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Oct 05. 2019

[달쓰반] 95편 / SPAF 연극<카프카>,그리고 K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 고골센터 <카프카> / <성>,프란츠 카프카,솔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95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지난 10월 3일 개막했다.

올해 SPAF는 독일·덴마크·러시아·벨기에·이스라엘·프랑스·핀란드에서 초청된 해외작과

10편의 국내작 등 총 9개국 18개 작품을 20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나는 SPAF의 개막작인 고골센터의 <카프카>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람했다.

<카프카>(원작 : 발레리 페체이킨 『카프카』)는

작가 카프카의 삶에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으로

체호프, 푸쉬킨, 볼쇼이, 마린스키 극장 등 세계 명문 극장에서 연극, 오페라, 발레 등

폭넓은 예술세계를 펼쳐온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연출을 맡았다.


나는 카프카의 작품을 <변신>과 <성> 정도 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이 두 작품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데다가

카프카가 낮에는 보험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는 것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고,

몇년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재미있게 본 터라,  

모처럼 연극 예매를 했다.


사실, 평일 퇴근 후 공연시간이 긴 연극을 보면

기가 빨려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언젠가 내 일기장에 옮겨 적었던,

카프카가 썼다는 어떤 글귀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 일과 사무를 보는 일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이유는

글쓰기는 삶의 깊이에 무게 중심을 두는 반면

사무를 보는 일은 삶의 표면에 무게 중심을 둔다는 차이가 바로 그것이오.”


연극은 카프카의 전기 작가가 카프카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은 좋은 아가씨인 펠리체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

그리고 한 눈에 봐도 억압적으로 보이는 카프카의 아버지.

왜 카프카가 <변신>이라는 작품을 썼는지

극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흉흉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변신 中



결혼도 하지 않고 낮엔 변변찮은 회사를 다니며

밤에는 한심한 글에 매달리는

카프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과

그 시선의 끝에 한 마리 벌레가 되어 버둥대는 카프카의 모습이

대비되어 연극 1막이 끝난다.


카프카는 자신의 사후 모든 원고를 불태우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지만,

그의 원고를 가지고 있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출판된 카프카의 원고는,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이 된다.


현재 카프카는 천재 작가로 추앙받으며

자신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던

프라하의 상징이 되었다.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한 작가가

사후에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추앙받는 일은

비단 카프카의 일만은 아니지만,

연극을 보는 내내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극은 카프카의 불안과 고독을

수많은 시각, 음향 효과 등으로 보여주는데

카프카의 삶이나 문학 작품을 모른다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카프카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라

카프카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어떤 작품을 썼는지,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K의 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무엇인지

마리 아브라함은 누구인지

작품 속 인물인지

실제 카프카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인지

머릿속은 내내 의문투성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명확히 다 알 수는 없다고 해도,

객석 밑에 놓인 편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세상의 광기 앞에 나는 나 자신의 광기를 세우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나와 세계는 같은 언어로 말을 하게 되겠지요. 이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난 화산 옆 텅 빈 시골에 혼자 남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뜨거운 용암이 흘러 드는데 나는 글자 하나가 적힌 종잇장을 앞에 쥐고 서 있습니다. 당신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저는 이 글자, 이 글자 하나만은 제가 영원히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한 글자만이라도.
                                                                   
                                                                                              K





내가 아는 K라면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성>의 등장인물인데....

K는 측량기사로 고용되어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K가 고용된 적이 없다면 성에 들어가길 거부한다. 이때부터 K의 방황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이 K를 거부하는 것은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정착민이라면 당연히 이방인에게 이런 마음을 품을 것이다.


“당신은 그럼 뭡니까. 성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거시기, 타곳 사람이지요. 군것지고 길 어디서나 거치적거리는 존재, 성가신 일이 그치지 않게 하는 존재, 하녀의 숙소를 다른데로 옮기게 한 사람,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사람, 앙증스러운 우리 프리다를 꾀어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내로 줘야 될 사람이란 말이오.”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했던 것은 ‘성’과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는 ‘클람’이다. 클람은 K를 고용한 사람이지만 K는 끝끝내 클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를 만나려고 그의 애인이었다는 카페의 여급 프리다를 꾀어내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노력은 정말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원하는 성에는 결국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클람 이야기만은 가끔 하는데 알다시피 난 아직 클람을 본 적이 없어요. 프리다는 날 좋아하지 않아 그의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의 외모는 마을에 잘 알려져 있으며 그를 본 사람도 몇 있고 그에 관해선 다들 들었죠. 그리하여 보고 들은 이야기에 또 여러 가지로 엉터리 속셈을 가지고 클람의 상을 만들었는데 주요한 점에선 일치하는 성 싶어요. 하지만 주요한 점에서만 이지요. 그 밖엔 일정하지 않은데 클람의 실제 모습처럼 잘 변하진 않을 거예요. 그는 마을에 올때 전혀 다른 모습이고 떠날 때 다르며 맥주를 마시기 전에 다르고 마신 뒤에 다르고 깨어 있을 때 다르고 자고 있을 때 다르며 혼자 있을 때 다르고 이야기 중일 때 다르다고 해요. 따라서 저 성 위에선 거의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실체가 잡히지 않는 클람과 성. 이제 소설은 성이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성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다양한데, 어떤 사람들은 성을 절대적인 초월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관료 조직이라고 한다. 면장은 K에게 성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는데 나는 그것이 관료 조직이랑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이 관료 조직이라고 해석해버리는 것은, 너무 제한적인 해석이 아닐까.




연극 <카프카>의 K는

<성>의 그 측량기사인가?

이 연극은 K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하는 걸까.

K는 카프카, 그의 또 다른 자아인가?

<성>이란 작품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정착민의 삶을 살지 못했던 K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K는 결국 프란츠 카프카, 그 자신인가?


카프카의 죽음으로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나의 이런 상념들은 210분의 공연 시간 동안에도

완전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카프카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카프카는 펠리체와 파혼했고,

평생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동시에

예술가로서 글을 마음껏 쓰고 싶은,

그 상반된 마음의 문에서

주저하며 서있는

카프카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지만,

결혼에 대한 그의 두려움도

막연히 그저 이렇게 짐작만 할 뿐,

그를 내내 사로잡고 괴롭혔던,

근원적인 불안의 원인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보는 카프카의 삶, 그리고

그의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고독과 불안의 그림자에

나는 묘하게도 위안을 얻었다.

그 커다란 불안의 그림자에

나의 조그만 불안을 겹쳐서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극 <카프카>는 러시아어(자막제공)로 진행되었고,

무용과 음악, 미술, 영상 등을 결합한

전방위적인 예술 무대를 선보였다.

개막작인 이 작품을 통해 언어 뿐만 아니라, 배우의 몸짓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공연예술의 매력을 좀 더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좀 더 내어,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다른 작품들을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출처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 (http://spaf.or.kr/2019/default.php)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 94편 / 힘을내요 미스터 리(스포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