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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r 16. 2019

[SF를 찾아서] 7편/써클: 이어진 두 세계/스포주의

SF 드라마 / Tvn 방영 (2017)/ 출연 여진구, 김강우, 공승연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7

※ 주의 : 이 리뷰에는 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의 주요 내용 및 반전, 결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전 서류 한 장을 잃어버렸다.  밤 새 방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다른 연도의 서류는 내가 두었던 그 자리에 있는데,

2018년의 서류 한 장만 없어졌다.

정리 강박증이 있는 내가 절대 그 서류를 잃어버릴 리 없다며

2007년의 서류부터,

2019년 까지, 모든 서류가 다 제자리에 있는데

그 서류만 없을 리가 없다며,

어쩌면 내가 그 서류를 처음부터 안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그 서류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난 그 서류를 도대체 어디에 둔 것일까.

이미지 출처 : TVN 홈페이지


이럴 때,  TVN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처럼

2018년으로 돌아가서 영상화 된 그날의 기억을,

돌려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날의 기억을 본다 한들,

제대로 기억이 보존되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난해 어느날,  어떤 차량이 아버지의 차를  박고서 도망갔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블랙박스 영상을 들고 경찰서로 찾아갔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야간이라 블랙박스의 영상만으로는

도망간 차량의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동네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골목에 있는 마트의 CCTV 영상까지 확보했지만

경찰은 역시 야간이라 도망간 차량의 번호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도망간 차량을 잡지 못했다.

부모님은  경찰에게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아니냐고,

도망간 차량을 잡을 의지가 없는 건 아니냐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단호했다.

야간에 찍힌 블랙박스와 CCTV의 영상만으로는

차량 번호판의 글씨가 제대로 안 보여서 그 어떤 정보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경찰의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 : TVN 홈페이지

만약,  <써클>처럼 기억을 영상화 하는 기술이 상용화 되었다면,

아버지는 그날 도망간 차량을 잡을 수 있을까?

누군가 우연히 그 차량을 목격했다면

목격자의  기억 영상을

돌려보아 도망간 차량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의  기억 영상 기술에는 한계는 없을까?

야간이라 차량의 번호판 조차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는

그날의 블랙박스 영상, 혹은 CCTV 영상처럼 말이다.

나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블랙박스만 있다면,

도망간 차량은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맹신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믿었다.

출처 : TVN 홈페이지


그런데 야간이라는 변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블랙박스 기능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마트를 운영하던 동네 주민이 협조해준 CCTV 영상조차 소용없었다.


그렇다면, 기억이 영상화되는 기술이 있다 한들,

그 기술이 어떤 변수나, 특수조건 앞에서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만약 기술적인 한계가 없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악의가 없어야 하는데,

누군가 그 자료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삭제할 가능성은?


부모님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 그랬을 리는 없지만,

<써클>의 등장 인물 중에는 의도적으로 주인공들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

주인공을 도와주는 형사도 있지만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고, 증거를 은폐하고 조작하는 반대편 세력의 형사도 

써클에는 등장한다.

즉 기억을 영상화 하는 기술이 있다해도,

그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기억은 편집될 수도 있다.

만약 개인의 의지가 기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영상으로 돌려보는 그날의 기억이,

개인의 자유의지로 편집되지 않은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방 안을 뒤져도,  서류를 찾지 못하자

나는 그 서류를 내가 절대 받았을 리 없다고,

믿기까지 했다.

 

나의 이런 잘못된 믿음이, 혹시 기억 체계나 뇌까지 영향을 미쳐,

기억 영상에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은 혹시 없는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내가 절대 서류를 잃어버릴 리 없다고 우겼지만,

개인 일기장까지 뒤져본 후에야

내가 그 서류를 받은 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꼬아,

항상 내 손으로 쓰는 일기조차

누군가 조작한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명백한 증거가 있다 한들,

내 자신이 절대 틀릴 리가 없다는 믿음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증거로 제시되는 기억 영상 따위 사실 무슨 소용인가.

