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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Nov 16. 2018

[달.쓰.반] 80편/ 시대유감(時代遺憾)

서울시립미술관(Sema) 가나아트컬렉션 상설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80

서울시립미술과의 상설전시 <시대유감>은 2010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 받은 200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가나아트 컬렉션'의 두번째 전시로 1970~1980년대의 민중미술을 소개하는 기획전이다.

나는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뮤지엄 나이트에 다녀왔다.

 


전시장 입구의 소개글에 따르면, 이호재 대표는 "80년대 시대의 복판을 살아가는 미술인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당연한 책무"로서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을 지원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의 서울 유치가 차례로 확정되면서 제5공화국은 산업화, 도시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를 장려하는 3S정책에 따라 대중매체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각종 프로 스포츠가 출범했으며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등 일상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화려하게 변화되었다. 그러나 유례없는 대규모 유화정책은 도시와 농촌 간의 불균형, 분단의 현실, 불합리한 노동환경 등이 빚어내는 실제 민중들의 삶과 목소리를 외면하게 하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유도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미술 내부에서는 시대현실에 침묵하는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자성이 터져 나오며 ‘민중미술’이 태동했다.
당시 20~30대 젊은 작가들과 미술평론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소집단을 결성하고 선언문을 발표하며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룬 구상회화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가 대부분은 집단적 연대를 통해
한국의 자생적인 미술운동을 견인한 장본인들이다.

기획의도를 설명한 위의 글처럼 <시대유감>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총망라하여 보여주는 전시였다.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이름을 접했던 임옥상, 이응노, 강요배 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화가들이 민중미술에도 뜻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붉은 색의 거대한 용암이 쏟아져내리는 임옥상의 <하수구>는  도시개발계획이라는 명목 하에 삶의 터전을 잃고 내몰린 도시 난민의 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박인경의 <길> (1985년)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글자들이다.

박인경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군국주의, 파시즘, 남북분열, 민주주의 사회실현 등 당대의 아젠더들을 상징하는

글자들을 화면 가득 배치했다.

사실, 박인경 화백에 대해서는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고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 이응노 화백의 반려자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시장의 설명문에 따르면 한국화의 필묵이 갖는 현대적 감각을 탐구하며 본인만의 독창적인 추상 세계를 구축한 화가였다고 한다.


                                 이응노 <인간군상> (1983)


한지에 수묵담채화 기법으로 그린 이응노의 <인간군상>은 군무를 추며 서로 하나되어 어울리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모든 그림 제목에 '평화'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던 화백의 간절한 염원이 잘 드러나있다.

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국가원수에 대한 풍자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한 것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으로 노골적으로 전, 현직 국가원수의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시 '그림마당 민'에서 개최한 <노태우 풍자>전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작품은 안창흥 작가의 <불사조>였다.

1985~1990년 사이에 제작한 <불사조> 시리즈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거나

가시덤불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새를 그린 작품이다.

처음에는 목에 화살을 맞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새의 모습만 보였는데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니,

그 절망의 끝에서 태어는 수많은 새로운 생명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없이 유감인 시대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캔버스와 종이 등에 그리고 채색하며 버텨냈던

민중 미술 작가들의 마음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의 관람시간은

 화-금(10:00~20:00)이며 

매월 둘째, 마지막 주 수요일인 뮤지엄나이트에는  22:00까지 연장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 1월1일 휴관) 상설전시의 관람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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