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Jul 16. 2017

[달.쓰.반] 65편/김영하 산문집 <읽다>

김영하 산문 삼부작- 문학 탐편/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작가외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65


요즘 대형 서점의 베스트 셀러 판매대에 '알쓸신잡'이라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알쓸신잡'은 나도 평소 즐겨보는 예능 프로기도 하거니와 

출연진 중 미식평론가 황교익씨와 뮤지션 유희열씨를 제외한 

김영하, 유시민, 정재승씨의 책은 전부는 아니어도 꽤 읽었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신작 소설이 베스트 셀러 상위권에 올랐다는 소식에 흐뭇했다.

방송의 힘이든 어쨌든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작가의 신작 소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반가운 일이다.


팟캐스트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부터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김영하 작가의 방송을 간간이 듣기도 했고 

그의  단편 소설(거울에 대한 명상, 사진관 살인사건)을 

원작으로 하는 한석규, 이은주 주연의 영화 <주홍글씨>도

매우 인상 깊게 본 만큼,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올릴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다고 하면 

시간이 되는 한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일까. 

2016년 신년 모임에서 책 교환 이벤트를 할 때, 

나는 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 중 한권인 <읽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비 뽑기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였다. 


내심 원하던 책을 갖게 되어 기뻤고,

책은 금세 다 읽었지만

리뷰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요즘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의 모습을 보니,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이 생각났다.


<읽다>는 문학동네에서 펴낸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삼부작 중 완결편이라고 한다.

<읽다>에서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총 여섯개의 큰 주제로 나눠 들려준다. 

하지만  전부 책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돈키호테형 인물을 설명할 때는 <빅뱅이론>의 셸든과 레너드가 

예시적 인물로 나온다. 

<빅뱅이론>은 미드를 즐겨보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만큼 

돈키호테형 인물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작가의 말에서 밝히길 2015년 5월 23일부터 8월 15일까지 독자들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다고 한다. 

여섯개의 주제는 아마도 김영하 작가가 진행했던 강연의 주제와 동일한 듯 하다. 


그 강연을 듣지 않았던 나는, 

작가가 책에서 이끄는 대로,  문학 강연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 서술되어 있어 

술술 읽힌다.


첫째날은 위험한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다.

김영하 작가는 독서란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와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둘째날은 '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주로 다뤄지는 책은 <돈키호테>와 <마담 보바리>. 

작가는 환상과 현실의 심각한 불일치를 경험한 돈키호테와 보바리에 관해 설명해주는데, 

레포트를 쓰기 위해 그동안 수없이 읽었던 '보바리즘'에 관한 수많은 설명보다도

김영하 작가의 설명이 제일 이해가 잘 되었다.


"그녀는 자기안의 환상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여기서 쥘 드 고티에가 명명한 또하나의 '보바리즘',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이 에마를 지배합니다. 그녀는 시골 의사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다 죽어가는 운명을 거부합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돈과 어음이라는, 환상의 정반대에 있는 무거운 추를 에마 보바리에게 달아놓았습니다. 그녀의 화려한 삶, 끝없는 연애는 지속가능하지가 않습니다.채무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마는 수도원에서 읽은 로맨틱한 소설의 일부를 삶에서 재현합니다. '어두운 숲, 마음의 혼란, 맹세, 흐느낌, 눈물과 키스' 같은 것들을 겪습니다.
그러나 여성에게가혹한 19세기 자본주의는 돈키호테와 같은
귀한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책에서 본 환상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대가를 죽음으로 치르게 됩니다.



작가는 <돈키호테>와 <마담보바리>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들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에마의 일부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이야기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 이야기의 우주가 무한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 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영겁의 시간에게 접속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없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셋째날의 주제는,  '책속에는 길이 없다' 

넷째날의 주제는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

다섯째날의 주제는 '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여섯째날의 주제는 '독자, 책과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각각의 장들에서 김영하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 문학사의 고전을 

독자적인 시선으로 해석해준다. 하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네이버의 지식인에 올라온 독자(p.129)의 질문에 관한 이야기였다. 


"2007년 7월 3일에 한 독자는 네이버 지식인에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Q. 김영하의 <흡혈귀>에서 작가 자신과 친하다고 했던 동료 문인은 누구인가요?

소설 안에서 김영하에게 편지를 보낸 김희연의 남편으로 나온 인물요.

전 아직 김영하 입문한 지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어요. 

관심 있게 읽고 싶습니다.

꼭 알려주세요.

제가 액자소설을 현실과 혼동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질문의 마지막을 보면 질문하는 독자 역시 액자소설이 가진 이중성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액자 때문에 더 사실 같으면서도, 어쩌면 그냥 서사적 트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독자를 갈등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현실 세계의 실제 작가와 

그 작가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액자 소설 속의 작가가 

동일인물인지 아닌지를 헷갈려 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메타픽션 기법이 흥미롭게 쓰였던 사례로

롤리타의 머리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는

1955년 프랑스에서 책이 출간된 이후 큰 화제를 모으고

미국에서도 책이 출판되자 

일종의 머리말을 쓰게 된다.


존 레이 주니어 박사 라는 가상의 인물을 빌려

<롤리타>는 정신병리학 분야의 고전이 될 것이 확실하다,

문학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안겨줄 윤리적 충격이다.

이 통렬한 개인 사연 속에는 보편 적 교훈이 숨어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악행을 고발하는 역할도 한다.

경각심과 통착력을 심어줌으로써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세대를 길러내는 일에

매진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라는 머리말을

나보코프가 썼다는 것인데 

김영하 작가는 이 머리말을 나보코프 자신의 발언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위선적 도덕관에 대한 일종의 야유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내용이 야기할 사회적 비난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어느 정도 기대하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하며 푸시킨의 사례도 언급한다.


<스페이드 여왕>을 쓴 푸시킨이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일종의 페이크 서문을 쓴 바 있기 때문에 

나보코프가 모국의 대선배로부터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미지의 인물로부터 받은 원고를 대신 편집하여 내놓는다는 식의 서문은 

작가가 받을 윤리적 비난을 희석시켜줄 뿐 아니라 액자 속 소설 내용을 독자가 전적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완충해주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김영하 작가 자신도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에서 영감을 얻어 단편 <흡혈귀>에 같은

기법을 쓴 적이 있다고 밝히며 소설의 시작 부분을 직접 언급해준다.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가끔 이상한 전화나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소설에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대뜸 전화를 걸어와서 자신이 지금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뭐 해줄 말이 없느냐는 식이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그러겠는가 싶어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난감한 노릇이다.

(중략)

P. 128


김영하 작가가 나보코프의 머리말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대목은

종국에는 문학 평론의 여러가지 방법(일명 문학의 효용론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까지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이 산문집을 덮으면서 한마디로 감상을 압축하자면,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곧 자아의 투쟁이라는 것. 

어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어떤 책을 읽은 후의 나는 결코 같을 수는 없다는 것. 


PS.  김영하 작가의 소설 중 기억에 남는 책들. 

아마도 작가 '김영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준 책이지 않을까? 
괴물 신인 작가 김영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책?
"김영하 작가=젊은 작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책? 
김영하 작가도 이렇게 쓸 수 있나  혹은 이렇게 써야만 하나, 하고 조금 놀랐던 책? (현대문학상 수상작)




소시민 간첩 이야기인데 김영하 작가 장편 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책 
개인적으로 꽤 실망했던 장편소설. 


애니깽 이야기인데 읽을 때는 정말 힘들었으나 다 읽고 나니 기억에 꽤 남었던 장편 소설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 64편/ 옥자(스포, 결말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