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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an 28. 2018

[SF를 찾아서] 2편/ SF로맨스 애니메이션, 월-E

Wall-E, 2008/ 픽사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2

( ※ 주의 : 이 애니메이션의 주요 장면 및 결말을 언급합니다)

나는 애니메이션 장르도 좋아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실사 영화도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못해서 현재 트렌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지만, SF 장르로 분류되는 영화들도 꽤 봤다고는 생각하는데

이 역시 최근의 트렌드는 잘 모른다. 그래서 10년 전 픽사에서 내놓은 애니메이션 "월-E"가

현재의 애니메이션과 SF 장르의 트렌드에 맞는 작품인지,  아니면 조금 뒤떨어져있는 작품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로맨스 영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렇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월-E(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는 황폐해진 지구의 폐기물 처리 로봇이다. 애니메이션 속 지구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미세먼지로 뽀얗게 덮여있는 요즘의 하늘을 보면 애니메이션 속에 묘사된 황량한 디스토피아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를 극혐하는 사람도 유일하게 외로운 월-E의 친구가 되주는 바퀴벌레를 싫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그 많고 많은 지구상의 생물 중에 바퀴벌레가 남아있는 건, 아마도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월-E가 실수로 밟아버렸는데도 되살아나니 말이다.

월-E의 임무는 폐기물 처리지만, 그의 취미는 인간들의 물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들여다보는 건, 사실 그 쓰레기를 남긴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고철 TV를 보면서 화면 속 두 남녀의 행동을 따라해보기도 하는 월-E.

마치 월-E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월-E 앞에 드디어 이브가 나타난다.

후반부에서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애니메이션은 거의 무성 영화처럼 흘러간다. 오로지 캐릭터들의 표정과 행동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EVE는 정체 불명의 우주선을 타고 온 식물 탐사 로봇. 월-E는 다소 쌀쌀맞은 듯한 EVE에게 반해버린다!

사랑에 빠진 월-E는 정말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EVE를 따라다니며 친구가 된 월-E.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월E가 발견한 초록색 식물을 몸에 품고 작동을 멈춰버린 EVE (사실은 대기모드).

EVE를 회수하려는 우주선에 월E도 탑승한다.

이렇게 EVE를 떠나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EVE의 우주선 이름은 엑시엄호. 그런데 이 우주선에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월E가 알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과는 어딘가 좀 다르다. 로봇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본인들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들의 일과는 앉아서 먹기만 하는 것이다.

EVE가 우주선에 가져온 식물로 인해 엑시엄호에는 지구 귀환 명령이 내려진다.

초록색 식물이 지구에서도 다시 생명이 살 수 있다는 증거가 된 것.

하지만 우주선을 조종하는 인공지능 오토의 계략으로 엑시엄호는 위기에 빠지나

선장 및 월-E, 이브의 활약으로 인간들은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후반부의 줄거리이다.

우주선에서는 앉아있기만 하던 인간들이, 황폐해진 지구에 두발로 서 있는 장면이 압권.

엔딩 크레딧 부분에서는 이제 이들이 어떻게 지구를 되살려내는지를 회화체 파노라마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미술사조의 변천사까지)


약 700년 뒤의 시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구식 로봇 월-E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까칠하지만 알고보면 속이 깊은 로봇 EVE.

로봇과 로봇의 사랑이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궁금증은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쉽게 풀렸다.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나오는 SF 장르, 혹은 지금의 SF 장르에서는 로봇들 간의 사랑을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전의 영화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가 아프면 슬퍼하고,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으면 한 없이 행복해하는....

애니메이션 속에 묘사된 지구의 황폐해진 모습,

다국적기업의 음모와 교활한 인공지능에 의해 마치 노예처럼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인간의 모습은 차후의 이야깃거리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 등장하고, 시간을 거슬러가는 타입슬립 기계가 나오고

온갖 최첨단 소재가 난무한다하더라도

그 속에 감정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나중엔 이 감정마저 오로지 0과 1 혹은 내가 모르는 디지털 신호로만 표현되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지는 시대가 온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내가 SF 장르에서 보고 싶은 건

결국 인간다운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의 이야기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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