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 Tristesse/Francoise Sagan/1953년
새책과 헌책을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 17
※ 주의 : 이 리뷰에는 <슬픔이여 안녕>의 결말에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çoise Quoirez)이
마약 소지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섰을 때,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영하의 소설 제목으로도 인용된, 사강의 법정 진술이지만
연말이 되니, 문득 생각나는 그녀의 책 한 권이 있다.
19세의 나이로 첫 장편소설을 펴내자마자
33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천재 작가의 명성을 얻은 사강은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즐기는 동시에
자동차광과 스피드광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슬픔이여 안녕>은 사강이 바로 19세의 나이에 발표한, 그녀의 첫 소설이다.
이후 이 책은 22개 언어로 번역돼 200만권 이상이 팔렸다.
사강은 파리의 한 아파트에 두달 동안 틀어박혀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19세의 소녀를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데뷔작.
<올덴뉴> 17편에서 다룰 책은 1953년에 발표된, <슬픔이여 안녕>이다.
여러 출판사가 번역하여 펴낸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교육문화연구회가 2005년 출간한 책이다.
책 중간 중간마다 귀여운 삽화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슬픔이여 안녕'은 17세 소녀의 세실이 자신의 평온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결혼을 약속한, 죽은 어머니의 옛 친구인 안느를 대상으로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아버지의 젊은 옛 애인 엘자와 자신의 남자친구인 시릴르를 끌여들여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다.
17세 소녀가 연출한 한편의 이 발칙한 연극은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맞게 된다.
레이몽과 엘자를 숲속에서 목격하고
실의에 빠진 안느가 급하게 자동차를 몰고 별장에서 도망치듯 나가다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된 것.
1958년, 동명의 영화가 오토 프레밍거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작품의 화자인 십대 소녀 세실은 진 세버그,
지적이고 성숙한 매력을 지닌 사십대 초반의
안느 라르상 역할은 데보라 카,
세실의 아버지이자 바람둥이인 레이몽은
데이븐 니븐이 맡았다.
<슬픔이여 안녕>을 읽으면서,
'자유', 그리고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안느는
세실이 지금껏 누려오던 자유를 위협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실이 선택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2017년, 유난히 길었던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나 또한 세실처럼 한때는 두려웠고,
때때로 견딜 수 없었다.
현재 누리고 있는 이 안락한 자유를 빼앗길까봐.
그 결과는,
나는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
빼앗길까봐, 사라질까봐 두려워했던
평온한 자유를 여전히 누리고 있는 대신,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
혹은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
세실과 레이몽은 안느의 장례식 이후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든가,
아니면 두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결과가 일어날까봐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주고받다가
나중에는 태연히 안느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되리라 예측했던 것처럼
두 사람은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이따금, 새벽녘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세실은 조용히 두눈을 감고 그것을 맞이한다.
나도 세실을 따라 두 눈을 감아본다.
안느는 마흔 두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매력적이고
또 세련된 여자였다. 어찌 보면 교만하고
인생에 지친 냉담한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구태여 결점을 말하라면 차갑고 쌀쌀한 것이
단 하나의 결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애교가 넘치면서도 쌀쌀했다.
또한 뚜렷한 의지가 우러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고,
따라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즉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지적인 위엄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p.19)
"아버지는 햇볕에 약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다로 데려와서 즐긴 뒤
허물이 전부 벗겨지게 되면 버리면 되는 거죠? 너무해요, 너무하단 말이에요.
내가 엘자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해야 하는 거죠?"
안느는 아주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태도로 아버지 쪽으로 얼굴을 돌려 버렸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미소지었을 뿐 내 말은 귀담아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더욱 노여움이 북받쳤다.
"나는....... 나는 엘자에게 '아버지는 지금 같이 잘 다른 상대를 구했으니 이 다음에나
와 주세요'하고 말하겠어요. 알겠어요?"
아버지의 화난 고함 소리가 들린 것과 함께 안느가 내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p.77)
"심술은 그만 부리도록 해. 나 역시 엘자에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너는 이 정도의 일은 아무 말썽없이 수습할 만한 아량이 있지? 내일 차분히 얘기해 보자.
내가 너무 아프게 했지?"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나는 공손히 말했다.
이 돌연한 공손함과 방금 전의 도에 넘친 격렬한 노여움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듯 상반된 감정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다니,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멀건히 서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전송했다.
(p.78)
"다만 시릴르와 키스했을 뿐예요. 그것으로 병원 신세까지는 지지 않겠죠?"
"제발 부탁이니 다시는 그 사람과 만나지 마."
그녀는 내말이 거짓말이라고 단정지은 사람처럼 말했다.
"말대꾸는 그만둬. 너는 이제 열일곱이고, 현재의 내 입장은 너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나는 네가 일생을 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그리고 아직 너는 공부할 일이 남아 있지? 그것으로 오후 한나절은 보낼 수가 있을 거야."
안느는 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뒤
등을 돌려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기가 막히고 얼떨떨해서 그대로 땅에 못박히고 말았다.
(p.96)
"하지만 안느가 이 곳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면, 당신은 안느의 맘에 드는 사람과
결혼해야 된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
하고 엘자가 말했다.
그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내가 스무살쯤 되었을 때, 안느는
역시 학사(學士)로서
빛나는 장래가 약속된 머리 좋고,
그리고 틀림없이 품행이 단정한 청년을
나에게 소개시켜주리라.
그때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p.146)
그때였다. 안느가 나타난 것은......
그녀는 숲 있는 쪽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뛰고 있었다.
어색하게 두 팔로 얼굴을 감싸안고서.......
위태로워 보였다. 순간 나는 나이 먹은 여자가 뜀박질을 하니까 금방 나동그라질 것만 같은 불안하고도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p.236)
놀라운 일이었다. 안느가 심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울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하나의 물체가 아닌
살아 있는,감수성이 예민한 한 인간을
공격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도 지난날에는 수줍고 부끄럼 많은
작은 계집애였으리라.
그런 다음 자라서 소녀가 되고 여인이 되었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다. 그리고 고독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10년, 혹은 20년을 행복하게
지내려는 희망에 부풀었을 것이다.
(p.238)
즉, 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이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들에게 남긴 것이다.
위험한 장소, 안느 자동차의 불안정한 상태 등
우리는 그것을 근거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고,
곧 마음의 안정을 누릴 만큼 나약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만일 이 상태에서 내가 '자살'이다 라는 말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소설 속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안느 같은 당찬 여자가 아버지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살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필요로 하지 않는,
우리 같은 못난 사람들 때문에.......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사고였었다는 것 외에는 얘기한 적이 없다.
(p.247)
아버지와 나는 같이 있을 때에는 함께 웃고 떠들면서 각자 사랑의 모험담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는 나와 필립과의 교제를 플라토닉한 사랑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나 역시 아버지의 새로운 애인에게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행복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예전과 같은 별장을 빌리고 싶었지만,
아마 쥬앙 레팡 부근의 것을 빌리게 되리라.
다만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파리의 새벽녘이면 나의 기억이 때때로 나를 배신다.
다시 여름이 다가온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오랫동안 낮은 목소리로 어둠 속에서 되풀이해 불러 본다.
그러자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오르고,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것을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