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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n 03. 2016

[달쓰반] 14편 엑스맨과 세일러문의 신화 모티프

엑아포, 엑데퓨, 세일러문 크리스탈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14

※ 주의 : 이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감상한 애니메이션(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영화(엑스맨:아포칼립스) 모두 세계의 종말 혹은 파멸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 많다. 

20여년 전 방송된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시리즈를 리부트한 ‘세일러문 크리스탈’. 

3기 8화에서는 파멸의 전사 ‘세일러 새턴’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침묵의 낫을 휘두르면 행성 하나쯤은 날려버릴 수 있는 파멸의 전사 세일러 새턴의 모티브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따온 것이다. 


(흥미롭게도, <엑스맨:아포칼립스>에는 피닉스 포스의 힘을 깨달은 진 그레이의 모습이 나온다. 엑스맨 원작 코믹스를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피닉스 포스의 숙주가 된 진 그레이의 능력은 가히 우주급이라서 행성 하나 날려버리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한다) 


사투르누스는 시간의 신이기도 하다. 원래 농업의 신이었지만 후대에 내려와서는 시간의 신이 되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므로, 세일러 새턴이 파멸의 전사 지위를 갖게 연유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세일러 새턴은 현재 병약 미소녀인 토모에 호타루의 몸에 잠들어 있는데, 호타루는 어릴 적부터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주위에서 별종 취급을 받았다.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 때문에 호모-사피엔스(인간)들에게 소외당하는 뮤턴트(돌연변이)들이 나온다. 


구 애니와 <세일러문-크리스탈> 모두 토모에 호타루가 병약하고,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은 동일하지만, 세일러문-크리스탈에 한가지 추가 된 설정이 있다. 어릴 적 심한 화상을 입은 토모에 호타루가 기계 팔을 갖고 있다는 것.


외행성인 토성을 수호성으로 삼은 세일러 새턴을 깨우는 것은 외행성 전사인 세일러 우라누스, 세일러 새턴, 세일러 플루토가 지닌 타리스만이다. 세일러 플루토는 명왕성을 수호성으로 삼는 전사인데, 안타깝게도 지금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다. 세일러 플루토가 탄생했을 때는 분명히 행성의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의 명왕성은 소행성 134340이 되었다. 


외행성은 망원경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행성이다. 화성과 목성도 외행성으로 분류되지만 세일러문 세계관에서는 내행성에 속한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렇게 태양에 가까운 순으로 내행성과 외행성을 분류한 게 아닐까 싶다만, 자세한 건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행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세일러문 세계관에서 가장 강한 것은 달인데, 달은 지구의 위성에 불과하지 않나?)

(이미지출처: http://s.mxtv.jp/anime/sailormoon_crystal/)


세 명의 외행성 전사들은 스페이스 소드(우라누스), 딥 아쿠아 미러(넵튠), 가넷 오브(플루토) 라는 3개의 타리스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각각 칼, 곡옥, 거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3개의 타리스만은 일본 신화의 삼종신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타리스만이 공명을 시작하면 파멸의 전사 세일러 새턴이 깨어나게 되는데, 외행성 전사들은 새턴이 깨어나기 전에 호타루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세일러문은 한 사람을 희생해서 얻는 세계 평화는 의미가 없다며, 이들의 행동을 반대한다. 


엑아포의 전작인 엑데퓨(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도 미래를 알게 된 에릭 랜셔(매그니토)는 미스틱을 죽이려고 한다. 그녀 한 사람 때문에 뮤턴트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미리 막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에릭의 이러한 행동을 찰스 자비에(프로페서X)가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구 애니인 <세일러문S>에서는 호타루를 죽여서라도,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외치는 외행성 전사들과 단 한 사람이라도 세계 평화를 위해 죽일 수는 없다고 맞서는 세일러문의 대립이 치열하게 그려졌는데, 세일러문 크리스탈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룰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시리즈에서 세일러문이 갖게 되는 성배 역시 기독교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성배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를 따른 잔을 의미한다. 


그럼, 이제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이하 엑아포)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엑아포에도 신화적 은유가 가득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포칼립스가 거느린 뮤턴트들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포호스맨을 연상시킨다. 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은 세계의 종말에 관해 언급한 책으로, 어렸을 적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들으면서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공식적으로 요한계시록 이야기를 꺼내는 적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요한 계시록은 일종의 금기에 가까운 책이다. 하지만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가끔 들려주는 요한 계시록 이야기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서웠다. 어린 나이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계의 마지막 모습은 그 어떤 영화보다 처참하게 다가왔다. 


4기사는 정복의 백기사, 전쟁의 적기사, 기근의 흑기사, 죽음의 청기사를 가리킨다. 이들의 등장은 곧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엑아포의 스캇(사이클롭스) 역시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클롭스(Cyclops)의 유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퀴클롭스에 해당한다. 퀴클롭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아들로 외눈박이 괴물이다. 엑아포의 사이클롭스는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는 뮤턴트로 나온다. 


세계의 종말에 관해 언급하는 묵시록적인 대중 매체는 수없이 많고,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엑아포> 역시 흔해빠진 클리셰를 담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엑스맨과  세일러문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세계 종말을 막기 위해 그 어떤 이의 희생도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때로는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나는 그들의 뜻에 공감한다. 


물론, 엑스맨과 세일러문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입장에 반대편에 서는 사람들이 있다.

찰스 자비에 교수에 맞서는 매그니토가 그러하고, 세일러문과 내행성 전사에 맞서는 외행성 전사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더 큰 적을 막기 위해서 전쟁과 폭력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한다.


찰스 자비에(프로페서X)와 에릭 랜셔(매그니토)의 대립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흑인 저항 운동의 상징이었던 마틴 루터킹과 말콤X에게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비폭력 저항에는 공감하면서도, 이것을 우리나라가 겪었던 실제 역사에 대입해 생각 보면, 머릿 속이 한층 복잡해진다. 일제강점기의 삼일운동은 비폭력 시위였지만, 무력 항일 저항 운동을 했던 독립 투사들의 각고의 노력을 ‘테러’라고 치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일러문과 찰스 자비에가 반대하고자 했던 폭력은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었다. 

그렇다면,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 결정적인 인과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 의한 희생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파멸의 전사인 새턴을 봉인하고 있는 세일러 새턴이나 그녀의 DNA로 인해 탄생한 센티넬 때문에 뮤턴트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미스틱.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꾼다는 설정으로, 미스틱이 처한 위기를 해결했고, 나아가 미스틱이 뮤턴트들의 영웅으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파멸의 전사 새턴은 세일러문 시리즈에서는 세일러문의 희생으로 인해 메시아적 존재로 거듭난 후 다시 아기가 된다. 세계 또는 뮤턴트의 종말을 불러 일으킨다 여겨진 불길한 존재들이 결국 일종의 구원자 또는 영웅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을 믿어준 찰스 자비에나 세일러문 덕분이었다.


희망을 유치한 것이라 치부하기는 쉽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유치한 것, 답답하다고 여겨지는 그것을 끝까지 놓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엑스맨의 뮤턴트나 세일러문에 등장하는 전사들의 능력(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능력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얼마나 큰 저주인가!)이 아니라 그들이 늘 외치며, 그 어떤 적을 만났을 때도 항상 놓지 않는 희망 때문이다. 

ps. 아포칼립스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찰스 자비에 교수의 머리카락을 모두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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