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계벽 / 출연 차승원, 엄채영, 박해준 / 2019. 9월 개봉
추석 연휴 첫날, 가족들과 함께 볼 영화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골랐다.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는 코미디라는 것만 알고
그 외 정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정신지체가 있는 철수 앞에 어느날 백혈병을 앓고 있던 딸 샛별과 샛별의 외할머니가 나타난다.
철수에게 골수 기증을 원하는 샛별의 외할머니에게 철수를 돌보는 철수의 동생 영수는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서 그럴 수 있으냐며 화를 낸다.
하지만 샛별이 대구로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을 얻기 위해
외할머니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고, 그 여행에 철수가 얼떨결에 동참하면서
영수와 샛별의 외할머니, 그리고 영수의 딸 민정 또한 그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서로 앙금이 쌓여 있는 듯한 영수와 샛별의 외할머니는
영수의 카드를 긁고 다니는 철수와 샛별의 흔적을 좇아가는 와중에도
끼니 때마다 함께 밥을 먹는다. 때가 되면 배고프다고 징징 대는 철없는 민정과
큰아빠부터 먼저 찾고 밥 먹자면서도 내심 자신도 그런 눈치인 영수, 그리고
애는 밥을 먹어야지 하며, 내키지는 않는다는 표정이지만 늘 돈을 꺼내드는
샛별의 외할머니. 이들이 이렇게 같이 밥을 먹으면서 서서히 앙금을 풀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철수와 샛별의 장면에서는 아무래도 두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있다보니
영화가 이들의 아픔을 단순히 코미디의 소재로만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다행히 내가 느끼기에 그런 장면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결말에 우리 사회의 병적인 존재였던 조폭도
선행을 해서 사람을 살렸다, 라는 장면을 굳이 넣었어야 했나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철수가 구해낸 전직 조폭 두목이
지금은 철수로 인해 새 삶을 살고 있다,
라는 장면과 연결시키려고 그런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샛별이 대구로 간다고 했을 때,
왜 철수가 주저했는지
왜 영화의 배경이 대구여야했는지,
영화의 중반부에 들어서면 그 이유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철수는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을 구한 소방관이었고
당시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임신 중이던 철수의 아내는 대구 지하철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딸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죽은 철수의 아내.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태어나 백혈병을 앓게 된 철수의 딸 샛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가족들은 그래, 우리가 그 일을 잊고 있었지, 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이 영화를 코미디 영화로 알고 봤는데,
사실 코미디 장면에서는 거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마다 개그 코드는 다르고 내가 웃지 않는 장면에서
많이 웃는 관객들도 있었으니 코미디 영화로서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각자 판단할 몫인듯 하다.
또한 영화의 중, 후반부가 눈물부터 나게 만드는
신파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이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감독이 영화의 등장 인물 모두에게 애정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졌고,
사람에 따라 자칫 진부하거나 억지 감동을 주입하는
신파라고 느껴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잊지 말자"는 영화의 메세지가 와닿았다.
내가 생각한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드라마라기 보다는,
휴먼 가족 드라마였는데 왜 포스터에는 코미디 맛집으로 홍보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무난했고
(배우들의 베스트 연기라고 생각되는 않지만,
배우들 나름대로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느껴졌다.)
내 옆에 있는 가족들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