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올덴뉴 14화

[올덴뉴] 14편/나는 치즈다(스포주의)

로버트 코마이어 장편소설/김연수 옮김(2008년 12월 초판 발행)/창비

by 이야기술사

새책과 헌책을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 14

※ 주의: 이 리뷰에는 소설의 주요 장면 (반전) 및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최근, 국정원 관련 기사를 대충 훑어보다가, 한숨이 나와서

책장에 있던 오래된 책을 꺼냈다. 2008년 12월, 초판 발행된 <나는 치즈다>

당시 이 책을 사놓고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싶어 깜짝 놀랐다.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을까, 후회할 정도로, 단숨에 읽었다.


<나는 치즈다>는 197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옮긴 김연수 작가의 말에 따르면,

로바트 코마이어의 <나는 치즈다(I AM the Cheese)는 청소년 소설로 보기에는 특이한 점이 많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이 개인의 내면적 변화에 초점을 두는 반면 <나는 치즈다>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어두운 모습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2개의 플롯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인 애덤 파머의 자전거 여행,

다른 하나는 브린트라는 사람과 나누는 애덤의 대화이다. 그런데 이 대화는 어디서 이뤄지는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소설이 진행될수록 독자는 애덤이 진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게

맞는지 의심을 하게 된다.

애덤의 진짜 이름은 폴 델몬트. 그런데 폴 델몬트 역시 허구의 존재는 아닐까?


나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나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그 치즈 혼자서 남아,

그 치즈 혼자서 남아,

하이-호, 메리-오,

그 치즈 혼자서 남아.


나는 선생님이 누구에게 말하는지, 그가 말하는 폴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폴은 누구지?

내가 폴이 아니라는 건 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폴이 있는지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 바빠서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돼지 포키를 꽉 끌어안고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른다.

왜냐하면 나는, 당연히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도 누구일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치즈다.

(p.274)


어찌보면, 애덤의 자전거 여행은 '폴 델몬트'로서의 삶을 추적해가는 과정이다.

애덤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조각난 기억들을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애덤은 자신의 기억 찾기를 도와주겠다는 남자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 같지 않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애덤은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하는 듯 하다.

대체 무엇때문에? 라는 궁금증은

그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폴 델몬트의 아버지는 지역 신문 기자였는데,

지역의 비리를 고발하면서부터 각종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

정부 기관에서 나온 '그레이'라는 사람이 폴 델몬트의 가족을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폴 델몬트의 가족은 원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지역에 가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해서 폴 델몬트가 새로 얻은 이름이 바로 애덤 파머.)


이 그레이라는 사람도 정말 믿을만한 사람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폴 델몬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이 보낸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



T: 말할 게 있다면 말해보렴. 말할 게 너무 많든, 그렇지 않든 간에

A: 그 전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말하다가 발견하는 것들 중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말하는 일 자체가 뭔가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걸, 자기 안에서 숨어서 기다리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입을 통해 언어로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말하는 순간 그의 삶의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텅 빈 공간이 그렇게 채워졌다.

때때로 깊은 밤, 자신이 누구인지 거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 앞에

어렴풋하게 존재하던 그 두려운 공백들. 말하는 도중에 그 공백의 지점들이 채워졌다.

(P.96)


그는 대포에서 포탄이 튀어나오듯 잠에서 깼다. 모든 곳으로부터 벗어난 이곳.

그리고 이 순간. 방, 침대, 방 안을 서늘하게 만드는 차가운 달빛. 그는 침대에서 차가운 이불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혼자 고립된 채 허공에 떠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미지의 공간, 미지의 세계에서 사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붙박인 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애덤 파머다.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애덤 파머다. 아니다, 애덤 파머는 하나의 이름,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이 방에서, 그리고 묻고 대답하는

다른 방에서 익힌 사실일 뿐이었다. 애덤 파머는 누구인가? 그는 알 수 없었다.

