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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y 20. 2016

[M.M.C] 11편/블랙 에코/마이클 코넬리

사자(死者)를 위한 굿판 2.

  Madam Mystery Cabinet No.11


사자(死者)를 위한 굿판 2.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 &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 에코』     

                          


       The Black Echo

            블랙 에코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해리 보슈’ 내가 그를 만난 건 『트렁크 뮤직』이라는 작품에서였다.

  그 뒤로 순서에 상관없이 뒤죽박죽으로 그를 만났다. 나는 이미 해리 보슈에게 푹 빠진 탓에 순서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블랙 에코』까지 왔다.

 

 이 작품은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첫 작품이다. 해리 보슈의 탄생 편인 것이다. 해리 보슈는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다음 작품이 거듭되면서 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첫 등장부터 보슈는 거의 성장을 끝낸 인물이었다는 것. 그는 이미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었고 LA 경찰에서 20년 가까이 근무 중이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고속 승진도 경험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와 TV시리즈에 그의 이름이 사용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 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으며 좌천된 상태였다. 그의 이런 상황은 시리즈가 이어지면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시리즈의 시작다운 면이 없지는 않다. ‘해리 보슈’의 정체성을 이루는 커다란 부분인 베트남 전쟁을 다룬다는 점이다.

 

   보슈는 거의 자지 않는다. 하루 종일 셀 수도 없이 많은 커피를 마신다. 퇴근 후에는 주로 맥주를 마신다. 담배는 거의 중독 수준이다. 마른 편이며 키가 크지는 않다. 젊을 때는 꽤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라스트 코요테」) 늦은 밤까지 서류 작업을 하고 새벽같이 출근한다. 살인자를 찾기 위해서라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꺼리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오해나 중상모략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LA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있지만 주로 혼자 움직인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해서 움직인다. 15C 네덜란드의 화가(히에로니머스 보슈)와 같은 이름을 쓰며 LA, 할리우드가 내려다보이는 밸리에 산다.      


  ‘필립 말로’ 시리즈가 의뢰인과의 만남에서 출발한다면 ‘해리 보슈’ 시리즈는 사건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이 형사라면 이 역시 언제나 비슷한 출발이다. 그리고 독자는 정형화된 이 출발점에서 살짝 허리를 곧추세운다. 자신도 모르게 출발점을 감싼 팽팽한 공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LA 할리우드 근교, 멀홀랜드 댐 부근의 굴(진흙 차단 장치) 안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마침 보슈는 관할서의 당직 형사였다. 시체는 굴 안으로 기어들어가 마약을 과다 복용하다 죽은 것으로 보인다. 보슈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처리되었을 것이다. 시체는 보슈가 아는 인물이었다. 베트남 참전 당시 같은 ‘땅굴 쥐’ (땅굴 쥐에 대한 설명과 회상은 역사적 배경을 떠나 비참하고 슬프다. - 주석 1) 동료였다.

 

  땅굴 쥐는 2인 1조로 움직인다. 땅굴 안에 있는 적을 해치우고 땅굴을 파괴하려면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땅굴 속으로 발이나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죽창과 칼 또는 부비트랩이 날아올 수 있다. 그러면 뒤에 있는 동료가 그를 끌어내야 한다. 이들은 죽음의 방식이 어떻든 쓰러진 곳은 땅굴이 아니길 바란다. 죽어서까지 지옥의 아가리 같은 땅굴 속에 누워 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랬던 옛 동료가 베트남의 땅굴이 아닌 고국의 굴속에 누워있다.

 

  보슈는 일종의 무당이다.

   살인 전담반 형사라면 거의 숙명이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죽음의 과정과 이유를 밝혀야 하는 사람의 운명. 보슈는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으며 충실하게 따른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해 움직인다. 보슈가 벌이는 굿판에는 방해꾼도 많다. 거대하고 힘 있는 방해꾼, 사소하고 일상적인 방해꾼. 보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고 집요하게 움직인다. 그리하여 반전과 카타르시스로 가득한 굿판이 끝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보슈도 독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주석 1)  베트남 전쟁 당시 미 육군이 편성했던 일명 ‘땅굴 수색대’ 보통 'Tunnel Rats'(땅굴 쥐)라고 부름.

   http://blog.ohmynews.com/gompd/149208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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