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케: 임아연의 이야기

설레임, 벚꽃엔딩

by 이야기술사

너와 나의 연결고리: 임아연의 이야기

설레임, 벚꽃엔딩



벚꽃엔딩의 계절이 되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자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벚꽃엔딩이 음원차트에 나왔다. 나긋나긋한 멜로디를 들으니 정말 벚꽃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 있는 느낌이 든다.
“엄마, 나 오빠랑 헤어질까봐.”
벚꽃구경 중이라는 엄마에게 날벼락을 선물했다.
“왜?”
“그냥, 헤어지고 싶어. 만나도 좋은지 모르겠어.”
“남자, 별 남자 없어. 자기랑 다 맞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맞춰가면서 사는 거지.”
“맞춰가면서 산다는 건 결혼하고 나서 헤어질 방법이 없을 때나 하는 얘기지.”
“그래도 재혁이 정도면 능력있겠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어디가도 그런 사람 없다. 엄마가 주위에서 힘들게 알아본 거야.”
엄마는 재혁과 헤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정말 엄마 말대로 어느 남자나 다 비슷비슷 할까. 알았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 핸드폰에서 스트리밍되던 벚꽃엔딩이 이어졌다. 그대와 함께 손을 잡고 걷는다는 가사를 듣자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고보니 재혁과 아직 벚꽃을 보러 간 적은 없다. 재혁과는 작년 여름부터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재혁은 엄마의 소개로 만났다. 엄마가 전화로 재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이와 학교, 이름 그리고 직장까지. 전화상으로 들은 터라 이름을 ‘대혁’이라고 알아들었다. 처음 만날 때 재혁은 예약을 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점원에게 “강재혁입니다.” 라고 해서야 강대혁이 아니라 강재혁이구나, 생각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골라준 남자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내게 항상 최고의 것들만 줬으니까. 학교, 학원, 과외선생님, 책, 옷, 화장품 등등. 내가 고르는 것보다 엄마가 고르는 것이 더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엄마가 골라준 것을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가 골라준 재혁은 최고의 조건을 가진 남자이긴 하다.
나에게 최고의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마 말대로 조금만 더 만나봐야지.
“언니는 남친 스스로 만난 거예요?”
지운에게 물었다. 지운은 마감 때문에 바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운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너와는 달리 난 좋아.”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옥상에서 내려왔다. 빨래가 한가득인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재혁전용 벨소리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손이 없는데. 끊이지않고 들리는 벨소리가 귀찮게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여니 빨리 전화를 받으라는 뜻인지 네모까지 시끄럽게 짖는다. 이불을 거실에 팽개쳐놓고 핸드폰을 보았다. 쉴새없이 울리던 벨소리가 내가 핸드폰을 드니 부재중통화로 넘어갔다.
재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 토요일, 기억하고 있지?”
잊고 있었다. 오빠친구 결혼식에서 부케 받기로 한 날.
“예쁘게 입어, 신부 보다 더. 내 친구들도 많이 올 테니까.”
세상에 신부보다 예쁜 하객이 어디에 있을까. 혹시라도 있다면 그건 메이크업아티스트가 신부에게 화장과 헤어를 제대로 안해 준 거겠지.
겨우내 살이 좀 찐 거 같은데, 운동이나 하러 갈까. 신부 다음으로는 예뻐야 할테니까.
운동복과 속옷을 챙기고 집에서 나섰다. 길거리에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낯빛도 새까맣다.
“아연아!”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영준이 짧은 다리로 헥헥거리며 내게 뛰어왔다. 영준의 구두가 생각보다 길어보였다. 그래도 남자라고 키가 작아도 구두사이즈는 큰가 보다.
“퇴근하는 길?”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갈색의 납작한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니던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지 서류가방을 든 영준의 모습이 낯설었다. 재혁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웬만한 물건들은 차에 두고 지갑이나 차키만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영준은 한 순간도 가방을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응. 어디 가?”
“운동하러 가. 넌 운동 안 해?”
영준의 볼록한 배가 보인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배는 없었는데, 취업을 한 뒤로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준은 뱃살은 이제 인격이 아니라 연봉의 상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회사생활을 하면 꼭 따라다니는 회식, 그리고 이제 개인시간이 회사에 반납된 덕분이라고 그랬다.
“집에 가서 쉬어야지. 간만에 일찍 퇴근했는데, 자고 싶다.”
“그래, 잘 가.”
영준은 손을 흔들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뒷모습이 정말 기운 없어 보였다. 핸드폰으로 어깨 좀 펴고 기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헬스장에 갔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는 트레이너의 이야기에 멀쑥해졌다.
헬스는 재미가 없다. 운동기계에 몸을 맡기고 텔레비전이나 음악을 들으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헬스 끊어놓은 걸 다 하고나면 요즘 유행하는 그룹운동으로 바꿔볼까. 혼자 하는 게 재미없으니 다같이 운동을 하면 즐거울까. 동네친구가 영준 말고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같이 운동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면 좋을 텐데. 내 동네친구들은 서울로 유학을 간 나를 빼고 다들 재미있게 지내고 있겠지.
핸드폰 액정을 보았지만, 재혁의 연락은 없고 대신 영준의 문자메시지가 있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적당한 답문이였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 그냥 핸드폰을 잠갔다. 런닝머신기계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뛰지 않아서인지 땀은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칼로리소모량은 제법 나왔다.
주말까지 계속 러닝머신을 걸으면 살이 조금은 빠지겠지?
별다른 감량없이 결혼식장에 가게 되었다.
예식장 복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층에 홀이 많아서 누가 어느 홀의 하객인지 모르겠다. 재혁은 축의금을 내고 식장에 들어와 앉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신부대기실에 가보거나 포토테이블의 사진들을 보지 않았다. 예식장 안에는 짧은 식전영상이 반복되었다.
“재혁아, 왔어? 아, 안녕하세요.”
재혁의 친구들이 왔고, 내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나도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재혁은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친구들은 재혁 근처에 앉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사 이야기, 결혼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고, 오늘의 신랑과 신부는 재혁의 친구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재혁이 고등학교때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재혁은 친구들과 신나게 대화를 했고, 나는 재혁의 옆에서 그저 웃으면서 이야기들을 듣고만 있었다.
시간이 흘러 신랑과 신부가 입장을 했다. 간략한 주례사가 끝나자 부케를 던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신부 옆에 서 있다가 사진사의 이야기에 하객들 앞으로 나왔다. 신부를 바라보는 신부의 친구들은 배가 부르거나 아니면 사진사 옆에 있는 아기에게 눈을 맞추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는 없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랑측에서 부케를 받는 사람이 나올리 없겠지. 신부는 내게 눈인사를 했고 신부 뒤에 멀찍이 떨어져 섰다. 사진사의 말에 맞춰 부케가 던져졌다. 신부가 잘 던져서 한번에 잡았다.
하지만 사진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진으로 예쁘게 안 담겼으니 한 번 더 찍읍시다.”
다시 부케가 던져졌고 이번에도 사진사가 한번 더,를 외쳤다.

