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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y 01. 2018

[달.쓰.반] 74편/야행관람차(주요내용언급주의)

미나토 가나에 장편소설/비채/2011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74


※ 주의 : 이 리뷰는 <야행관람차>의 주요내용과 결말에 대해 언급합니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일본에 갔을 때

야간에 운행하는 관람차를 탄 적이 있다.

관람차 안에서는 보름달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이고,

도시를 밝히는 빌딩의 불빛들도 환히 보였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조금 무섭긴 했어도, 그날 바라보았던

풍경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가족과 마주보고, 함께 바라보았던 풍경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야행관람차를 탄 후에는 역시 가족들과 함께, 인근 포장마차촌에 들려

맥주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포장마차촌에서 호텔로 돌아갈 때도 야행관람차의 불빛을 벗삼아 길을 걸었다.

그렇게 내게 야행관람차는 가족들과 함께한,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런데, <고백>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장편소설 제목이 <야행관람차>이다.

영화 <고백>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란. 소설이 원작이라고?

그때 처음 미나토 가나에, 라는 작가를 알았다.


<야행관람차>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그런데, 가족이 범인이다.

소설 초반부터  밝혀지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

아름다운 부인 준코가 엘리트 의사 남편인 다카하시를 말다툼 끝에

트로피로 가격해 죽였다.

그렇다면 왜?

그날 다카하시의 아들인 신지는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각

편의점에서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고,

그 이후에는 행방불명이 됐다.

딸인 히나코는 친구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소설 초반에 나오는 정황들이다.

그렇다면, 진범은 사라진 신지일까?

준코는 아들인 신지를 감싸려고 죄를 뒤집어쓴걸까?


<야행관람차>는  다카하시 가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카하시의 바로 옆집에 사는 엔도가족과

다카하시 가족의 동네 주민이자 오지랖 넓은,

고지마 사코토의 이야기도 번갈아 보여준다.


처음에는 살인사건, 그것도 부인이 남편을 죽인 살인사건과

야행관람차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의아했는데,

소설 중반부에 히나코와 신지가

야행관람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바다에서 보는 밤풍경도 예쁘네."

국물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빛의 융단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뻗어나간다.

".....응."

그제야 신지가 입을 열었다.

"산에서 보는 경치랑 바다에서 보는 경치랑, 신지는 어느쪽이 더 좋아?"

"둘 다. 한꺼번에 보고 싶어."

"헬리콥터라도 타려고? 얘가 배부른 소리 하네."

"....관람차 말이야."

"응?"

"여기 공터에 관람차를 만든대. 시청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몰라?"

"그런걸 누가 보니? 마을 부흥을 위해 유원지라도 만든다는 거야?"

"아니, 관람차 하나만."

"그런데 관광객이 올까?"

"하지만 일본에서 제일 크대"

"그건 굉장하네. 바다하고 산의 야경을 둘 다 확실하게 볼 수 있겠다."

밤하늘에 우뚝 솟은 관람차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산은 상류층,

바다는 하류층이라고 주장하지만 관람차를 타고 둘 다 한번에 굽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신지와 나는 관람차가 완성될 때에도 이곳에 있을까?

(p.163)


산은 상류층.

바다는 하류층.

다카하시 가족이 사는 고급주택가 히바리가오카는 언덕길 위에 있다.

히바리가오카에서 가장 작은 집이자 다카하시 가족의 옆집에 살고 있는 아야카는

그래서, "언덕길병"을 앓고 있다.

같은 시립 중학교에 친구들은 아야카를 "히바리가오카의 아가씨"라고 비꼬지만,

정작 아야카는 히나코가 다니는 유명 사립학교에 낙방하여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마유미는 딸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아등바등 히바리가오카에 작은 집 한채를 마련했지만,

정작 아야카는 웃음을 잃고, 엄마인 마유미에게 매일 같이 소리를 지른다.

아야카의 행동을 보면, 무지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런 그녀를 마냥 욕할 수만도 없었다.

나의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하고는 미묘하게 모든 것이 달랐던 환경,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가장 가까웠던 엄마한테로 화살이 돌아갔고,

소설 속 아아캬보다 더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p. 104~105


별세계의 교복이나 귀여운 교복과 스쳐 지나가면서 언덕길을 죽 내려가

완전히 평지가 되는 지점에 시립 A중학교가 있다. 히바리가오카에서 도보 30분.

아아캬가 다니는 학교다. 특별히 거친 아이들이 모인 학교는 아니다. 자택에서 가깝고

돈이 들지 않는 공립 중학교에 진학한, 효심 깊고 우수한 아이들이 많다.

(중략)

선생님도 학교 시설도 나쁘지는 않다. 세일러복 교복도 싫지 않다. 그런데 등굣길에는 매일 같이

나락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학교에 도착해도 발밑이 한층 더 깊은 어딘가로 기우는 것만 같다.

