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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Nov 11. 2016

[달쓰반]42편/영화 나쁜 교육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스페인, 2004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2


최근 문학과 지성사는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남자 시인들의 책을 절판하고, 

이들과의 출판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학계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인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낸 시인들뿐만이 아니다.

독자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는 물론이고, 저명한 국문과 대학 교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번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그들로부터 문학 교육을 받았던 이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범죄라고 한다.

습작생들의 절실한 마음을, 철저하게 농락한 이들이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그동안 강단에 섰다니, 솔직히 역겹기 그지 없다.

문학계에 물론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관련 기사는 꼬박 챙겨볼 정도로, 

(올해  밥 딜런이 수상한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곳이었던 만큼, 작가들이란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등

세계적인 작가의 글쓰기 습관에 감동받았는데, 

혹시 이 책을 쓴 작가들의 인성엔 문제가 없는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작가의 인성과 예술 작품의 완성도는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인성과 예술 작품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로 인터폴에 수배중인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가 

아무리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가 아동 강간범인 것을 알게 된 이상, 

나는 그의 영화를 지지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번 사건에 오르 내린, 

시인과 소설가들의 작품 또한 지지할 수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영화가 한편 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 세세한 장면까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목 만큼은 아직도 뇌리에 밝혀있다.

바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이다.

                                    

<나쁜 교육>은 강제적으로 소유하려고 했던 사랑이 일으키는 파국을 그린 영화다.

마놀로 신부는 어린 이그나시오와 관계를 맺고, 이그나시오가 사랑하는 엔리케(엔리케 역시 소년이다)를 내쫓는다. 이후, 영화는 마놀로 신부와 이그나시오, 엔리케 그리고 여기에 후안이라는 이그나시오의 동생까지 얽혀든 운명의 사슬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떠올랐던 단어는 바로 나쁜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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