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파인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술사 Jun 28. 2016

[M.M.C] 16편/내가 죽인 소녀/하라 료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네 가지 시선 3

 Madam Mystery Cabinet No.16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네 가지 시선 3.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장편소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권일영 옮김     


아이가 사라졌다.

실종은 아니다.

유괴다.

유괴범이 몸값을 제시했다.

자, 이제부터다.

무사히 몸값을 주고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마비된 머리라도 굴려보자. 지금까지 몸값을 요구한 유괴극에서 살아 있는 아이를 돌려받은 경우는 얼마나 되는 걸까? 절망적인 연구 결과가 있더라도 일단 아이는 살아 있을 것인가? 내 아이만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유괴범은 경찰은 물론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를 유괴당한 집엔 의례 경찰이 함께 있다. 게다가 유괴범의 이 요구를 같이 듣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도 아이는 살아 있는 것일까?

  유괴범이 요구한 데로 몸값을 가지고 나간다.

장소는 번잡하고 잠복 중인 경찰은 어설프다. 아이는 살아 있을까?


  이 작품은 사립탐정 사와자키의 1인칭 시점이다.

『내가 죽인 소녀』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은 작품의 절반만 관통하는 제목이다.

니시신주쿠에서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와자키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의뢰 내용은 평범한 것이었다. 가족문제 상담. 하지만 사와자키를 기다린 상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사와자키는 졸지에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 납치범이 되어 있었다.  

  사와자키 역시(『가라, 아이야, 가라』의 탐정 켄지, 제나로와 마찬가지로) 아동 유괴사건을 맡고 싶지 않다. 이런 사건은 경찰의 조직력과 정보망이 더 낫다. 그래도 이미 유괴사건에 연류 되었다.(유괴범이 사와자키를 끌어들였다.) 그가 이 사건에서 완전히 빠질 순 없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선택한 것은 아이를 찾거나 유괴범을 쫓는 일 대신 의뢰인의 자식들이 이번 유괴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었다.  

  사와자키가 의뢰인의 자식들을 만나는 장면을 쫓지만 집중할 순 없다. 아이는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 ‘사야카’

 집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가던 중 납치되었다.

 납치범은 현금 6천만 엔을 요구했다.

 몸값 전달을 사와자키에게 시켰다.

 사와자키는 몸값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아이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런, 아이가 죽었다. 이제 남은 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하고 죽였는가!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말했다.


 “자네도 알고 있을 테지만 이 나라에서 유괴 사건 - 특히 어린이 유괴 사건 대부분은 피해자의 근친자나, 친척, 지인이나 친구 혹은 피고용인 등이 저지르지.” p280
 

 이 때도 우리는 믿고 싶어 진다.

  내 아이만은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어긋났다. 그래도 내 가족 중에 혹은 지인 중에 범인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아이를 잃은 부모와 가족의 시선 대신 1인칭 탐정의 시선이 더 압도적이다.

  억울하게 사건에 끌려들어 불평을 한 바가지 쏟아내도 될 법한데 탐정 사와자키는 잘도 견딘다. 냉소적이고 언뜻 차가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도 사람들에게 따뜻하다. 그의 이런 따뜻한 마음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이 비극적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또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가라, 아이야, 가라』 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조직 속의 개인을 다루었다면 이는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조직 안의 개인을 다루었다. 어쨌든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만큼은 같다. 두 작품 모두 지독한 이야기다.

 P.S: 탐정 사와자키는 필립 말로보다는 덜 무례하고 덜 과격하다. (일본이라는 사회 배경 탓이리라.) 그렇다고 사와자키의 말투가 사근사근하다거나 정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짝 무례한 정도. 그래도 괜찮다. 니시신주쿠의 낡은 빌딩으로 그를 찾아가고 싶다. 단 사건의 의뢰인으로는 말고. 무작정 찾아갔다 문전박대나 받을 가능성이 많지만. 인사라도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쓰.반] 20편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인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