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원작의 맛

터널

<터널>, 소재원, 작가와비평

by 이야기술사

※ 본문에 영화 및 소설 <터널>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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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덕혜옹주>를 다루면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터널>을 언급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터널>과 원작 소설 <터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 <터널>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따라서 이번 글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원작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접한 경우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영화와 소설의 결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쉽게도 소설의 결말의 일부를 읽기 전에 알아버렸다.)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를 재미있게 본 터라, 영화 <터널>에 대한 기대가 컸다. <끝까지 간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긴 했어도 웃음 코드를 잘 활용한 그러면서도 제목과 같이 끝까지 집요했던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터널> 또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원톱 주연의 배우가 주로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다소 지루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중간중간 유머 코드를 잘 활용하였다. 물론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의 역할도 컸다.

이 부분이 바로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 중 하나다. 소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심각하고 우울하다. 그리고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처녀작의 냄새가 물씬 난다. 표현이 거칠고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작가의 감정이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최근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가는, 소재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판단할 수 없었다. (참고로,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영화 <비스티보이즈>의 원작 <나는 텐프로였다>, 영화 <소원>의 원작 <소원> 등이 있다.)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터널 부실 공사와 관련된 시공사의 잘못, 사업소의 비리,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겁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 언론의 간사함 등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것보다 대중들의 잔인한 여론이 더 무게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소설의 소제목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얼굴을 감춘 모든 대중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정수의 구조 때문에 인근에 사는 노인들이 먼길을 돌아서 병원에 가다가 사망하는 사고, 구조 작업에 참여 중이었던 기사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 등으로 인해, 이정수를 동정했던 여론은 무섭게 돌아선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그의 생존 자체에 의심을 품으며(죽었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이정수의 아내 김미진과 딸을 괴롭히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주인공들의 절망은 극에 달한다. 딸이 아파도 병원조차 가기 힘들어진 김미진은, 계속되는 사람들의 협박에 아빠한테 오지 말라고 까지 말하는 딸을 보며 결심을 내린다. 매일 10시 이정수를 위한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통해 '포기'라는 단어를 전하는 것.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간신히 살아있던 이정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차에서 불을 질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작가는 잔인하게도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이정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인 대중들은, 이정수의 죽음이 자살임이 밝혀지자 이제 그 책임을 김미진에게로 돌린다. 김미진의 불륜, 혼외자식 등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리고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 마녀 사냥을 시작한다. 그녀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대중의 칼날에 시달린다. 결국 그녀는 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만다.

남자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터널에서 무사히 구출된 영화와는 달리 이 얼마나 잔인한 결말인가. 읽는 내내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작가의 생각을 터널 구조 전문가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방식, 전문가와 형사의 토론 장면 등은 다소 진부하다. 그리고 거친 감정 표현과 문장은 미숙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왜 우리 모두가 살인자라고 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뜨거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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