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Jun 24. 2016

[달.쓰.반] 20편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인천

한국근대문학관 특별전시- 윤정미 사진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20

오는 7월3일까지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는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 윤정미 사진전>에 다녀왔다. 

사진전 도록 


<B사감과 러브레터>

- 현진건


켜진 전등불 아래, 침대 위에는 기숙생들에게 온 소위 러브레터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고, 알맹이 편지지도 널려 있는 가운데 B여사가 안경을 벗은 근시안 얼굴로, 누구를 끌어당길 듯이 두 팔을 벌리고 키스를 기다리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의 모노드라마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편지지 한 장을 얼굴에 문지르며 “정 말씀이야요? 나를 그렇게 사랑하셔요? 당신의 목숨같이 나를…….” 이렇게 뇌까리는 음성은 울음 가락을 띠었으니 더욱 모를 일이다. 세 처녀는 저마다 한마디씩 소곤거렸다. “에그머니, 저게 웬일이야!” “어마, 미쳤나 보아.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을꼬.” “에그 불쌍해!” 그러는 그녀들도 때 모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날개>

- 이상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을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근따근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 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되지 못한 명예싸움, 쓸데 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 적으니……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회(會)뿐이 아니라, 회사이고 조합이고……우리 조선놈들이 조직한 사회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 보겠다고 애도 써 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오발탄>

- 이범선


뭐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숯덩어리 같은 것이 꽉 목구멍을 치밀었다.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 같았다. 

하품을 하고 난 뒤처럼 코 속이 싸하니 쓰리면서 눈물이 징 솟아올랐다. 철호는 앞에 있는 커다란 유리를 콱 머리로 받아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어금니를 꽉 맞씹었다. 찌르르 벨이 울렸다. 

덜커덩 전차가 움직였다. 



 <운수좋은날>

- 현진건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전시 사진과 관련 있는 문학 작품 

중, 고등학교 국어시간이나 문학 시간에 한번쯤 읽어보았던 근현대 소설들. 

중간, 기말고사나 수능시험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달달 외워야했던 시대적 배경과 상징. 

솔직히 성인이 된 이후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근현대 소설을 

다시 읽거나 들여다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운수좋은 날의 김첨지가 조선의 "츤데레" 원조격이라는 여담도 있었지만

(여자의 경우는 동백꽃의 점순이 되시겠다)


재미있는 해석이라고만 여겼지

소설 전문을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문학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기획전시실에 특별 전시된 사진까지 감상하니 

자꾸만 그 오래된 문장들이 생각났다.

                                                    



                   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날개)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강신애의 젊은 느티나무)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19편 영화 속 배경(가상)도시와 인공지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