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Nov 18. 2016

[달.쓰.반] 44편/연극 <날 보러와요>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 연극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4

지난 주말,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으로 알려진 연극 <날 보러와요>를 관람하기 위해

오랜만에 대학로에 갔다.

김광림 작가의 <날 보러와요>는 올해로 공연 20주년을 맞았다. 

오는 12월 11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DCF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여기,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네명의 형사들이 있다.


서울에서 지원한 김반장

서울대 영문과 출신의 시인 지망생이자 

FBI 수사 기법을 활용하고자 하는 서울 치안본부 출신의 엘리트 김형사

지역 토박이이자 부호인 박형사

무술 9단의 조형사


영화에서는 배우 송재호씨가 새로 부임하는 수사반장 역할을 맡았고,

과학 수사를 신봉하는 엘리트 형사 역할은 김상경씨가 맡았다.

아주 오래전에 관람한 영화라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연극에서의 박 형사와 영화에서의 박형사는 꽤 다른 인물인 듯 하다.


연극에서의 박 형사가 감초역할이라면

영화에서의 박 형사(송강호)는 자신의 육감을 믿는 인물로

과학 수사를 주장하는 서 형사(김상경)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로,

비중이 매우 높다.


용의자는 세명

정신병원에서 도망친 관음증 환자 이영철

(영화에서, 씬 스틸러로 유명했던 향숙이!와 비슷한 역할이다.)

꿈에서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는 술주정뱅이 남현태

사건이 있던 날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신청한 정인규

세 명의 용의자는 모두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한다.


용의자 남현태가 말했던, 

"내가 이러려고 경찰서에 왔나 자괴감이 든다"

라는 대사는 관객 모두를 빵 터지게 만들었다. 


연극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비오는 날 밤마다 

정인규가 신청했던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현규(박해일)가 신청한 것은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였다. 


언젠가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관련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봉준호 감독이 

범인은 매체에서 자신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므로 

아마 이 행사에도 왔을지도 모른다, 

문을 닫아 걸고, 모발 감식 등의 DNA 검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읽고 영화의 원작 연극 제목이었던

<날 보러와요>를 잠깐 생각했었다.

기사를 읽은 당시에 연극을 관람한 것은 아니지만,

<날 보러와요>라는 연극 제목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제목이다.

이 말은 범인이 자신을 잡지 못한 형사들에게 한 말일 수도 있고,

범인에게 이 연극을 보러 오라는 말일 수도 있다고 한다.

작가인 김광림은 후자의 뜻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밝혔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연극은 범인을 잡는 사람들쪽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검찰은 쪼아대고, 언론은 쑤셔대고, 

기껏 용의자를 잡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줘야 하고...

형사들의 고뇌는 충분히 잘 전달되었다.


연극에서는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터럭을 찾아내기 위해 

수사반장과 박형사가 사건 현장의 흙을 몰래 파와서 

샅샅이 뒤진다. 그런 수고 끝에 발견한 터럭을 국과수에 보냈지만, 

예상밖의 결과가 나왔던 것. 


DNA 감식 결과를 기대했지만, 결국 예상 밖의 결과로 인해 

정인규를 석방한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 김형사. 

무대 위에 울려퍼지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관객들도, 

배우들과 함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정인규는 정말 범인이 맞을까?

당시 DNA 감식 기술로는 부족했던 걸까?

만약 다시, 그를 잡는다면, 이제는 범인이라고 밝혀낼 수 있을까?


올해 초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드라마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경기 남부 살인사건이라는 내용으로 다뤄진다.

<시그널>에서는 범인이 밝혀졌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수사반장은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켜서도 안된다는 말을 한다. 


과학 수사는 다 옳은 것일까?

만약에 오늘날에도 다시 DNA 감식 결과를 했는데도, 

정인규가 범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극장을 나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1986년, 용의자의 나이는 17세~25세로 추정.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재조명하기도 했다.

용의자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50대 중년 남성이 되었을 것이라며

몽타주를 공개한 것. 

중국판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28년만에 검거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심 때문일까? 

연극 <날 보러와요>의 정인규는 김형사가 레퀴엠 이야기를 꺼내며 

다그치기 전까지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관객 입장에서 그의 입을 통해 일말의 뉘우침이라도 듣길 원했지만,

연극이 끝나는 시점까지, 정인규는 무대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 <시그널>이 주었던 메시지가 떠오른다. 

 포기하지 않는 한, 미궁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 43편/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동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