(P.113)


그는 그날 지하실에서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를, 그리고 우주 공간 속에 떠 있는 작은 행성 같았던 탁구공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 자신을 꽉 움켜쥐는 듯한 아빠의 목소리. 그럼에도 그의 작은 일부, 이제는 더 이상

애덤 파머가 아니라 폴 델몬트인 그 부분은 고독하고 외로웠다. 나는 폴 델몬트인 거야. 자기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폴 델, 몬, 트. 그렇다면 애덤 파머는 누구인가? 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마침내 아빠는 그에게 애덤 파머가 생긴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말했다. 오래전, 그러니까 원래는 이름이 앤터니 델몬트였지만

나중에 데이비드 파머가 된 한 기자가 올버니의 주 의회에서 어떤 서류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든 내용을 알게 되면서, 결국은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린 그 내용들은......


T: 그게 무슨 내용이었지?

A: 정확하게 말씀해주시진 않았어요. 하지만 저도 정부 내의 부패와 관련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T: 정부라면 어떤 정부를 말하는 거냐? 주 정부, 아니면 연방 정부?

A: 둘 다요. 단순히 정부만 연루된 게 아니었어요. 연결 고리가 있었죠.

T:연결고리라니?

A:범죄 사이, 아빠는 어떤 조직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조직과 정부, 그러니까 읍면 단위에서 워싱턴까지를 포함하는 정부 사이를 잇는 거였어요.

T:그런 연결 고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있었니?

A:또 심문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저 개인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이, 어떤 특별한 정보를 찾는 것처럼 말이죠.

(P.161~162)


"엄마가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아빠의 증언 때문에 감옥에 간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쫓아올 수 있겠어요?"

애덤이 물었다.

"그게 성가신 거야. 아마 너라도 얼마간은 편집증 환자처럼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될 거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지만 이유 는많단다, 애덤. 네 아빠가 맞서서 증언한 사람들은 거대한 조직의 조직원들이었는데, 그 조직은 아마도 다른 조직과 연결돼 있었을 거야. 악이 늘 그렇듯, 한쪽을 잘라내더라도 다른 쪽은 계속 자라지. 네 아빠의 증언으로 한쪽은 죽었겠지만, 다른 쪽은 어떻게 됐는지 누가 알 수 있겠니? 그리고 그레이, 그레이씨가, 아니면 톰슨 씨나 뭐 다른 이름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 사람이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한번은 자기가 정부에서 2222라는 숫자로 통한다고 우리한테 말한 적이 있었어. 위급한 경우, 워싱턴에 있는 자신에게 연락하려면 이 숫자가 필요할 거라고 하면서. 우리 삶은 그 사람 손아귀에 놓여 있었단다, 애덤.

우리는 그 사람을 믿어야만 했어. 어떤 점에서 그 사람은 우리의 창조자였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줬고, 네 아빠의 직업을 어떤 것으로 할지 결정했지.

그 사람은 또 우리가 카톨릭 신자로 남을지 아닐지에 대해서도 결정했어.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사람만, 이 222의 관대한 처분만 기다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 사람은 우리 인생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였어,

애덤. 이 생각만 하면 나는 온몸이 떨리는구나."

(P.202~P.203)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알고 있던 삶은 끝났다고 하더라. (중략) 그레이는 그때가 언제가 됐든 암살은 성공할 거라고 했어. 나보고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지. 이유를 대라면 한둘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복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렇게 하면 비리를 증언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테니까. (중략)

나는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니다. 겁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나는 한번 부딪혀보겠다고, 미국은 자유국가 아니냐고, 법이 있지 않냐고, 시민이라면 도망가지 않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레이를 설득하려고 했지. 그런데 그레이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더구나. 이렇게 말했어. 차에 폭탄을 설치했을 때는 나 혼자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고. 그 차에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리는 것인데, 그렇게 당할 만한 사람이라면 바로 나의 가족일 것이라는 거였지. 그는 너와 네 엄마가 나 만큼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말했어. 내가 뉴욕 주 블라운트에서 앤터니 델몬트로 살아가는 한 말이다."(P.171)


"(중략) 그레이가 여기로 찾아오는 이유는 아마 그때문일거야. 그 사람은 더 많은 정보가 있는지 계속 살펴봤고 나는 이제 남은 건 없다고,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가르쳐줬다 말했지. 그러면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쳐다봤어. 그럴 떄면 모골이 송연해졌단다. 이따금 내가 그 사람에게 성가시고 난감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때로는 그 사람이 오면, 우린 서로 적이라도 되는 듯 앉아 있었지. 그게 아니라면 이제 두 사람 다 더 이상 믿지도 않는 미친 게임을 계속하는 느낌도 들었어."

