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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19. 2016

[M.M.C] 19편/산자와 죽은자/넬레 노이하우스

 Madam Mystery Cabinet No.19     

 

  넬레 노이하우스 장편소설 / 김진아 옮김

       산자죽은자

         Die Lebenden und die Toten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내가 직접 나서지 않을까?

  내 가족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가해자들이 교묘하게 법을 피해간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오히려 법이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면?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고’ 싶을 것이다.  

멀리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정의’는 응보적일 때 정의답지 않을까? 가해자들이 당한 만큼 똑같이 돌려주고 싶을 것이다.

  누구나 사적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나선다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진공상태가 될 것이라고 나에게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것은 당신이나 신경 써!’라고 일갈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늘 이런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미스터리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만만찮은 사회문제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타우누스 시리즈: 독일 타우누스 지방 호프하임 경찰서의 보텐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가 주인공인 시리즈 >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깊은 상처]였다. - 조만간 꼭 리뷰를 올리고 싶다 - 『산자와 죽은자』 도 그에 못지않게 날카로운 문제를 다룬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아침 조깅을 하던 노부인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총알이 관통하면서 오른쪽 얼굴이 박살 났다. 2주간의 휴가를 앞둔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는 결국 이 사건을 시작으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피해자가 늘어나고 독자는 피아, 보텐슈타인과 함께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함께 고민하며 함께 뛰어다닌다. 여름인데도 나는 추웠다. 12월 독일 헤센 주의 타우누스 지방은 가보지 않았어도 추울 것 같았다. (서울의 겨울도 만만치 않지만 어째 더 그래 보였다.) 주인공들보다 유리한 점은 가끔씩 등장하는 범인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시점만 나오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야 밝혀지지만 그래도 어딘가? 그럼에도 답답했다. 피해자들의 연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더디지만 하나 둘 밝혀지는 내막


  책장을 덮고 나면 첫 문장에 언급했던 고민이 깊어진다.



  또 하나! 장기 기증을 신청해 둔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의구심은 남는다. 개인의 선한 동기든 의지든 어떻게든 이용 당 할 수 있다는 사실. 특히나 2016년의 한국 사회라면 말이다. 결국 바꿔야 하는 건 ‘구조’가 아닐까?

  서늘하고 슬픈 작품이었다. 주인공들이 범인을 놓쳤을 때는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범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는 없다. 용서 또한 힘들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안타까웠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훈훈하게 이어졌지만 안타까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P.S: 작품 초반 범죄 현장에 등장한 아줌마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살인사건 현장 주위를 통제한 경찰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는다. 통제선 안에 놀이터가 있어 자신의 아이들이 놀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순경이 막자 통제선 밑으로 유모차를 들이밀었다. 피아가 나서자 신체활동의 자유를 들먹거리며 난리를 피웠다. 마지막엔 자신의 남편이 내무부에 있다면서 민원을 넣겠다며 항의했다. -

  이곳이나 저곳이나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일까? 독의 어려운 지명과 인명이 새삼 가깝게 느껴졌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다 보면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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