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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15. 2016

[달.쓰.반]24편/오페라연극<맥베스>

오페라+연극,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24

※ 주의: 이 리뷰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캐스팅 보드> 


오는 7월 2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연극 <맥베스>를 보고 왔다.

처음 오페라연극, 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는 좀 의아했다. 

오페라면 오페라고, 연극이면 연극이지

연극과 오페라의 결합이라니? 

연극은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오페라"는 딱히 내키지 않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대중성 높은 음악에 기반을 둔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오페라"의 첫 만남은 사실 썩 좋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식 다음날 쯤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좀 일찍 끝낼 테니 학교 인근에 위치한 

문화회관의 대극장에 가서 창작 오페라를 관람하고 오라고 했다.

갑자기 웬 오페라? 알고 보니 모교 출신의 위인을 소재로 만든 창작 오페라여서 

총 동문회의 후원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오페라는 너무 지루했고

(도통 노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고리타분한 오페라 관람에 쓰느니, 

길거리에서 쇼핑하는 게 낫겠다 판단한 나와 친구들은

우리를 인솔한 선생님의 눈을 피해 도망쳐버렸다. 


다행히 오페라 땡땡이는 별 문제 없이 넘어갔지만, 중간고사 시즌이 되자

이번에는 음악 선생님이 유명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 아리아를 시험 문제(일명 클래식 음악 듣기 평가)에 

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2000원짜리 테이프(음악선생님이 직접 편집한)를 사서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마술피리>의 "지옥 같은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바로 성악가 조수미씨의 쥬스 CF에 나오던 그 노래!)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

등의 오페라 아리아를 귀가 닳도록 들어야만 했다.

(솔직히 성악가들이 이상한 언어로 

고음 대결만 하는 것 같은 아리아를 한달 가까이 듣고 있자니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당시 음악시험에서 

몇개의 아리아를 맞추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워낙 막귀였인 탓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오페라와 

조금 친해진 계기는 바로 라 트라비아타 내한공연이었다.

그나마 라 트라비아타는 아리아 신경 안 쓰고, 줄거리 위주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한편의 고급 막장 드라마(무대와 의상이 좋았다)를 감상하는 듯한 짜릿함에 반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축배의 노래"와 같은 유명 아리아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어 가사, 혹은 프랑스어 가사로 된 오페라의 아리아는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페라연극 <맥베스>의 아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한국어 가사로 공연된다.

그리고 무대 위의 스크린으로 가사 자막을 띄워주기까지 한다.


고등학교 때 관람하였던 창작 오페라도 한국어 가사로 공연되었지만, 

당시 내 귀엔 들리지가 않았다. 성악가들이 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알 턱이 없으니 재미가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연극 <맥베스>는 소극장에서 진행된데다가

좌석이 맨 앞줄이었고, 가사까지 스크린 위에 흐르고 있어서 

성악가의 아리아를 감상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관람하고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연희단 거리패의 <리어왕>과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밤의 꿈>은 

아직까지 내 인생연극 베스트 1,2위로 손꼽는 작품이다.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서 영국의 국립극장 연극 무대를 이원 생중계한 

NT 리어왕도 매우 즐겁게 관람한 기억이 있다.))


올해(2016년)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으로, 

이를 기념하는 공연들이 속속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사실, 공연이 시작될 때  깜짝 놀랄 뻔 하긴 했다.

세 마녀 역할을 맡은 배우 중 한 명이 내 동행인의 바로 옆좌석에 앉아 

무대의 막이 오르길 조용히 기다리는데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곧이어  공연이 시작되고, 세 마녀가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등장하는데, 

순간, 내가 공포연극을 보러 왔나 착각할 정도로

무서운 분위기였다. 당연히 마녀 역할을 여자 배우가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대 위에 등장한 마녀들은 모두 남자였다. 

세 마녀 중 한명과 내 눈이 마주쳤고, 제발 객석으로 내려오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으나, 마녀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서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귀에는 마치 이 곡이 저주의 노래처럼 들렸다.)


세 마녀들의 기에 짓눌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즈음 

무대 위에 스코틀랜드의 영주 맥베스와 뱅쿠오 장군이 등장했다. 


그리고 세 마녀들은 맥베스(윤국로)와 뱅쿠오에게 예언을 한다.

맥베스에게는 글래미스와 코더의 영주, 그리고, 이 땅의 왕이 될 것을

뱅쿠오에게는 비록 왕관은 쓰지 못하나 왕관을 쓴 자들의 아버지가 될 것을.


