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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ug 12. 2018

[달쓰반]75편/믿음과 배신의 서사: 언더커버/스포주의

언더커버 소재를 다룬 느와르  장르물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75

※ 주의 : 이 리뷰는 영화 <무간도>, <신세계>, <불한당>, <디파티드> 그리고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의

             주요 장면 및 반전,결말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 <불한당>에서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사람을 믿지마라. 상황을 믿어야지"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불한당>은 언더커버물의 클리셰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런 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지,

기존의 언더커버 스토리 공식을 살짝 변주한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부터 한재호는 이미 자신에게 접근한 조현수가 수사를 위해 잠입한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조현수 역시 한재호에게 자신의 정체를 일찍 털어놓는다. 

하지만, 서로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이들은 끝까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조현수에게 한재호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다. 

2007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인물 관계도  얽히고 섥혀있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이수현은 동시에 청방의 조직원 K이기도 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청방으로 잠입한 이수현은 사고 이후 기억을 잃은 채

K로 살아가다, 어느날 자신의 진짜 정체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K로서 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랐던 마오가, 

사실은 부모의 원수이자, 아버지의 젊은 시절 절친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비단 이 드라마 뿐이 아니다. 이 드라마 제목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질녘,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말한다. 

즉, 개와 늑대의 시간은 언더커버 장르물에서 등장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 <신세계> 역시 이 공식에서 비켜나지 않는다.

이자성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깡패 새끼들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데, 

정작 경찰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대목에서 분노하는 그의 대사에서 여실히 잘 드러난다.

"다못해 저 깡패새끼들도 날 믿고 따르는데, 너희들은 왜 날 못믿어!

 난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는데! 왜!"

언더커버 스토리를 이야기하면서, 영화 <무간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의 스파이가 된 범죄 조직원,유건명(유덕화)

범죄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진영인(양조위)

무간지옥(無間地獄)은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 중 제일 낮은 곳을 칭하는 용어로, 가장 고통이 극심한 지옥을 일컫는다. 죽지 않고,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인 무간지옥으로 이르는 길이 곧 ‘무간도(無間道)’라는 

영화적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영화 무간도 시리즈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여준다.

영화<불한당>에서, 잠입수사를 기획한 천팀장이 조현수에게 어리광을 피우지 말라며,

내가 경찰 기록을 삭제하면 너는 그냥 전과자일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무간도>에서는 경찰인 진영인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황지성 국장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유일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은 누구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진영인의 얼굴에 드리운 음영이 바로 무간지옥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영화 <디파티드>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무간도>를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의 조직에 침투한 신참 경찰이고,

콜린 설리반은 경찰의 특별 수사반에 배치된 코스텔로의 첩자이다.

"경찰이 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경찰처럼 보이고 싶은가?"

<디파티드>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 질문 역시,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언더커버 스토리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나아가, 사람은 과연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라는 질문 역시 언더커버 스토리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주제인데

불한당에서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뒤통수를 조심하라"를 말을 한다.

살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대부분 뒤통수에게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서로의 뒤통수를 치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일 수 있었던 상대를 죽이지 않고

그로 인해 종국에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까지

언더커버 장르물의 클리셰적 결말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감상일까.

하긴, 모든 언더커버 스토리의 결말이 이런 것은 아니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장르물들은 어쩌면

결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싶은, 혹은 믿고 싶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믿을 수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어서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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