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nse of an Ending/줄리언 반스/다산책방/2012
새책과 헌책을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 16
※ 주의 : 이 리뷰에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의 주요 내용과 반전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소설로 읽었을 때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파이이야기>가 그랬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그랬다.
그런데 <파이이야기>가 영화화 되더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영화화 되었다.
과연, 영화는 이 작품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기록과 기억에 대한 인식을
스크린 속에 잘 구현해내었을까?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소환해본다.
청소년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작품을 청소년 소설로 분류해버릴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은 1960년대, 고등학교에서 만난 네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므로,
임의로 이 말머리를 달고 책장을 다시 펴보았다.
학창 시절에 대한 관심이나 그리움은 거의 없지만 고교 시절은 기억한다.
우리의 인생이 벌판으로 풀려나길 기다리며
잠시 우리에 갇힌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연인 혹은 친구와 싸울 때,
같은 사건을 두고 너무나 다르게 기억하고 있어서
당황했던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기억에서 삭제해버린 말들, 순간, 민낯들을
상대가 증거를 들이밀고 너무나 정확하게 끄집어 내면
내가 절대, 그랬을 리 없어, 라고 강하게 부정하다
결국은 관계의 파국을 맞게되는 일들.
나의 기억은 과연 완전한가?
나의 기억을 토대로 한 기록들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이제는 곁에 없는
연인 혹은 친구하고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일기장을 보면
내 잘못은 크게 없는 것 같은데,
상대는 나를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일기장 속엔 무엇이 빠져있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 역시 이런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토니는 고등학교 시절, 전학 온 에이드리안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린 원래 셋이었고, 그가 네번 째로 합류했다.
셋이란 빠듯한 숫자에 하나가 더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패거리나 짝짓기는 오래 전에 끝나 있었고,
다들 학교를 탈출해 진짜 인생을 진입할 것을 꿈꾸었을 시점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이드리언 핀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입밖으로 내놓지 않는,
키가 크고
조용한 녀석이었다.
그 가을의 삼 일째 아침
'조 헌트 영감'의 역사 수업이 있었다.
"핀,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이 시기에 대해 좀 아는 게 있나?"
"잘은 모릅니다. 선생님. 하지만 하나의 사유 방식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예를 들어 제 1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도-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 뿐입니다."
"난 토니 웹스터야."
그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헌트 선생한테 한 말 꽤 근사하던데."
그는 내가 뭘 언급하는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뭔가 일어났다는 말?"
"아 그래. 선생님이 그 말을 더 물고 늘어지지 않아 실망했어."
내가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이렇게 토니와 에이드리안은 친구가 된다.
그날 늦게- 아니면 다음 날이었나- 필 딕슨 선생의 심층 영어 시간이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교사했던 딕슨은 현대 문헌을 즐겨
교재로 삼았고, 돌연 이런저런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날 오후 그는 제목과 발표시기, 저자의 이름도 없는 시 한편을
나눠주고 십분 동안 읽고 생각해보게 한 후, 우리의 감상을 물었다.
"핀, 자네부터 시작해볼까? 간단하게 말해보지. 이 시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에로스와 타나토스요."
"음 계속해봐"
"섹스와 죽음이죠.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사랑과 죽음이라고 할까요.
경우를 막론하고, 죽음의 원칙과 충돌하는 에로스의 원칙이죠.
그리고 그 충돌의 결과로 뒤이어 나타나는 것들까지도요."
아마도 나는 딕슨 선생이 보기에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다 싶을 정도로
감동의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웹스터, 거기서 더 나아가보겠나"
"전 그냥 외양간 올빼미에 대한 시라고 생각했는데요."
이것이 우리 셋과 새로 사귄 벗 사이의 차이 중 하나였다.
에이드리언은 우리 패거리에 자신이 흡수되도록 내버려 두면서도
그것이 자기가 찾던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콜린이 가족제도를 비난하고
내가 정치제도를 조롱하고
앨릭스가 지각된 실재의 본질에
철학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때,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 쪽을 고수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책에 굶주려 있었고, 섹스에 굶주려 있었고,
성적표에 연연하는 아나키스트였다.
모든 정치, 사회 제도가 썪어빠진 걸로 느껴졌으나
우리는 쾌락주의적 혼돈에 기울어 있을 뿐,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탄샤웅' 아니 '슈투름 운트 드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 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인했다.
앨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에이드리언은 모두 짐작했듯, 케임브리지 대학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브리스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콜린은 서식스 대학에 갔고, 앨릭스는 아버지 사업에 뛰어 들었다.
우리는 에이드리언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그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의 환심을 사려 했고,
괜찮은 얘깃거리가 있으면
그에게 가장 먼저 털어놓았다.
각자가 그와 가장 친하다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각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에이드리언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여전히 우리 셋이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며
그가 우리에게 기대고 있다고 믿었다.
이는 그저 우리가 그에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였을까?
이렇게 토니는 남달라 보이는 에이드리안에게 동경과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에이드리안이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면서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다.
토니는 기억속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삭제해버렸지만.
