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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n 10. 2016

[달.쓰.반] 17편/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

제18회 서울국제영화제 상영작 (Burn Burn Burn 2015)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17 

※ 주의: 이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나,  나중에 장기기증 할까봐. 

라는 이야길 꺼냈다.

그 순간, 나는 너의 가족은 어쩌고? 가족이 좋아할까? 라고 되물었다.

아마도 장기기증은 사후에 가족 승인이 필요하긴 할 걸? 

그리고 나의 사후에 장기기증에 관한 서류가 가족한테 전달될 때에는

나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 나와 가족들이 충분히 상의를 한 이후겠지, 

라고 친구가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아, 최근에 <굿바이 마이 프렌드>란 영국 영화를 봤는데,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이었어. 그런데 그 영화 내용이 

친구가 병으로 죽었는데 그 유골을 영국 전역에 뿌려달라는 내용이었어.

원제는 Burn Burn Burn(2015)이구.  

그 유언을 듣고 남은 친구들은 혼란스러워 하거든. 

죽은 사람은 남자고, 유언을 들은 친구들은 여자 둘이야. 

그들은 뼛가루라도 부모님한테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처음엔 막 주저하거든. 

하지만 결론은 친구들이 죽은 친구의 소원 들어주기로 하고 영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자기 삶에 대해 반추해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죽은 친구가 자신의 뼛가루는 좀 남겨서

부모님한테 돌려드리라고, 하는 말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해. 


아, 장기기증 한다고 해서 나의 육신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닐 거야

가족들에게 육신의 일부는 돌아갈 거야. 그게 어떤 형태가 됐든.

친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영화 보고 나서 그런지,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인 너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 라고 나는 말했다. 


친구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그동안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미리 써보는 유서, 이런 것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건,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단지 나는 가능한 편안하게 고통 없이, 죽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전부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댄의 맥북에어 동영상에 담긴 유언장을 봤을 때 

알렉스와 세프가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더욱 이해가 되었다.


나는 장기기증 할까봐, 라는 오랜 친구의 이 말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영화 속 그 친구들은 절친의 뼛가루를 글로브박스에 담아가지고 

영국 곳곳에 뿌려줘야 한다니! 알렉스와 세프는  처음엔 그저 멘붕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는 알렉스와 세프의 멘붕만을 계속해서 보여주진 않는다.


                                                                                                                                                  

 "The only people for me are the mad ones, the ones who are mad to live, mad to talk, mad to be saved, desirous of everything at the same time, the ones who never yawn or say a commonplace thing, but Burn, Burn, Burn"



댄이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의 구절을 인용하며 들려줄 때 

마음의 동요를 겪던 두 친구는 자신의 삶에서 감정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점점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댄의 표현처럼 

델마와 루이스와 꼬마유령 캐스퍼가 함께하는 영화 

<굿바이 마이프렌드>는

코미디 장르답게 영화 곳곳에서 터지는 유머도 있다.

처음에는 댄의 뼛가루를 뿌리는 걸 반대했던 성당의 수녀는 

뼛가루를 소금통(?) 같은 곳에 담는 걸 허락하고, 심지어 점심시간마다

산책시켜주겠다고 하자, 그 이야기를 들은 세프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친절하다고 감격해서 운다.


웃기면서도 짠했던 장면은 

게이인 알렉스에게 가해지는 남성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세프가 풍차돌리기(?)라는 똘끼충만한 행동으로 물리쳐버린 일이었다.

알렉스와 세프가 마트에 들어갔더니

마트에 있는 남자들이 너희 둘 레즈 아니면서

매우 무례한 행동을 하는데 

그 장면에서 영국에서도 여혐이 만연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우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답게 여성이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폭력이나 억압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다.

알렉스와 세프는 댄의 마지막 유언 장소인 스코틀랜드에 가려는 것을 포기하려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 때문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옥스남까지 가게 된다.

자신을 옥스남까지 데려다달라고 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할머니는 

겁에 질려 있었는데, 알고 보니 현금 뭉치만 가지고 집에서 도망 나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피켓이 비에 젖어 글씨를 못알아보게 될까봐

코팅까지 했다고 하였다.


이 한 장면 만을 봐도, 할머니가 얼마나 억압적인 남편의 밑에서 살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웃음포인트.  세프가 남친인 제임스의 행동을 깔 때도 웃겼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제임스역의 배우는 영드 스킨스에서 크리스로 나온 배우 조셉 뎀시였다.


세프는 제임스가 청혼할 때 마치 “다아시처럼 말했다”고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제임스의 대사만 보면 매우 로맨틱한 청혼이었는데, 

세프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다소 재수 없게) 느껴질 만한 대사이기도 했다.


제임스는 마치 자기가 드라마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여친인 세프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세프 또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여행에서 만난 히피들을 술김에 차에 태워준다고 했으나

아침이 되자 급후회하는 세프.

세프는  휴게소에서 알렉스에게 히피들을 길거리에 버리고 가자고 말하면서 

저렇게 재능 없는 예술가 나부랭이로 늙어 죽을까봐 겁난다고 이야기한다.


세프는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인정해가는 법을 배우고 

알렉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계속 사람들을 밀어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녀가 왜 엄마와의 사이가 불편했는지는 십자가에 매달린 

알렉스의 고백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알렉스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알고 있어서 서로 불편함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프는 급한 연극 연습 때문에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아놓은 알렉스를 보고

너의 순교자 콤플렉스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거라며 깔깔대고 놀리기도 하지만

알렉스의 진심어린 고백을 듣고, 친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진지했고, 마지막까지 웃겼다.

(여기가 마지막 봉우리가 아니야?)


런던부터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등 영국 전역을 무대로 삼은 

<굿바이 마이프렌드>는 여성 콤비의 로드무비로도 손색없는 영화였다.


ps. 댄이 유언장에서 인용한 작가,  잭 케루악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킬 유어 달링>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길 위에서’라는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잭 케루악.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던 그의 젊은 시절이 영화속에 잘 드러나있다. 잭 케루악을 맡은 배우는 잭 휴스턴 


ps2. 영국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제임스가 청혼할 때 마치 "다아시"처럼 말했다는 극중 대사를 듣고 소환되는 영드. 


<오만과 편견>이 여러번 극화 되었지만, bbc 드라마판의 "미스터 다아시" 콜린 퍼스를 따라갈 자 있을까?

(심지어 동상도 세워졌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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