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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an 14. 2018

[달.쓰.반] 71편/ 그녀들의 황금시대

미치도록 글이 쓰고 싶었던 그녀들/ 영화 <황금시대>, <실비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71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실비아> 스틸컷


“버디 윌라드는 뻔한 얘기라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내게 아이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그때는 시를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의식이 세뇌된다는 게 사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비아 플라스,  <The Belle Jar>  中에서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는

여자들이 전문적인 직업인이 되기보다는

결혼하여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 테드 휴즈의 '아내'가 아닌

작가 '실비아 플라스'로 평가받길 바랐던 그녀.


하지만, 실비아 플라스는 끝내 서른의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고야 만다.

그녀는 왜 이런 죽음을 택했을까?


영화 <실비아>는 실비아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녀가 사랑했던 것들,

그리고

그녀를 괴롭게 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을 보면,  번역가 유타 카우센은 실비아와 테드 휴즈의 관계가

완전히 불공평한 관계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부부가 살림살이와 육아, 그리고 글쓰는 일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부부는 일을 나누어서 했어요. 오전에는 실비아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쓴 대신 테드가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는 그 반대로 했죠.”


카우센의 의견에 대해 <글쓰는 여자의 공간>의 저자(타니아 슐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관계가 언제부터 나빠진 걸까? 플라스가 남편보다 집안 일을 많이 했던 걸까? 남편과 합의한 내용에 불만이 있었던 걸까? 살림살이와 일을 병행하려는 계획은 두터운 현실의 벽을 모르는 순진한 시도였을까? 그리하여 심신이 쇠약해졌던 걸까?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가 결혼 생활 중 가사 분담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벨 자' 등에 드러난 실비아의 인식을 보면,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1956년, 휴즈와 결혼한 실비아는

1963년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가명으로 이 소설을 출판했다.

당시 테드 휴즈와는 그의 여성 편력 등으로 인해 별거중이었고,

실비아는 소설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다.


많은 이들이 실비아의 강박과 우울증은 테드 휴즈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실비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자아가 테드 휴즈, 단 한 사람에 의해서만 좌지우지 되는 걸까?


작품을 쓰는 일. 작가는 대중들을 위해 환상을 만들어 낸다.

신비의 베일을 둘러쓰는 것이다.

자기 감정을 남이 갖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감정이 문학적 기교니 의도 따위로 쉽사리

환기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싫어한다.

(중략)

십년후라고 해봤자 내 나이 겨우 삼십이 되었을 테니,

늙은이는 천만의 말씀이고 어쩌면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겠지

희망. 밝은 미래와 꿈. 나는 아무튼 글쓰기를 사랑한다.

출산. 어쩌면 아들딸 모두 낳을지도.

밸은 그늘진 얼굴로 희미한 불빛속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말버릇은 험하지만 내게 잘 대해준다.

(중략)

빌어먹을, 넌 최소한 <레이디스 홈 저널>에 실리는 신세는 면할 자격이 있어.

<애틀랜틱>지에 널 게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략)

작가 초년생들은 감각적 인상에 기대어 작업하느라,

차갑고 현실주의적인 조직을 망각한다.

먼저, 냉정하고 객관적인 플롯과 장면을 정하라. 경직되게.

그러고 나서 소파에 앉아 시각적으로 그리면서,

그 빌어먹을 글을 쓰라는 거다.

휙휙 휘저어 하얀 백열로 달구고, 다시금 생명을,

예술의 생명력을 부여하고, 더는 참조할 틀도 없는

무형의 신세를 벗어난 형식을 성취하라.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중에서 (문예출판사)


실비아 플라스의 삶을 다룬 영화조차,

그녀를 한 사람의 작가로 평가하기보다는

테드 휴즈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는듯 하여 조금은 아쉬웠다.


일기에서도 보여지듯,

그녀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갈망으로 가득했다.


어째서 글쓰기에 전적으로 투신하지 않는 거지?

왜냐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중략)

오늘 아침 테드가 도서관에 간다고 나간 뒤에

프로이트의 <비탄과 우울>을 읽었다.

자살에 대한 내 감정과 이유들을 거의 정확하게 묘사한 부분.

어머니에게서 나 자신으로 전이된 살인 충동.

프로이트가 사용하는 "흡혈귀"의 은유.

"자아를 남김없이 빨아먹어버린다"고.

바로 그게 내 글쓰기를 훼방하는 감정이다.

어머니의 손아귀. 나는 정을 포기한 대가가 아무 것도 없으니

이런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원고 거절에 대한 나의 공포심은, 이로 인해 성공을 못해서

어머니에게 거절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얽혀 있다.

아마 그래서 거절당하는 게 그렇게 끔찍한 기분인가 보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공포심은 때때로 그녀를 갉아먹기도 했다.

실비아는 자살을 택했지만,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글을  쓰던 그 짧은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있어 황금시대였을 것이다.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 <황금시대> 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글쓰기에 바쳤던

중국의 작가 샤오홍의 일대기를 영화이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많이 졸았다.

영화적인 재미는 많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나갔는지가 궁금해서 끝까지 보았다.


1930년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오롯이 글쓰기로 쏟아내었던 작가.

작가 지망생이었던 샤오홍은 작가 샤오쥔을 만

부부의 연을 맺고 당대 최고의 작가 루쉰과도 교류한다.

하지만, 샤오쥔은 점점 샤오홍의 문학적 재능을 질투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파국을 향해 간다.


10년의 시간 동안 100권의 작품을 남긴 샤오홍.

한 사람이 100권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매순간, 그녀는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혼란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실연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펜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100권의 작품은 그렇게 세상에 남겨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샤오홍은  일본에서 홀로 있으며 글을 쓰던 시절을

"자유롭고 편안하며 조용하고 여유로운 새장 속에서 보내고 있으니"

 이것이 나의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미치도록" 글을 쓰던 시절이

샤오홍에게는 바로 황금 시대였던 것이다.


샤오홍 역시 실비아와 비슷한 나이인 31세에 요절한다.

갓 서른에 접어든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실비아와 샤오홍.


예술가에게 후세에 작품의 이름이 남는 것 만큼

큰 축복이 있을까.


그들의 작품이 계속 후세에 전해지는 한,  

그녀들의 황금 시대는 계속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시들을 쓸 수 있을까?

일종의 전염병처럼 번지도록?


나는 무뇌아처럼 여기에 이렇게 주저앉아서

아기와 직업적 경력을 모두 원하고 있는데,

글쓰기가 아니라면 뭐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중략)


<스펙테이터>지가 내 소품 두편을 실어줘서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제 성공을 하게 되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가장 힘이 나는 건,

내가 유리의 양막을 깨고 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나, 나는 내가 일할 만한 나만의 방을 찾으리라.

좀 별나고 조금 좁다 싶어도,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공간과 전망만 있으면 된다.



처음 단편 소설 원고가 실리게 되면 강렬한 기쁨에 사로잡히겠지.

하지만 원고가 게재되지 못하더라도, 나는 계속 노력하고 또 노력하리라.


나 자신을, 나 자신을 잊어버리자. 세상을 전달하는 도구가, 혀가, 목소리가 되자.

나의 에고를 포기하자.


글쓰기가 나의 건강이다. 차가운 자의식에서 벗어나 만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뭘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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