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SF 애니메이션 (25분) /감독 신카이 마코토/ 제작 2002년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8
※ 주의 : 이 리뷰에는 영화 <별의 목소리>의 주요 내용 및 결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봄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는
사방팔방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미세먼지에 촉각을 더 곤두세우게 된
계절이지만, 어쨌든 봄은 봄이다.
벚꽃 피는 계절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는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
첫사랑 아카리를 만나러 나름 먼 길 가는데,
폭설로 한없이 지연되다가, 결국은 멈춰버리고야 마는 열차 안에서의 타카키의 초조한 심정에
동화 되었다가
(출근길엔 1분 1초가 아까운데, 이번 역에서 1분간 정차하겠습니다, 라는 안내 방송이
연달아 나오는 순간의 참담함이란!)
문득, 항공 우주 덕후라는
신카의 마코토 감독의 초기작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초속 5센티미터>의 2부 제목도 <코스모너트(우주비행사)>이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별의 목소리>를 감상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중학생 나가미네 미카코와 테라오 노보루는 같은 검도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보루는 미카코에게게 고등학교에서도 검도를
계속 할 거냐고 묻지만,
당연히 그녀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보루의 생각과는 달리
미카코는 국제 연합국 선발대 멤버가 되어
우주로 떠난다.
두 사람은 각각 지구와 우주에서 메일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만,
우주군 전함 리시테아호가 목성 에우로파 기지를 경유해 태양계 안쪽으로 향하면서
메일이 왕복하는 시간은 길어진다.
미카코가 보내는 메일을,
노보루가 받기까지의 시간이
휴대폰 화면에 뜨는데
1분이면 전송되는 미카코의 메일을
노보루는 몇 개월 뒤에 받아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메일을 계속 주고 받지만,
미카코가 보내는 메일이 노보루에게 8년 뒤에
전송된다는 장면에서는 진심 당황스러웠다.
미카코가 8.6광년이나 떨어진 시리우스 성계로 워프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나는 시리우스에 있을 거야.
서로의 메시지가 도착할 때까지 앞으로 8년 7개월이 걸리겠지"
그렇게 15세의 미카코가 보낸 메일은
8년 뒤 성인이 된 24세의 노보루에게 닿는다.
이후 함대에 입대를 앞둔 노보루와
타르시안과의 격투 끝에
우주 공간을 유영하게 된 미카코의 모습으로
애니메이션은 막을 내린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1.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런 장면을 꽤나 좋아하는 걸까?
그의 작품들에서 한번씩은 꼭 본 것 같은데.
2. 30분 남짓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라서 그런지 배경 파악이 잘 안 된다.
그래서 DVD의 북클릿을 펼쳐보았다.
2039년, 화성유인조사대는 타르시스 대지의 분화구 안에 외계문명의 유적을 발견하지만,
그 유적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생명체의 습격으로 전멸하고 만다.
[타르시스의 유적]의 발견 및 유인조사대의 전멸 상황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그 결과 인류가 미지의 생명체로부터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국제연합우주군이 창설된다.
조사대를 습격한 이계 생명체는 타르시스 지역의 이름을 따서 타르시안으로 불리게 된다.
타르시안은 태양계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타르시스의 유적으로부터 발견된
각종 테크놀로지는 지구의 과학수준을 단번에 반세기 이상의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마침내 인류는 광속여행이 가능한 우주전함 리시테아를 만들고,
태양계의 바깥 쪽에 [타르시안]의 유산으로 추측되는 인공의 워프 포인트, 통칭 숏컷 앙카가 발견되어 항성 간의 항해도 가능해지게 된다.
관동지방의 어느 중학교에 다니는 미카카와 노보루는 같은 동아리에 속한 동급생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미카코는 국제연합우주군의 멤버로 선발되었다고 노보루에게 전한다.
이듬해인 2047년 겨울, 미카코는 우주로 떠나고 노보루는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지상과 우주로 헤어진 미카코와 노보루는 휴대폰의 문자 메세지로 연락을 하지만,
미카코가 타고 있는 리시테아호가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메세지의 전파도 점점 시간이 걸리게 된다. 미카코로부터의 메세지만을 기다리며 일상생활을 보내던 노보루는 점점 지쳐간다.
리시테아 함대가 공간 워프를 실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시간적 차이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여기까지가 DVD 의 북클릿에 소개된 줄거리다.
SF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짧다 보니
우주 공간에 대한 배경은 북클릿에 나온 정보들로만 이해를 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 영화는 SF 라는 장르에 중점을 두었다기보다는
SF의 외피를 입은 초장거리 연애담처럼 보인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도 장거리 연애 이야기이긴 하지만 <별의 목소리>는 공간적인 거리는 물론, 시간적 거리까지 초장거리다.
이런 연애, 과연 지속 할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첫사랑을 유예하고 싶은 타카키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역시 짧아서 그런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애달픈 마음에 크게 동화되진 못했다.
(내가 공감을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장거리 연애 경험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카코에서 우주 공간에서 느끼는 고독의 감정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 <그래비티>의 라이언이 떠오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