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생충을 부모님에게 볼 만한 영화에요, 라고추천하는 것은 좀 꺼려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중을 하기 힘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봉준호 감독의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거나 송강호 배우의 영화를 거의 다 본 사람들이라면,
혹은 박찬욱 감독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영화 역시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러한 경우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서 <플란다스의 개>를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 <기생충>의 초반에는 <플란다스의 개> 느낌이 나기도 했고 (지하실 장면),
후반부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 가 연상되거나 혹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같다는 (잔혹동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기택(송강호)의 대사였다.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것.
어차피 계획을 세워봐야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는 것.
이 말은 내가 최근 몇년간 친구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기택이 반지하방의 물난리를 겪고 난 후 대피소인 체육관에서 아들 기우에게 하는 이 말에는
체념, 자조, 포기의 정서가 묻어났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후각이다. 결국 후반부에 벌어지는 일들은, 기택의 냄새 (반지하 냄새 혹은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냄새)가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박사장의 가족들이 그의 냄새를 불쾌해할 때마다 켜켜이 쌓여지는 모멸감과 잠재된 폭력성이 충동적으로 분출되는 장면은 송강호의 눈빛 연기로 서사를 완성한다. 박사장과 기택이 인디언 모자를 쓰고 대치하는 장면은 조만간, 뭔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나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게 한다.
(자동차의 뒷좌석에서 코를 쥐는 조여정을 백미러로 바라보는 송강호의 표정도 매우 무서웠다.)
결국 기택은 박사장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는 '지하실'로 숨는다.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남편이 숨어살았던 바로 그곳으로.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기우와 기택은 재회하지만, 곧 기우의 소망이었음이 밝혀지고, 몇몇 관객들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사실, 기우가 바라는 그런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기에,씁쓸하기도 한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은데, 특히 여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모두에 손에 꼽는 이정은 배우는 물론이고, 송강호 아내 역할을 맡은 전혜진 배우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그리고 박사정의 아내 역할을 맡은 조여정의 연기도 좋았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제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는 기우, 기정 남매(최우식, 박소담)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적어도, <기생충>을 관람하는 동안에는, 내가 왜 이 돈을 내고, 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라는 심각한 고뇌에 빠지지 않았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어서 나타나는 메타포이다.기택의 가족은 반지하방에서 벗어나 잠시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영화의 결말부에서 기택은 반지하방에서 지하로 하강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계획에 대해 말하는 기택의 대사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기정이 역류하는 변기 뚜껑을 누르고 앉아 담배를 피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위로 영화 초반, 윗집 아주머니가 드디어 아이피 타임에 비번을 걸었다며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애쓰던,
남매의 표정이 겹쳐보였다. 만약, 기정이 그 난리통에서 살았남았다면, 기우의 꿈은 그래도 이뤄질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겠지만, 난 이 영화가 충분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장면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기택의 가족은 곧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선을 넘지 말라고 강조하는 박사장에게서도 감추고만 싶었던 나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