(P.192)




이 책에 쓰여진 1970년대의 미국. 그리고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밝혀지는 것들....

"누구도 믿지 마라, 날쌘돌이.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 하지만 신분증도 믿어서는 안돼. 요즘은 무엇이나 위조하니까. 여권이든 면허증이든. 그러니까 꼭 가야만 한다면, 조심해라. 날쌘돌이, 조심해야만 한다."

(P.23)


애덤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할 즈음 만난 노인이, 건넨 말이다.

"뭣 때문에 가는 거니, 날쌘돌이. 끔찍한 세상이야. 살인에 암살에. 길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아. 이젠 누굴 믿어야만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 나쁜 놈들을 알아볼 수 있겠냐?"

나는 가고 싶다. 듣고 싶지 않다.

"물론 모르겠지. 이제는 나쁜 놈과 좋은 사람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됐으니까. 요즘에는 누구나 그래.

비밀이라는 것도 없어졌어. 다음에 전화 걸 때 잘 들어봐라. 귀를 바짝 대고. 틱틱 거리는 소리가 날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그건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거지. 그런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해도 어쨌든 다 듣고 있어.


권고2:

원칙에 근거해 요원 번호 2222의 대기 발령을 중단하고 완전히 복귀시킨다. 반대편에 의해 증인 번호 599-6의 위치가 노출된 것이 사실이나, 요원 번호 2222가 증인 번호 599-6과 관계자(배우자)의 종결을 방치했다는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

(증인 번호 599-6 위치와 관련해 요원 번호 2222가 반대편과 접속한 사실은 정황상의 증거뿐이다)

요원번호 2222가 종결 이후 활동을 능률적으로 해냈고 아래와 같이 처리한 것에 주목한다.

(a) 반대편에 의해 증인번호 599-6이 종결됐음을 추적하여 확인, (b) 사건 현장에서 관계자 사체 이동, (c) 폐쇄 시설로 인물 A 이전. 이 모든 활동은 지방 당국의 연루없이 완벽하게 이뤄졌다. 3년간의 필수 재검토 결과 요원 2222는 현존하는 기관 기본 절차의 범위 내에서 활동했다.


권고3: 인물A는 증인 번호 599=6과 파일 데이터 865-01 사이에 마지막 남은 연결 고리이므로 다음과 같은 두 방안을 권고함.

( a) 개정 중인 기관 기본 절차(참조:방침 979)의 종결 절차가 승인될 때까지 인물 A의 억류를 계속한다, 혹은 (b) 인물A 가 제거될 때까지 인물 A의 상태를 유지한다.

(P.277)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으며,

여기는 매싸추세츠 주 마뉴먼트에 있는 31번 도로이고

(중략)

페달을 밟는 동안 차가운 바람은 마치 뱀처럼 내 소매 속을 기어 올라가고 외투와 바지 다리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계속 페달을 밟고 또 밟는다......

(P.278)




나는 누구인가?라는 청소년의 자아 찾기 여행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맞물려 진행되는 플롯.

한편의 스릴러를 보듯, 긴장감 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이 리뷰를 끝내려한다.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다면 나 하나만 믿고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여기면 좋을 텐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소설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나는 애덤 파머가 맞는가? 이건 오래된 질문이면서도 1970년대 이후의 미국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2000년대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절한 질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정부는 국민들에게 오직 선의만을 지녔는가? 이웃들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이타적인가? 정의는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작동하는가? 코마이어는 어쩌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소설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게 바로 현실이 움직이는 방식이니까. "

(2008년 12월.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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