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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Nov 11. 2016

[달쓰반] 43편/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동상

이청준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3


도저히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자발적 굴종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이런 시국에 광화문에 동상 건립 추진이라니. 

다시, 책장에 묵혀 있는 책을 꺼내든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 책은 천국의 실체와 허상, 그리고 동상에 대해 심도있는 질문을 던진다. 


천국의 실체와 허상


 <당신들의 천국>은 진정한 자유와 사랑에 대하여 묻는 작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유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치열한 번민과 고뇌를 거듭한다. 그들의 신념은 때로는 타인에 의해 수정되기도 하고, 또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새롭게 변모하기도 한다. 자유와 사랑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록도의 사람들은 자유와 사랑을 대척점에 놓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들의 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천국의 실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천국은 양립할 수 있는가? 


천국의 정의와 원장들의 동상 


  천국과 비슷한 뜻을 지닌 단어로 낙원, 낙토, 이상향, 유토피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단어의 공통점은 바로 현실에는 없는 세계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국도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하늘 나라’ 정도가 된다. 결국 천국도 지상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소록도에 부임해 온 원장들이 지상에 천국을 만들려는데 있다. 항상 명분이 확실했던 원장들의 천국 만들기는 항상 실패로 끝나고 만다. 원장들의 선의는 왜곡되고 변질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욱의 입을 통해 그 이유는 바로 원장들이 스스로 동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위해 천국을 세울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이상욱을 주목해야 한다. 이상욱은 진정한 천국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천국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는 것에 대해 그의 과거를 연관시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천국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바로 지식인이라는데 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은 아니다. 그는 조백헌 원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그의 이러한 행위는 조백헌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조백헌이 소록도에 세우려는 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위해 천국을 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가치관대로라면 천국은 역시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된다. 


자유 의지의 부활, 탈출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에 부임해온 날 이상욱은 간밤에 있었던 탈출 사고에 대해 보고한다. 그리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섬을 둘러보다가 공원 같은 섬의 조경에 취해있는 조백헌에게 그는 그것이 섬의 실체는 아니라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소록도는 작은 사슴들의 섬이다. 조백헌은 소록도를 사자의 섬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사실 사자들에게는 천국이 필요 없다. 그들은 이미 죽음이라는 제의를 통과하여 자신들의 천국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천국은 사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를 위해 건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건설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둥이들이 단종 수술을 자진적으로 단종 수술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가 자손으로 인해 저당잡혀 있다는 피해 의식 때문이다.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를 사자의 섬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섬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 첫 번째로 행한 것이 축구 경기이다. 그는 소록도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고, 또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래서 축구 경기도 실시하고 건의함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그들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마도 간척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의 열성에 감동을 받아 소록도 사람들은 그 사업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 육지 사람들 때문에 사업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힌다. 스스로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 것은 소록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돌이 떠오르지 않자 스스로 몸을 던져 돌을 떠오르게 하겠다고 나선다. 조백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소록도의 집단적 광기이다.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질투, 자기 자신에 대한 자멸감, 육지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소록도를 휘감고 있다. 그들의 집단적 광기가 극에 달하면 어김없이 살육이라는 배반극이 감행된다. 그런데 이상욱은 소록도의 집단적 광기를 부추긴 것은 결국 조백헌이라고 비판한다. 

 조백헌이 만들려고 하는 낙토는 인간의 땅이 아니라 단순히 환자들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환자라는 올가미를 벗지 않는 한 영원히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갈 때는 필요한 조건은 아무 것도 없다. 환자라는 조건도 물론 필요없다. 그들에게 환자라는 조건이 필요한 땅은 이미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인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천국은 환자 수용소가 아니라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며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동상, 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천국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다스림을 받는자와 다스리는 자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다룬 알레고리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지배자의 동상-그것은 피지배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행동으로 인해 성립된다. 비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정수 원장의 동상만이 그렇게 세워진 것은 아니다. 지배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지배자들이 기꺼이 그의 동상을 지어 바쳤겠는가. 

동상은 다르게 해석하면 우상 나아가서는 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스로 부수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를 계속 옭아매는 존재이다. 물론 그것을 부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부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더욱 높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소록도 사람들이 주정수의 동상을 바치는 순간, 그들이 건설하고 있는 낙토는 소록도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주정수의 것이라는 사실이 명료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동상으로 표현되는 천국에 대한 배신이 피지배자 내부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자신들의 천국을 갈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 내부에 당신들의 천국을 짓고 있다는 사실은 지배 계층에 횡포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피지배 계층의 나약한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자유와 사랑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를 두가지로 꼽으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랑과 자유’라고. 소록도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 자유란 인간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섬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탈출 사고란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자유 의지가 발동된 것이다. 

이상욱은 그러한 자유가 조백헌으로 인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조백헌이 원장으로 부임해온 이후 탈출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가슴에 남아있는 자유 의지를 발현시키고자, 인간으로 섬을 빠져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택했던 탈출의 방법으로 섬을 나간다. 

 그러나 황희백 장로는 소록도에서 자유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여기서 자유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봤다. 황희백은 자유는 투쟁하는 것이고, 사랑은 베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가 개인적 가치에 더 가까운 것이라면, 사랑은 집단적 가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완성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보다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결국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물론 자유 없는 사랑도 있을 수 없고, 사랑 없는 자유도 있을 수 없다. 


버릴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누릴 수 있는 곳이 천국


 이상욱은 버릴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누릴 수 있는 천국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자유도, 천국을 버릴 수 있는 자유도 모두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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