출처: <청담동> 플로라벨로 웨딩부케 http://me2.do/xq4VylOk

네 번째가 되어서야 사진사가 오케이를 했다.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재혁은 식권을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어느 예식장이나 비슷비슷한 뷔페가 준비되어있다. 예식전에 얘기를 나누던 재혁의 친구들은 예식 중간에 나왔는지 이미 식탁에 빈 접시가 가득 쌓여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육회가 맛이 있으며 잡채는 당면이 불어서 별로라고 알려주었다.
하객들에게는 결혼식을 하는 시간보다 식사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차가운 뷔페 음식을 먹으니 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랑과 신부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테이블을 돌면서 감사인사를 했다. 신부가 내게 부케를 잘 받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다음 테이블로 갔다.
식장에 올 때부터 지금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가 바뀌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똑같은 예식형태에 다른 사람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장을 나갈 때, 재혁은 밥이 맛있고 주차장이 넓어서 좋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런 데서 결혼 하게 될까?”
내 질문에 재혁은 그러자고 대충 대답했다.
엄마가 기대하는 재혁과 나의 결혼이 정말 이루어지기는 할까.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자고 싶다.
영준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집에서 쉬고 싶다.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한걸까.
그날 밤, 영준은 저녁도 안 먹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다는데, 나도 집에 가자마자 잠들어야겠다.

벚꽃엔딩을 틀어놓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이 노곤해졌다. 잠옷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부케는 소파에 던져져있고 네모가 킁킁거리며 부케 냄새를 맡고 있다.
“네모야, 그거 먹으면 안 돼.”
이제 부케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인터넷검색을 해봐야겠다.
벚꽃엔딩 노래, 우리 집에서 이 노래 하나만 설레임을 전하고 있다.


출처: <청담동> 플로라벨로 웨딩부케 http://me2.do/xq4VylOk

- 너와 나의 연결고리 2편 :: 임아연의 이야기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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