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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r 01. 2019

[달.쓰.반] 86편 / 항거 : 유관순 이야기

3.1 운동 100주년 / 감독 조민호 / 출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86


오늘은 100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이다.

정부는 3.1 운동의 상징성과 100주년의 의미를 살리자는 취지로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1등급을 추가 서훈하기로 했다.

이번주에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독립 만세를 외쳤던 서대문 형무소 8호실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관순,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등은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도 독립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고,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해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쳤다.


흑백으로 보여지던 서대문 형무소의 유관순 열사 얼굴이

마지막 장면에서 컬러로 바뀌면서

엔딩 크레딧이 뜨는데 상영관의 관객들 대부분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숨죽이며 자리를 지켰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 흔한 팝콘 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퉁퉁 부어 있는 얼굴, 그리고 처음 마주하는 낯선 이름들.

바로, 저분들이셨구나.

그렇다. 이 영화는 실화다.

일제 치하의 감옥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을 때는 어쩌면, 죽음까지도 각오했을 지도 모른다.

이미 유관순은 일본의 총과 칼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럼에도, 3.1 운동 일주년을 기념해, 그녀는 또 만세를 부른다.

만세 1주년인데 빨래나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제 몸 하나 마땅히 뉘일 공간도 없어보이는 8호실.

그러나 그녀들은 모두가 함께 8호실을 돌며 다리 운동을 하고,

감옥에서 자라는 아기를 위해 옷의 솜을 빼내어 옷을 만들기도 하는 등

함께 그 시간을 견뎌내간다.

아니, 살아낸다.

살아서 독립된 나라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쁘셨을까.

유관순은 출소일을 앞두고 고문 후유증과 자궁 파열로 사망했다는

영화의 자막에, 마음이 쓰렸고

그녀를 잔인하게 고문했던 정춘영은 독립 후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영화의 자막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에 대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형평성 논란은 여전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표상으로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긴 하였으나

그녀의 공은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덮기 위해 누군가가 과장되게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한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녀만이 주목을 받아야 하는가, 함께 만세 운동을 불렀던 다른 사람들도

조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비단 유관순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옥중 만세를 부른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향화라는 기생이 독립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영화를 통해

접했다. 영화는 그때 유관순만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기생들을 이끌고 수원에서 만세 운동을 펼쳤던 김향화

개성의 만세 운동을 이끌었던 유관순의 학교 선배인 권애라도

유관순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기억해야 할,  소중히 간직해야 할 이름들이 더 많아졌다 해서

3.1 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약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19년의 3.1 운동은 서울 종로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유관순의 모교였던 이화여자보통고등학교 학생(이화여고)들 또한 교사의 만류에도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유관순 또한 3.1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김복순, 국현숙, 서명학, 김희자와

5인 결사대를 만들어 남대의 만세 시위 운동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3.1 운동으로 휴교령이 내려진 이후에는 고향인 병천으로 내려가 만세 시위를 펼쳤다.

영화에서는 유관순이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을 하는 과정은 축약되었다.

 


독립 운동 연구가들은 3.1만세 운동이 일제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두 달 이상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여학생, 기생 등 여성들이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당시 경성 시내 여학교 만세 사건 보고를 보면 이화, 동덕, 배화, 숙명, 정신 등

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거의 3.1 만세 운동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내가 유관순이었다면.

총과 칼이 부모님의 몸을 관통하는 걸 보면서도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

당시에 보통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안전을 염려하며 만류하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맨 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무장한 일본 경찰 앞에서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이들은 김향화의 말대로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형무소에 끌려와 고초를 겪을 줄 알면서도

3.1에 만세를 불렀고, 그로 인해 여옥사에 수감되었지만,

그날의 일을 후회하지 않고, 다시 옥중에서도 만세를 외쳤다.

영화는 서대문형무소를 보여줄 뿐이지만,

부산, 경남 지역에서 최초로 3.1운동을 했던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은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강제노동과 나체 검사 등 일본 경찰의 지독한

만행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모진 수모를 겪으면서도 독립의 염원을 잃지 않았던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의 투쟁은

부산, 경남 지역의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뻗어나간 3.1운동은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국내외적으로

알린 기념비적 사건이다.

극중 대사처럼,

행하지 않은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에

유관순 그리고 여옥사 8호실의 그녀들은

자신이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행했다.

그것은 유관순의 말처럼

자유 의지를 지닌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분들의 숭고한 의지를, 진심을

묵직하게 잘 담아냈다.

유관순 역할을 맡은 고아성 배우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어느 영화관에서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만세 삼창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8호실에서 시작된 만세 소리가 옆방, 옆방으로 전해져

서대문 형무소를 뒤덮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흘러나온 만세소리가

서대문 일대를 뒤덮을 때

함께 만세를 따라부르고 싶었다는

감상평을 듣고,

나는 모두가 숨죽여 영화를 보았던

우리 상영관의 분위기도 좋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러한 분위기는

엔딩크레딧에 대한 나름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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