맥베스는 내가 글래미스의 영주인 것은 맞지만 

엄연히 코더의 영주가 살아있고, 왕이 계시거늘 어찌하여 

불경한 말을 입에 올리느냐며 마녀들을 꾸짖지만,


곧 왕의 전갈이 도착하고,

맥베스가 반역으로 처형된 코더의 영주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알리자,

흔들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맥베스 역할을 맡은 성악가(바리톤 권한준)이 등장하여,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한다. 

맥베스의 아리아는 그의 내면에 감추어진 진심을 관객들에게 

비추어주는 "언어"이다. 


맥베스는 세 마녀를 만났던 일을 아내 레이디 맥베스(서지유)에게 알리고,

레이디 맥베스는 사내답게 왕관을 가지라며, 맥베스를 부추긴다.

레이디 맥베스의 아리아는 소프라노 이경희씨가 맡았다. 


이날, 무대에서 불려진 12곡의 아리아는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에 나오는 곡들이라고 한다.


무대 왼쪽에는 피아니스트 이윤수씨가 

공연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건반을 두드리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2부에서는 마녀들의 등장에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폈지만, 여전히 그들의 포스는 강하였다.


덩컨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맥베스는 왕좌를 빼앗길까봐 불안해 하고, 

(그래서 마녀와 함께 예언을 들었던 뱅코우를 죽이기까지 한다)


세 마녀들에게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버넘숲이 던시네인 성으로 올라오기까지는 

결코 전투에서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받는다.

또한 세 마녀들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절대 맥베스를 이길 수 없으리라, 고 예언한다.


그리고 맥베스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는 왕비가 된 후 몽유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 노인(덩컨왕)의 피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는 연기가 압권이다.


맥베스는 왕비가 죽었다는 이야길 듣고,

그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좀 더 있어야 죽었어야 했다.
그런 말이 잘 맞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중략)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뽐내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로 가득찬 백치의 이야기일뿐.

(무대에서 맥베스가 하는 독백은, 

공연마다 조금씩 버전이 다르고,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그날 배우가 했던 대사를 100%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다)


맥베스의 폭정에 항거하여

맥더프가 잉글랜드의 도움을 받아 진군해오고, 

이 소식을 들은 맥더프는 세 마녀들의 예언을 떠올리며

자신만만해 하지만,


맥더프는 자신이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배를 가르고 나왔다며, 맥베스를 비웃는다.


맥베스는 패배를 예감하지만, 

애송이 맬컴(맥베스를 피해 도망간 덩컨왕의 아들)의 발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걸하느니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아리아를 부르고

무대의 막이 내려진다.


이날 공연은 연극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과 동시에 

한글로 된 아리아를 

호소력있게 전달하여 준 성악가들 덕분에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폐부를 찌르는 듯 하다.


만약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왕위를 탐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랬더라면, 그들의 이름이 

무대 위에서 기억되지도 않겠지. 


저스틴 커젤의 영화 <맥베스>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왕위에 대한 욕망

(여기에는 자신의 손이 끊길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포함되어있다. 즉 거세에 대한 불안이 왕위에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것)을

교차 편집하여 전달하고 있다면, 


오페라연극 <맥베스>는 왕위에 대한 욕망에 

오롯이 초점을 맞춘듯 하다.

욕망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맥베스의 불안이 제일 고조되는 연회 장면에서는 

차마 보고 있기가 안 쓰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 

치고 들어오는 고음의 아리아는 극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이렇게 불안에 떨면서 사느니

차라리 살해 당하는 신세가 낫겠구나, 라고 읊조리는 

레이디 맥베스의 대사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Ps.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

닥터후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데이비드 테넌트는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 출신의 배우이다.

(데이비드 테넌트는 올해 4월 영국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추모 생방송의

사회를 맡기도 하였다.)


영상화된 햄릿을 보고 싶다면 

그가 햄릿으로 분했던 공연의 DVD를 추천한다.

2008년, 데이비드 테넌트는 햄릿으로 무대에 올라 호연을 펼쳤다고 한다.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면, 세기의 명 배우이자, 비비안 리의 두번째 남편으로도 유명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1948년)도 있다.

이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는 제21회 오스카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받았고 

감독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헐리웃 배우로도 이름이 높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가장 완벽히 재현했다는 칭송을 들을 만큼, 매우 뛰어난 연극배우였다.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연극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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