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카 소설집<독립의 오단계> 수록/ SF가 우릴 지켜줄거야2/허블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11
이미지 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357926?OzSrank=1
개인적으로 게임에 대해 잘 모르고
제대로 해본 적도 없지만
웹진 크로스로드(2019년 7월)에 발표되고
소설집 「독립의 오단계」에 수록된
이루카 작가의 <루나벤더의 귀가> (허블, 2020)는
마치 내가 직접 게임 속에 들어가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들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소설이다.
p. 209~210
하늘에서 쏟아지는 루루골드가 순식간에 루나벤더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루나벤더는 재빨리 아이템함에 루루골드를 충전시켰다.
헤븐소드를 업그레이드하기 충분한 양이었다.
노란 안개를 뚫고 몬스터가 굉음을 내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루나벤더는 몬스터의 정수리를 향해 높이 점프했다.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루나벤더에게 몬스터가 불을 뿜었지만
루나벤더의 헤븐소드가 더 빨랐다.
불기를 가르는 헤븐소드의 일격에 몬스터가 쓰러지고 루나벤더가
사뿐히 그 앞으로 내려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루나벤더는
조심스레 노란 안개 속에 들어섰다. 서서히 흐려지는 안개를 헤쳐가며
루나벤더의 눈은 바쁘게 블랙펄을 찾았다.
<루나벤더의 귀환>은 ‘헤븐나이츠’라는 가상현실 치료게임에 참여해
의식을 잃은 가족의 의식을 구해오는 '모험서사'이자
서로에게 구원자가 되어주는 '가족'의 연대기이다.
단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단 하나뿐인 가족임을 자처하며
제 잇속만 챙기려는
백제강과 같은 인물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문보라, 고유리, 백진주.
이들은 '헤븐 나이츠'라는 게임 속에서
각각 루나벤더, 유리크리, 블랙펄이 되어
서로를 구원하고,
그 구원의 빛은 마침내 현실의 어둠까지 뚫고 나온다.
같은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새벽의 은빛 늑대> 역시 한밤중에 연대하며 달리는 '자매'들의 이야기다.
필터 마스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에어시티를 꿈꾸며
매주 해피에어권 추첨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이제 마스크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는
요즘의 시국이 떠오르기도 했다.
<루나벤더의 귀가>를 읽으면서는
만약 헤븐 나이츠, 라는 가상현실 치료게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나에게도 가족이 이런 위험에 처했을 때
랜덤 sos 메세지를 보낼 수 있는
프리패스쿠폰 같은 것이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서로의 손을 맞잡은 순간 사방에서 위아래로 강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문이 되었고,
루나벤더와 블랙펄이 빛으로 된 문에 다가가기도 전에
빛이 그들을 먼저 삼켰다.
루나벤더와 블랙펄이 사라진 붉은 사막을 향해
루루골드가 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표제작인 <독립의 오단계>를
비롯해 <루나벤더의 귀가>, <새벽의 은빛 늑대> 세편의 수록작은 모두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연대'라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루나벤더의 귀가>라는 소설이
제일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비록 게임이라는 장르는 잘 모르더라도,
의식을 잃은 가족을 구해오고자 하는
루나벤더와 유리크리,
문보라와 고유리의 절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