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인플루엔셜
우리동네 도서관에서는 어떤 책이 인기가 있을까?
도서관 대출베스트에 속한 책을 읽는, 월요일의 리뷰
<미움받을 용기>는 2016년 5월 한달 동안 중랑구립도서관, 죽전도서관, 용인중앙도서관, 안성시립도서관 등의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이 많이 대출한 책입니다.
1. 이 책은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구성되어있다.
보통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청년의 이야기에 공감이 될 것이다.
독자를 대변하는 청년, 작가(또는 아들러)를 대변하는 철학자.
청년과 철학자의 대립을 지켜보며 독자는 점점 철학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갸웃하면서 읽게 되었다.
2. 우선 이 책에 나오는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책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며 프로이드,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린다고 나온다.
우리에게는 현대심리학이라고 했을 때 프로이드가 제일 유명하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융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러는 낯선 심리학자였다.
인물소개: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0484&cid=40942&categoryId=40492
어떠한 경험도 그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얻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라고. (37쪽)
철학자: 프로이드의 원인론은 '소유의 심리학'이고 결국엔 결정론으로 귀결돼. 반면 아들러 심리학은 '사용의 심리학'이고 결정은 자네가 하는 걸세.
청년: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며 동시에 '사용의 심리학'이다....(140쪽)
프로이드의 트라우마를 반박한 아들러의 심리학은 흥미로웠다.
이론상으로는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 즉 트라우마를 통해 인격이 형성된다는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인과관계상 타당해보인다.
실제로도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또 다른 학대의 가해자가 된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하지만, 실제로 학대의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가 되거나 그 일로 인해 비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에는 글쎄.
강력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지라도 현실에서 그 영향력이 100% 발현된다고는 보기 힘들기에 프로이드 심리학에는 오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러또한 이런 이론으로 트라우마를 비판한다.
게다가 아들러는 또 하나의 이론을 덧붙인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네.(163쪽)
아들러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며 현재의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있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를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을지를 그리고 거기에 맞는 과거를 가져다가 이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프로이드의 트라우마에 의문을 가졌지만, 아들러의 이론에도 의문이 든다.
강력한 충격이 있었더라도 아무런 계기없이 오로지 용기 하나로 아무렇지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는 용기가 없어서 그래, 라고 비난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를 주는 것은 아닐까.
청년이 예시로 든 '과거의 충격으로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친구'의 경우에
철학자는 부모들이 망가지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길 바라는 목적을 위해 과거의 충격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물론, 청년의 친구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고 나를 괴롭힌 것을 반성하고 가해자도 괴로워하길 바라면서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다시 사회로 이끌수 있는 방법이 친구 스스로가 용기를 가지고 사회로 나오는 것이라면
다소 끔찍한 해결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이웃의 강력한 도움의 손길이 최고의 방법일 수도 있다.
혼자 이겨내지 못해도 나약한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3. 트라우마와 마찬가지로 아들러는 교육관에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의견차이를 보인다.
현재 우리는 사교육의 과잉시대를 살고 있다고해도 무방하다.
20년 전만 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으며, 초등학교부터 수능을 준비한다는 말이 들린다.
평소 배우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리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지 않아.
그런데, 우리 아이만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그런 학습 분위기를 거스르고 우리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이 앞서나가는 모습, 우리 아이가 뒤쳐지는 모습을 보고도 아이의 현재 행복만을 바랄 수 있을까?"
라고 이야기를 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는 어쩔수 없이 부모가 능력있는 사람이 된다.
2~30년 정도 먼저 겪은 여러 경험들이 부모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길잡이 역할은 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들러처럼 아이의 과제/부모의 과제라고 선을 나눌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아들러의 이론은 옳다.
아이와 부모의 선을 분명하게 하고 아이에게 스스로 하게끔 하는 것.
이론으로는 완벽하다.
그러나 과연, 이 이론이 현실에서 적용이 가능할까?
4. 아들러는 행복을 공동체속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이 일을 할 때 발휘된다고 말한다.
여기에도 의문이 든다.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미래의 목표를 가지는 것에 아들러는 회의를 품고 있는데,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삶을 행복하지 않다고 낮춰서 볼 수 있을까?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에서 조차 수평관계를 유지하라는 이야기는 특히 공허하게 느껴졌다.
5. 많은 이들이 공감했을 책이지만 비판적인 시선으로 읽혀졌다.
그러나 열등감과 열등컴플렉스에는 공감을 했다.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105쪽)
다른 이들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열정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으니까.
열등감을 나쁘게 활용해서 열등컴플렉스가 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순기능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을 움직이지는 못해. 하지만 주관적 해석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가 있지. 우리는 주관적은 세계에 살고 있네. (89쪽)
결국, 아들러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더라도
미움받을 수도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라 말한다.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지말고 자유를 가져라.
뜬금없게 느껴지는 가르침이지만,
아들러가 말하는 모습으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자유로운 삶.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