그 여자애가 너랑 사귄 건 달리 더 괜찮은 남자가 없기 때문이란 게 누가 봐도 훤히 보였다고.
우리가 다 함께 만났을 때 걔가 에이드리언에게 알랑거리는 걸 넌 눈치 못 챘었어?
우린 정말 놀랐는데. 에이드리언에게 착 달라붙어 온갖 아양을 떨더군.
그런데, 세월이 시간이 흐른 뒤 토니한테 에이드리안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게다가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토니한테 에이드리안의 일기장과 유산을 남겨주고 죽는다.
이 소식이 담긴 편지를 받은 토니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점점 마주하게 된다.
토니의 전처 마거릿은 여자는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는데 베로니카와 그녀의 어머니는 어떤 여자였을까?
당신 생각에 '과일케이크'의 어머니가 당신한테 오백 파운드를 물려준 이유가 뭘 것 같아?"
지난 몇 년 동안 마거릿의 생각에 과일케이크들은 여왕의 머리가 그려진 비스킷 깡통안에
그대로 가둬둬야 마땅했다.
내가 그녀에게 브리스틀 시절 얘기를 꽤 시시콜콜 했던 게 틀림없다
사실, 베로니카와 사귀면서 나는 그녀에게 다양한 -유혹적인, 미스터리 한, 호락호락 하지 않은-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를 만나면서
형용사-부아가 치미는, 고집센, 오만한-그럼에도 여전히 유혹적인-가 늘긴 했어도, 지루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음, 줄거리만 보면 이게 무슨 막장 스토리인가 하겠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니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에이드리안)는
토니의 여자친구(베로니카)였던 사람과 사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에이드리안의 아이를 가진 사람은 베로니카가 아니라 베로니카의 엄마였다는 것.
그런데 왜 베로니카의 엄마는 토니에게 에이드리안의 일기장을 남겼을까?
그리고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왜 에이드리안의 일기장을 줄 수 없다고 하는걸까?
고등학교 친구들이 기억하는 에이드리안은 토니의 기억 속 모습과는 또 다르다.
토니, 사실은 말이야, 이만큼 흘렀으니 진실을 말해도 딱히 해될 게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에이드리언은 매일 네 등 뒤에서 널 사정없이 깠었어.
에이드리언은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착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고 했어.
네가, 그의 제일 친한 친구-어쨌거나, 우리 둘보다는 더 친한 친구-라고 티내고
다니는 게 자기는 황당하고 어이없다고 했었어.
나는 오래전의 사진첩을 펼쳐서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베로니카의 부탁으로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네 친구들과 한 장.'
앨릭스와 콜린은 이건 역사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한 듯 다소 과장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에이드리언은 여느 때처럼 진지한 표정인데,
베로니카의 시선은-방금 알아차린 것이지만- 에이드리언을
향하고 있다. 그를 올려다보고 있진 않지만 카메라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날 보고 있지 않다.
그날 나는 질투를 느꼈다.
토니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에 악의에 찬 편지를 보냈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삭제했을 수도 있고,
정말 시간이 흘러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토니의 저주는 일종의 예언이 되어 아드리안의 삶을 지배한다.
과연 너희들은 서로 천상배필이니 모쪼록 그 기쁨을 실컷 누리길 바라 마지 않아 서로에게 한없이 빠져든 나머지 서로에게 해가 되는 일도 영원히 지속되길, 내가 너희를 소개해 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중략)
에이드리언에게
그 여자 어머니도 자기 딸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줬지.
내가 너라면 모친에게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볼 걸?
허세덩어리기도 하니, 명심하라고.
그 여자가 너와 어울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네가 조만간
네 이름을 딴 케임브리지 문학사 학위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토니는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를 비난하며
그녀의 엄마를 한번 만나보면
모든 걸 알게될거라는 악담을 퍼부었고,
토니의 말을 듣고 베로니카의 엄마를 찾아간 에이드리언은,
결국 베로니카의 엄마와 관계를 가지게 된 것.
이후 베로니카의 엄마는 임신을 하고
에이드리언은 자살을 한다.
이 모든 일이 토니의 저주를 담은 편지 때문에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토니가 이 모든 일로부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자신의 말을 듣고 베로니카의 엄마를 찾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베로니카의 엄마가 에이드리언을 유혹하리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토니의 예언(혹은 예감)은 틀리지 않고, 실현된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은 일 이후까지 토니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미필적 고의로 인해 여러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왜곡한 채 살아가는 토니의 모습을 보면서
반문해보았다.
윤색, 각색, 편집된 그 기억 속의 나는 과연 진짜 나의 모습인가?
내가 기억하는 과거 속의 나는, 혹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순간의 나는
완전한 진짜 나의 모습인가?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내가 그런 말 했을 리 없고, 내가 그런 행동 했을 리 없다고,
내 기억은 틀리지 않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조차도 다르다는 것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내가 그럴 리 없다고, 믿었던,
혹은 주변 사람들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그들의 교만한 믿음이 흔들리고, 깨지고, 부서지면서
서서히 자신의 믿음과 인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보면,
이것이 역사의 과정는 어떻게 다른가, 혹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스토리와 히스토리는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 에이드리언 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