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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01. 2016

[달쓰반] 22편 오를랑 테크노바디展&영화 서프러제트

여자는  제2의 성이 아니며 남성의 시선과 규범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다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22

※ 주의 : 이 리뷰는 <오를랑 테크노바디> 전시회와 영화 <서프러제트>, 그리고 영드 <셜록: 유령신부>의 

주요 관전 포인트(엔딩씬 포함)를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당대에 통용되던 "여성성"은 자신들이 제1의 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들에 의해 강요된 사회, 문화적 규정일뿐이라는 비판이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던 때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영화제 등 각종 시상식에서 항상 "남자"들이 먼저 호명되어도, 가나다 순서에 의해 그런 것이겠지, 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항상 남자 배우들이 호명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여자는 남자, 그 다음으로 순서가 밀리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있든 인식하고 있지 못하든. 최근 관람한 전시회와 영화는 모두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먼저,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월2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오를랑 테크노바디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를랑은 유전자가 정한 신체의 차이를 거부한다. 또한 그녀는 남성 중심적 사회, 서구 중심적 세계관에 반발한다.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 


오를랑의 저항 정신은 윗 작품에서도 현저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서 "프레임"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여성"이라는 프레임일 수도 있고, "예술가"라는 프레임일 수도 있다.


오를랑이 1976년 파리 아트페어에서 벌인 <예술가의 키스> 는

서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성녀 혹은 창녀라는 이분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퍼포먼스였다.

당시 그녀는 직접 살아있는 "키스 자판기"가 되었다.

관람객이 입구에 동전(5프랑)을 넣고 오를랑과 키스를 나누는 동안 키스는 그녀의 성기에 모이게 된다. 

이 퍼포먼스는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낳았고, 오를랑은 당시 그녀가 몸 담고 있던 미술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퐁피두센터는 <예술가의 키스>(1977)를 ‘20세기의 걸작 100’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분노 측량 퍼포먼스> 


<분노 측량> 시리즈 또한 오를랑이 남성 중심의 사고관에 반발하여 벌이는 퍼포먼스이다. 

오를랑은 <생 피에르 미술관>, <앤디 워홀 미술관> 등 남성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서

자신의 몸을 단위로 한 측량 퍼포먼스를 벌였다. 

자신의 몸을 직접 측량 단위로 사용한 것은 인치나 피트 등 남성의 신체 규격(키, 팔꿈치 등등)에 맞춰 정해진 

측량 단위를 거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퍼포먼스 영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여성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과연 얼마나 있지?"라는 것이었다.

겨우 떠오른 것이 프리다 칼로 미술관? 물론 내가 무지하여 다른 미술관들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의 이름을 딴 미술관들은 주저없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성이 예술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얄팍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까미유 끌로델은 언제나 로댕과 묶여서 언급되고, 프리다 칼로 또한 언제나 디에고 리베라와 세트로 묶여 다니지 않던가? 



위 작품의 제목은 <깊은 곳을 생각하는 순결한 동정녀>. 오를랑은 종교의 권력을 남성의 권력을 동일하게 여기고 종교적 도상을 희화화 시켜 패러디하였다. 위 작품은 언뜻 보기에 성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지만, 싸구려 천이나 재료 등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아 종교에서 강조하는 "신성함" 혹은 "장엄함"을 정면에서 조롱하고 있다. 

<성형 수술 퍼포먼스>를 통해 오를랑은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총 9회에 걸쳐 오를랑은 성형 수술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전신마취가 아닌 국부 마취의 방법을 택하였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오를랑은 "자신이 신체의 주체"이며 "몸은 단지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명백히 공표하였다. 오를랑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내 작품은 신체에 가해지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압력에 대한 질문이다." 

오를랑 테크노바디 전시회가 여성의 "몸"에 관한 근원적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영화 <서프러제트>(6월 23일 개봉)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와 "사회 참여"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상영관인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의 객석은 거의 꽉 차 있었다. )



언젠가 회사의 남성 동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이야. 그래서 여자들이 만든 결과물을 보면 

통찰력이 느껴지지 않아. 여자들은 그저 퇴근을 빨리 할 생각만 해. 남자에 비해 책임감도 없지"

당연히 나는 이 말에 반발하였지만, 그 남성 동료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어보였다.


영화 <서프러제트>에 묘사된 남성들의 입장 또한 위에 언급한 동료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자들에게 그들은 여자들은 그저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의 의견을 따르면 될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배경은 1912년 영국 런던이다. 당시 영국의 국왕은 조지5세였다. 

