰을 꺼냈다. 캡쳐해온 일본 맛집 포스팅을 보니 배에서 꼬르륵소리가 났다. 가방에서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기모레깅스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재혁은 어젯밤과는 달리 내가 나가는지도 모르고 쿨쿨 잤다.

일본거리는 아직 한산했다.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있었다. 블로그 추천식당을 찾아가 아침을 먹었다. 영어로 주문을 했으나 종업원은 알아듣지 못했다.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중심가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이 소용이 없는 순간도 있음을 알게 된다면 엄마와 아빠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토록 바랬던 혼자 하는 여행이 반은 이루어졌다. 재혁과 함께 비행기를 탔으나, 관광은 혼자 한다.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 여행지에 특별함이 없다. 예전에 일본을 왔을 때는 한류가 일어나기 전이라 일본만의 분위기를 느꼈는데, 지금은 명동에 있는지 일본에 있는지 헷갈렸다. 게다가 키가 작은 체형에 맞는 옷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살 수 있는 옷은 없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기장과 길이가 너무 짧았다. 일본에만 있는 것, 이제 그런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도 다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 사면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일테지.

그래도 역시 여행의 재미는 돈쓰는 재미다.

공부하면서 쓸 캐릭터 문구류와 지금 내 파우치에 있는 화장품과 비슷하지만 살짝 느낌이 다른 립스틱과 아이섀도를 샀다. 하나둘씩 사다보니 내 손에 쇼핑백이 많아졌다.

배부르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될 즈음에 재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전화기 너머로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일어났나보다. 나 혼자 호텔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루 종일 호텔에 갇혀있었겠다 싶었다.

“이제 일어난 거야?”

“어디냐니까.”

“신주쿠야. 신주쿠 지하철역 근처.”

전화가 끊어졌다. 이제야 재혁이 호텔 밖으로 나오나보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출구번호를 문자로 남겼다. 한참 뒤에 재혁이 왔다. 재혁의 얼굴은 울그락푸르락했다.

“왜 너 혼자 나가?”

“오빠가 계속 자고 있었잖아. 그리고 지금 전화 한 걸 보면 이제 일어났다는 건데. 어젯밤에 오늘은 같이 놀자고 그래놓고 하루 종일 이러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냐?”

“왜 너 혼자 나가냐고!”

되려 재혁이 큰소리를 쳤다. 처음부터 재혁은 여행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임아연 혼자 여행 보내지 않기’가 목표였나보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래. 나는 그게 중요해. 여자 혼자 이런데 돌아다니는 거 싫다고!”

“그렇게 싫었으면 지금까지 자지 말았어야지.”

“말했잖아. 계속 일 했다고. 피곤하다고.”

“또 일? 나도 조교하고 논문 쓰고 공부하고 바빠! 몇 달씩 길게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삼일이야. 그 정도도 시간 못 빼? 이럴 거면 왜 같이 오자고 했어? 그냥 내가 혼자 오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그러면 친구나 가족이랑 가라고 하지 왜 오빠가 오겠다고 했어?”

재혁이 말문이 막혔는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를 내버려두고 가버렸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재혁은 내가 호텔에 돌아오는 삼십여분 동안 화가 가라앉았는지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해.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일어났는데 네가 없어서 놀라기도 했고. 미안해.”

재혁의 사과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는 뭐가 미안한지 모르는 것 같아. 난 지금 귀국 할 거야. 원래는 이틀 더 있다가 한국 오는 거지? 그 때 오든지 아니면 지금 가든지 알아서 해.”

재혁도 가방을 꾸렸다. 같이 호텔에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으로 가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본에 여행 와서 처음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니 웃음이 났다. 재혁은 돌아가는 비행기편도 내 몫까지 구했고, 인천공항에 돌아와서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재혁의 자동차 뒷자리에는 각종 서류와 삼각김밥, 샌드위치 껍데기들로 지저분했다.

“들어가. 미안해. 내일 전화할게.”

재혁은 짧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재혁의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이번 설날 정말 최악이다.

네모의 위로를 받고 싶다. 부들부들한 네모의 털을 만지고 싶다.

- 오색찬란한 명절 2편 :: 임아연의 이야기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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