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Jan 12. 2017

[달쓰반]53편/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호모 노마드, 유랑하는 인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53


‘노마드’란 말은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들뢰즈가 저서인 <차이와 반복(Difference and Repetition)>에서 처음 언급한 단어다. 이후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라는 저서에서 노마드와 노마디즘의 개념을 확대시켰다.

 노마드란 유목민을 뜻하는데 자크 아탈리는 이 개념을 확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명명하였다.


 지금까지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프로이트나 라캉의 이론을 빌어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을 읽었다. <오이디푸스 왕>은 정주민인 테베의 국민들이 노마드였던 오이디푸스 왕을 몰아내는 과정을 그리스 비극의 양식을 빌어 담아낸 책이다.

  또한 자크 아탈리는 안정된 삶을 얻고자 하는 정주민들이 노마드와 여러번 싸움을 일으켰던 사례를 자신의 저서인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 기술하고 있다. 그는 노마드란 단순한 유목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지식인 등 다양한 계층의 노마드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테베의 국민들은 스핑크스를 물리친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추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방인 출신의 왕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몰락을 암시하는 전염병. 이것은 오이디푸스에 대한 테베 국민들의 반감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오이디푸스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그의 두 아들조차도 아버지의 저주 때문에 왕위를 잇지 못한다. 그 뒤를 잇게 되는 것이 크레온이다. 크레온은 테베의 왕자로서 정주민의 대표자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처남인 크레온을 델포이에 보내 신탁을 받도록 한다. 크레온은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잡아야만 나라가 평온해질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을 범인으로 의심하면서, 그가 자신의 왕위를 찬탈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가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면서 화를 내지만 오이디푸스가 선왕 라이오스을 죽이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동침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를 나라 밖으로 내쫓는다. 물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처지를 비통해하며 스스로 떠난 유랑길이긴 했지만 테베의 크레온도, 그의 두 아들도 그의 처지를 동정하진 않았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오이디푸스가 크레온에게 하는 말이다.


옛날, 내가 자초한 불행이 애달파서 내 나라 밖으로 쫓겨나기를 열망했을 때 너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통렬한 슬픔이 누그러지고 집안에 격리되어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길 만하자, 그때는 네가 집과 나라 밖으로 나를 쫓아냈다. 그때 혈연관계 따위는 너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사후, 자신이 제정한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안티고네를 처형한다. 그 때문에 그의 아들도 죽게 된다. 고지식할 정도로 법의 제정과 운영에 대해 신경 쓰는 크레온을 보면 정주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오이디푸스가 파멸한 이유는 그가 운명을 거부하고 유랑의 길을 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랑을 그만두고 테베에 정착했기 때문일까?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를 떠나 유랑을 했기 때문에 선왕 라이오스를 죽였다. 하지만 그가 계속 유랑을 택했다면, 테베의 왕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면서 스핑크스를 물리쳤을 때의 명민함을 잃어버린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위한 충고조차 귀담아 듣지 않는다. 테이레시아스와 이오카스테가 제발 범인을 찾는 일을 그만두라고 애원하지만 그는 기필코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한다. 그는 장님인 테이레시아스를 조롱하지만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의 두 눈이 추악한 진실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이를 무시한 채 자기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저주를 선왕을 죽인 자에게 퍼붓는다.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살인범이 그 누구든, 감추어진 범죄를 혼자 저질렀든 일당과 함께 저질렀든 간에 그가 악했던 만큼 흉악하게 저주받은 생애로 끝맺게 되기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만일 내가 알면서도 그자를 내 집에 들여놓는다면 방금 다른 사람에게 내려 달라고 빌었던 것과 똑같은 일을 나 자신이 당하게 되기를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범인일 리 없다며 그를 다독인다. 오이디푸스 역시 예언을 거부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온 기억을 되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러나 결국 라이오스를 섬기던 목자가 나타나고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유랑의 길을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유랑지에서야 비로소 예전의 판단력을 되찾는다.


 그는 테베를 떠난 뒤 딸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유랑을 하다가 콜로노스라는 곳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벌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크레온이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집안에게 참혹한 저주를 퍼부었다고 말하자,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항변한다.


나는 기막힌 운명으로 내 의지에 반하여 이런 일들을 겪었다. (중략) 그토록 네가 나에게 비난한 그 결혼이나, 네가 언제나 모질게 욕하고 있는 아버님의 살해 때문에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지는 못하리라. 나도 네게 한 가지만 묻겠는데, 대답하라. 만일 지금 이 자리에서 네 앞을 가로막고 올바른 너를 죽이려는 자가 있다면, 너는 그 살인자에게 아버님이 아니시냐고 묻겠느냐? 아니면 당장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 너도 목숨을 아끼는 자이므로, 그 살인자와 맞붙어 싸울 것이며 이것저것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당한 곤경이 바로 이러했으며 그것은 신께서 정해놓은 운명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유랑지에서 심신의 평온을 되찾는다.  나는 오이디푸스의 ‘유랑’을 존중한다. 비록 오이디푸스는 신들에 의해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지만그가 가진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오카스테의 충고와 테이레시아스의 충고를 무시했던 그의 오만함조차 존중한다. 그는 자신이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코린토스 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까지 파헤치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이것은 노마드가 유랑을 하는 목적이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었을 때도 노마드였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노마드임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오카스테는 자살했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았던 것이다. 죄과를 반성하기 위해 두 눈을 찌르고 다시 떠나는 길에서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

 내가 오이디푸스 왕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신들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사내가 아니라, 비극적인 순간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호모 노마드였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52편/뮤지컬<인 더 하이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