모든 것은 조작되어 있다고 우겨버리면 그만인데.


<써클>은 "기억"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나는 <써클>이 매우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써클에서 미래 도시로 나오는

203년의 스마트 지구의 배경은

인천 송도인데,

송도의 건물들이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몰입이 깨지기도 하고,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 장르의 드라마이지만,

(홍보 카피는 국내 최초 SF 드라마였다)


써클이 보여주는 세계관이나 주제의식은

이미 수많은 SF 영화나 장르물에서 다뤘던 이야기들로

기시감이 느껴진다.


나조차 학창 시절, 과제물에 이와 비슷한 이야길 써낸 적이 있었다.

기억을 함부로 차단해서는 안되고,

아픈 기억조차 그 사람의 일부라는 메세지조차

그만큼 흔하다면 흔한 주제인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야기와 주제를 다뤘다는 것이

곧바로 그 작품의 단점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익숙한 이야기와 주제지만, 그 익숙한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다룰 것인가?

혹은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나는 이런 것들이 그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써클이 기억에 대한 화두,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만으로도,

제 몫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복제인간이 된 김우진(여진구)를

형 김준혁(김강우)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인상깊었다.


이미지 출처 : TVN 홈페이지


김준혁은 자신이 김범균이고,

 자신의 진짜 동생인 김우진이

휴먼비 회장인 한상진(박동건)에 의해 죽고,

한상진이 만든 김우진의 클론인 써클레이트3가

일종의 부품이 되어

스마트지구의 중앙 컴퓨터 시스템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멘붕에 빠진다.


그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써클레이트3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토록 찾아헤매던 쌍둥이 형과 조우하는데,

쌍둥이 형은 자신을 거부한다.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고.

얼굴만 똑같은 복제인간일 뿐이라고.

이미지 출처 : TVN 홈페이지


하지만 김우진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써클레이트3는 김우진이라는

한정연(공승연)의 말과,

잃어버렸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금 되찾으면서

김범균은 써클레이트3를 자신의 동생인 김우진으로 받아들인다.


김우진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김우진이라는 말을,

한정연이 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그녀는 한정연의 기억을 갖고 한정연으로 살아왔지만,

한편 그녀는 별이, 이기도 하다.

비록 별이로서의 기억은 없지만.

기억 영상 기술을 다룰 수 있었던

외계인 별이.

이미지 출처 : TVN 홈페이지


이때, 드라마를 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김우진의 기억을

다른 클론에게 주입시켰다면?

김우진과 얼굴과 몸이 똑같지 않아도

김우진의 기억을 갖고 있으니,

김범균이 김우진으로 결국 받아들였을까?


현재 내가 지닌 휴대폰의 유심칩을

다른 휴대폰에 끼우면,

그때부터 그 휴대폰은

내 휴대폰이나 다름없는 셈이 된다.


하지만,  동생을 받아들이는  일과

휴대폰의 유심칩을 교체하는 일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만약 써클레이트3에게서 모종의 이유로,

동생의 기억이 지워진다면?

그리고, 써클레이트3 본연의 자아가 생겨난다면?

혹은 동생의 기억과 새로 생긴 써클레이트3 본연의 자아와

충돌한다면? 그때 김범균의 선택은?


그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정연의 말은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써클은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질문과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것인지,

아니면, 거기까지는 써클이 다루려는 주제가 아닌 것인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기억은 책임이라고.

과거의 아픈 기억도, 나의 일부라고.

그것을 무작정 지우고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건, 곧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기억은 볼 수 있어도, 추억은 보지 못한다고.


나는 이 드라마가 말하는 기억에 정의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나도 분명히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의 기술적 완성도나 스토리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별이가 지닌 기억 영상 기술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는

과학적 설정은

별이가 외계인이라 가능했다는 설정 하나로

퉁치고 넘어간다든지)

시즌2의 떡밥을 던지긴 했지만

제작 여부는 미지수인지라..


오랜만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본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흔하다면, 흔하지만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그 화두를

다시금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12부작의 드라마를

볼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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