그런데 우리가 영국의 전성기라고 알고 있던 시대는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고 자부하던 그 시기는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였고, 그 이후에도 빅토리아 여왕 등 오랜 세월, 여왕의 통치가 있던 나라가 아니었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왕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 라는 입헌 군주제 원칙이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여왕은 국가의 상징 같은 존재 아니었던가? 여왕이 존재한 나라에서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버리는 모습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아니면 여왕과 여자는 아예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서프러제트>의 엔딩씬에서는 여성의 참정권 역사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준다. 1983년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이후  1920년에 미국에서, 1928년에 영국에서, 1946년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 참여 권리를 요구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T.메리쿠르와 R.라콤브가 국민의회에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회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렇게 시민 대혁명이 일어난 나라에서조차 여성의 사회 참여 권리는 약 백여년이란 세월 동안 탄압 받아야만 했다.

 

1918년, 영국 정부는 서른 살 이상의 특정 여성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다. 여성 모두가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뒤인 1928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비록 불완전한 것이긴 하지만, 여성이 첫 선거권을 갖게되는 1918년 이전의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남성(사장 또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던" 세탁부 모드(가상의 인물)이다.

그런데 모드와 남편이 대화할 때 자막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남편 소니(벤 휘쇼)은 반말을 하고, 아내인 모드(캐리 멀리건)는 존댓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입된 영화를 보면 자막 상에서 거의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여자는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존댓말을 한다. 우리나라의 TV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아내보다 연상인 경우가 비교적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는 존댓말이 없다고 들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권력 관계나 나이 등에 따라 상호 간의 어휘나 문장이 달라지고, 이것이 경어와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유심히 보았던 것은 부부 간의 대화였다. 동갑 혹은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 사이(혹은 여성이 연상인 경우를 포함하여)에서도 남자는 거의 반말을 하고, 여자는 존대를 한다. 이것은 그동안 계속 지적되어 왔던 남녀불평등 사례였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모드는 영화 초반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니 자막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중후반부에 이르면 모드는 아들 조지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입양보내는 남편에게 격하게 화를 낸다. 이때의 자막은 반말이다. 하지만 반말은 그때뿐이었다. 모드는 다시 남편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자막 상에서)


나는 모드가 영화 초반에는 (자막상에서) 존댓말을 하다가, 영화 중후반부에 이르면 반말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디스(헬레나 본햄 카터)의 남편은 아내의 활동을 지지해주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이디스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편은 이디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반말을 한다. 

이렇게 이 영화 속 모든 부부들은 (자막 상으로) 대화 할 때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사용한다. 

이런 지엽적인 부분들이 영화를 아쉽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논하는 영화에서 

남자(남편 뿐만 아니라) 는 여자에게 모두 반말을 하고, 여자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자막이 

과연 지엽적인 것일까?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자막이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는 있다. 

(아니면, 정말 영국의 영어에는 "존댓말"에 해당하는 표현이 있는 것일까?)


이 영화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고, 늘 여성들에게 고압적인 행동과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남성이 시키는 대로" 살아오던 모드가 이젠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투쟁을 선포하며 여성 참정 운동가인 "서프러제트"로 거듭난 순간 이후에도 자막은 남편 소니에게 계속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아시아, 흑인 여성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이 운동에는 백인 여성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서프러제트의 리더 팽크허스트(메릴 스트립)가 연설하는 집회씬을 보면 모두 백인 여성들만 보인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팽크허스트의 말 때문이다. 팽크허스트는 저서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서 "인류의 절반이 자유롭지 못할 때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영화 속에서도 모드는 말한다.

"인류 절반의 손을 묶을 수는 없어요. 우린 끝까지 싸울 겁니다. 

남성들이 만든 법을 내가 지킬 의무는 없어요."

영화 말미,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경마장에서 "VOTE FOR WOMEN"이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국왕의 말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은 실화였다. 이후 전 세계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고, 

1918년 영국의 일부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는 설명이 영화에 나온다. 


비록 불완전한 것이긴 해도, 영화 속 모드가 주장한 것처럼 

여성들은 "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 "자신들의 대표를 의회에 내보낼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ps.  올해 1월 극장 개봉을 한 <셜록: 유령신부>는 영국 BBC의 인기 드라마인 <셜록>의 신년 에피소드로 방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스페셜 에피소드에는 KKK단(백인우월주의 집단)와 비슷한 복장을 하는 묘령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셜록:유령신부>는 서프러제트를 KKK단과 유사한 존재로 묘사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셜록:유령신부>에는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서프러제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른바 맨스플레인(남성이 여성들을 자꾸 가르치려드는 것) 논란을 낳았던 <셜록:유령신부>와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서프러제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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