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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Dec 21. 2016

[M.M.C] 35편/천사들의 탐정
/하라 료

天使たちの 探偵

Madam Mystery Cabinet No.35     


천사들의 탐정  

 天使たちの 探偵 

 하라 료∥권일영 옮김  

 

 “사람에겐 기회가 필요하지. 죄를 짓기 위해서라도…”  p239   

 

  쓸쓸하지만 따뜻한, 담백하고 애잔한, 평상시 자주 누리지 못하는 감정들. 나는 그래서 하라 료의 작품을 좋아 한다. 그는 나에게 과하지 않은 사치를 누리게 해준다. 넘치지 않는 감정의 사치. 

  나는 뭐라도 보답하고 싶어 진다. 

  연말도 되고 했으니 아주 작은 기념품이라도. 

 《동경, 니시신주쿠, 잡거빌딩 2층,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사와자키》 앞으로 엽서라도 보내고 싶다. 

   아주 간절히.      

  

  이 작품은 총 6편의 중,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소년이 본 남자』 의 의뢰인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사와자키는 난감하다. 그래도 어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그가 아니다. 절대로 자상하지 않은 그는, 그렇다고 냉혈한은 더더욱 아니다. 이야기는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한다. 사와자키와 의뢰인 소년이다. 시점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사와자키가 소년의 심정을 헤아리듯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소년의 마음이. 

  

『자식을 잃은 남자』 는 가장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의뢰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눈이 가늘고 길며 눈썹과 수염이 옅은 전형적인 조선인 아니면 한국인”

  새로웠다. 아! 이렇게 보이는 구나 싶기도 했고. ‘전형’이라는 단어도 그랬다. 

  자식을 잃은 남자인 의뢰인 최정희와 함께 그가 살아온 우리 역사가 아팠다. 같은 조선인 또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사와자키, 혹은 하라 료가 보는 우리의 현대사가 말이다. 

  자연스럽게  영화 [GO]가 떠올랐다.

  

“여름은 일 년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지는 계절이다 - 특히 멍청한 어른들 흉내를.” p107

  

『240호실의 남자』 캐딜락 ‘엘도라도’를 타고 온 의뢰인. 이 작품은 소설집에서 가장 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 소설집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결코 집 밖으로 세어나가기를 원하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 그래서 어쩌면 더 비극적이 될 수도 있는. 

  

『이니셜이‘M'인 남자』 새벽 1시,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 사와자키는 의뢰를 받지도 않았지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전화는 자살 직전의 소녀에게서 온 것이었고 소녀는 곧 자살했기 때문이다. 중, 단편이라고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마지막 단락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반전이 허를 찌르기 때문이다.  

 

『육교의 남자』『선택받은 남자』에서도 사와자키의 ‘츤데레’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하라 료의 이전 작품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와 『내가 죽인 소녀』 에서의 사와자키 보다는 확실히 연륜이 묻어난다. 사와자키의 말투는 조금 부드러워졌고 덜 냉소적이 되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거칠고 정리되지 않았던 혼돈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숨을 깊게 내쉬며 책장을 덮었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겨울에도, 얕은 북서풍이 부는 가을에도, 아니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을 …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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