공을 내려놓으면 데굴데굴 굴러가버리는 게 아닐까? 교실도 복도도 운동장도 미묘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인다.


(중략)

비탈을 올라갈수록 학교 편차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땅값도 쑥쑬 올라간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비하리가오카로 가는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아야카는

어째서 높은 곳에 있는 주택지가 값도 비싼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등하교뿐만 아니라 잠깐 편의점에 갈 때도 귀찮고, 장점은 하나도 모르곘는데.

하층민들의 생활을 굽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치가 있는 걸까?

하지만 낮에 동네 경치를 굽어봐도 아무 차이가 없다.

매일 저기까지 걸어 다닌다고 생각하면 피로감만 더한다.


내가 다닌 학교는 언덕이 아닌 평지에 있었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도 언덕길병 비슷하게 앓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했던 실수처럼, 아야카도 가장 가까운 엄마한테 함부로 행동하고 있다.

가족이니까, 다 이해해주겠지. 지금은 내가 제일 힘드니까,

이런 내 짜증을 받아줄 사람은 가족밖에는 없어, 라는 기분으로.

  

다시 다카하시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도대체 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면, 매일 같이 아아캬와 마유미 때문에 큰 소리가 나는

엔도네 집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인데,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다카하시 집에서 일어났던 걸까?


P.285

아무리 강한 살의를 품어도 죽였다는 사실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크나큰 경계선이 있다.

그 경계선을 뛰어넘을 것인지, 눈 앞에서 그칠 것인지, 결정은 의지가 크게 좌우한다고 믿었다.

윤리관, 이성, 인내심.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나는 지금쯤 살인자 신세다.

말려주는 사람의 유무가 결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결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말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카하시 준코에게는 없었다.

차이는 그저 그뿐. 마유미는 자신의 의지를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두 번 다시 아아캬아게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자신이 없다.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말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P. 286~287 (중략)

"어딜가도 함께 있으면 똑같아. 히바리가오카에서 벗어나면 아야카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

가령 들어갔다 치자. 또 3년 후에는 대학 입시하고 취직 시험이 있어. 동아리에서 짜증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친구들하고 싸우거나 실연당할지도 몰라. 아야카가 볼 때는 그런 것도 전부 내탓이겠지?"

"그걸 받아주는 게 부모 아냐?"

"그럼 난 이제 부모 노릇은 못해"


 

생각해보면 가족들도, 항상 내 짜증을 받아주기만 했던 건 아니다.

마유미가 아야카에게 했던 것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적은 없지만, 부모님은

"너의 문제를 가족에게 책임전가 하지 말라"고는 분명히 말하셨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라는 부모님의 말

그때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가족들은 그 당시를 다르게 기억수도 있지만 ....)


언제나 좋은 추억만 있다고 생각한 가족여행.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가족이란 이유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여행할 때는 절대 싸우지 않을 일로 다툰다.

공항에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밖으로 갔다고 화내고.

기껏 들어간 식당의 밥이 맛없다고 짜증낸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맞네, 하며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 가족이니까, 내가 조금 우겨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에서.


그렇게 시덥지 않은 일로 다투고, 화내도

"배고프다"라는 말 한마디에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 가족.

생각해보니, 그날 야행관람차를 타기 전에 무슨 일로 실컷 다투고서는,

배고프다고 눈에 보이는 돈까스집에 바로 들어가서

언제 그랬냐는듯 풀어져,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런 후 야행관람차를 탔으니, 30여분의 대기시간에도

서로의 신경을 긁지 않게 조심하게 되었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하면 된다는 그 사실을 가족이란 이유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P.326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 뿐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에 읽은 <야행관람차>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소설이었다.


P. 332

역시 이쪽에는 못 돌아온다고?

괜찮아. 걱정말아라.

엄마가 요새 좀 바쁘거든.

다카하시 가 아이들 보호자 대신이라고 할까?

(중략)

그리고 요전에 알았는데, 내후년에 바다 근처에 관람차가 생긴다더구나.

너, 관람차 좋아했지? 그게 완성될 즈음 돌아오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구나.

관람차를 좋아할 나이는 지났다고?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높이가 일본 최고라니까.

나도 기대하고 있단다.

오래 살아온 동네이긴 하다만 한 바퀴 휘 돌아 내려가보면 똑같은 경치라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겠니?

얘야, 너하고 함께 타보고 싶구나.


'가족'이란, 단지 좁은 의미로 피를 나누는 사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경치라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하는 관람차.

'누구'와 함께 타느냐에 따라 그 경치는 달라질 수도 있고,

'무엇'을 더 보고 싶느냐에 따라서도 그 경치는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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