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권비영, 다산책방
※ 본문에 영화 및 소설 <덕혜옹주>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3일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손예진은 영화 <덕혜옹주>로 여차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덕혜옹주>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 보다도 배우 손예진이 10억원을 투자했다는 기사로 더 이슈가 됐던 작품이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터널>을 보고 나서 이 영화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기를 놓쳤었다. 그리고 한참 전에 사놓은 책을 이제야 읽게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역사 왜곡, 기대 이하 등의 영화 평들 또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먼저 소설 이야기를 하자면, 일단 잘 읽힌다. 몇몇 역사를 소재로 삼은 소설들이 가독성이 좋지 못한 경우가 있다. (물론 역사 로맨스 소설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덕혜옹주>는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고 역사적 사실을 다루되 중심은 언제나 '덕혜옹주'에게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와 독립 운동에 몸을 바친 투사들의 이야기에도 심장이 뜨거워지지만, 무엇보다 '덕혜'라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녀가 독립 운동에는 관심없는 황족에 불과했든, 자기 자신조차도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정신질환자에 불과했든, 비극의 역사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점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한 많은 역사를 되돌아보게끔 만들었다. 바로 이 점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다.
영화는 관객들의 애국심을 호소하기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들을 집어넣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의 늘어지는 작별 인사, 눈물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신파 등 진부한 정서를 담고 있었다. 장한과 덕혜의 첫 만남을 다룰 때에도, 소설에서는 백부 김황진을 따라 궁에 온 장한이 '잔향만을 남긴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꽃잎' - 49쪽 이라고 표현하며, 고운 덕혜의 얼굴을 보고 '난생 처음 찾아온 이 감정' - 50쪽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러한 서정적인 첫만남이 그려지지 않았다. 많은 관객들의 평과 같이 덕혜옹주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창덕궁 낙선재, 그녀가 일본으로 간 이후 평생을 그리워했던 창덕궁의 아름다운 후원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그 외에 영화의 극적인 장면을 위해 덕혜옹주가 아버지 고종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는 점, 중간중간 장한과의 만남이 잦았다는 점 등 또한 영화에서 소설과 달리 그려진 부분이다. 그러한 부분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복순의 이야기가 빠진 점은 아쉬웠다. 복순은 덕혜의 또래로 둘은 자매같은 사이였다는 점, 강제로 옹주마마에게서 떨어진 이후 그야말로 험난한 삶을 살았다는 점, 무엇보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복순이 덕혜옹주가 갇힌 정신 병원에 청소부로 들어가 옹주와 같은 옷을 입고 희생해준 덕분에 덕혜옹주가 무사히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점 등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덕혜옹주의 딸 정혜, 모녀의 관계 또한 영화에서는 소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려졌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혜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조선으로 가자며 자신을 '정혜'라고 부르는 엄마 덕혜옹주에게 '마사에'라고 부르라며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영화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하고 덕혜옹주가 정혜를 데리고 조선으로 가고자 한 장면과 이후 정혜의 자살이 갑작스럽기만 하다.
'사이다'를 마시면서 막을 내리는 영화 <덕혜옹주>.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극화한 순수 창작물이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 <덕혜옹주> 또한 '소설적 허구' 라는 말과 함께, '옹주의 환국은 그 당시 신문기자였던 김을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밝힌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 왜곡, 기대 이하의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도를 여행하고 온 작가가 덕혜옹주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일본인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희 - 이씨 조선최후의 왕녀> 라는 책이 유일한 덕혜옹주의 삶을 흥미로운 소설로 잘 풀어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