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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22. 2016

[달.쓰.반] 25편/부산에서 외치는 독도는 우리땅

안용복 기념 부산포개항문화관 상설전시/ 부산포 개항가도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25

최근 헤이그의 국제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중국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 노력을 통해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번 판결이 독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일까?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1906년, 일본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시네마현으로 강제 편입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이 영유권을 갖고 있었던, 명백한 우리 국토였다.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에서  안용복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는 조선땅'임을 알리고, 일본 막부로부터 공식적인 문헌을 받아내

이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안용복은 일개 어부의 신분으로 외교관 역할을 해낸 것이다.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간 도일선을 복원한 배 모형. 부산포 개항문화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부산포 개항문화관은 안용복이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세워진 듯 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의 통치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에 무단 침입하여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의 어부들은 종종 충돌하게 되었다. 1693년(숙종 19) 안용복과 동료 어부 박어둔은 일본 어부들의 무단 침입과 불법 고기 잡이에 항의하다가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땅임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안용복은 2번의 도일(渡日)사건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일본의 무단 국경 침입에 항의했다. (1차 도일은 강제적, 2차는 자발적으로 알려져있다) 

안용복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1696년 3월에는 32척의 배를 동원, 자칭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고 청하며 일본의 관리와 담판을 벌였다. 

약 6년간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 시비는 일본의 에도 막부가 죽도(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히는 공식 서계를 대마도에 통지하면서 종결된다.

하지만 조선으로 송환된 안용복은 비변사로 끌려간다. 비변사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최고의 통치 기구가 되었다. 그만큼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조정 입장에서는 일개 어민이 나라의 허락도 받지 않고 국경을 넘어 관리를 사칭하고, 외교와 국방에 해당하는 일을 임의대로 처리했으니 당장 죽여도 마땅한 놈이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숙종실록에 안용복의 처리 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 이미지 출처: 독도박물관 http://www.dokdomuseum.go.kr    )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3월 27일 무인 2번째 기사


"안용복(安龍福)은 법으로 마땅히 주살(誅殺)해야 하는데, 남구만(南九萬)·윤지완(尹趾完)이 모두 가벼이 죽일 수 없다고 하고, 또 도왜(島倭)가 서신을 보내어 죄를 전(前) 도주(島主)에게 돌리고, 울릉도(鬱陵島)에는 왜인의 왕래를 금지시켜 다른 흔단이 없다고 하면서 갑자기 자복(自服)하였으니, 까닭이 없지 않을 듯하므로, 안용복은 앞질러 먼저 처단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대체로 왜인의 기를 꺾어 자복시킨 것을 안용복의 공(功)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니, 임금의 뜻도 그렇게 여겨 감사(減死)하여 정배(定配)하도록 명하였다.


(내용 출처: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안용복은 남구만 등 소론 대신들의 만류로 사형은 면하고 귀양길에 오른다. 유배된 안용복은 이후 행적을 찾기 어렵다.  이 시기에 작성된 <비변사등록>에도 그에 관한 내용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안용복의 정확한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이 없으나 그의 호패에 적힌 기록을 바탕으로

부산시 매축지 마을에 그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걸었다. 

(매축지 마을은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 촬영 장소로 알려진 곳기도 하다.)


ps. 부산포 개항가도와  경사형 엘리베이터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은 부산포 개항가도에 위치하고 있다.

안용복 기념관 부산포개항문화관에서는 안용복에 대한 역사적 정보뿐만 아니라 

부산시의 지명에 대한 유래, 개항 시기 부산의 모습 등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개항문화관 맞은 편에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산복도로와 함께 부산항의 컨테이너와 바다 등 부산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는 증산공원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다.

최근 전국의 중, 고등학교가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 기간 동안 현장 학습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곳에 들러 영토와 국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 단재 신채호 

<간단히 알아보는 세계의 영토 분쟁 지역>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1. 지브롤터 (영국 vs 스페인)

                                   

스페인은 영국이 지브롤터를  해외영토에 편입시킨 것은 부당한 조치이므로 자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 포클랜드 (영국 vs 아르헨티나)

현재 포클랜드는 영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영국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82년 두 나라 사이에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다.


3. 카슈미르 (인도 vs 파키스탄)

                                                                                                      

                                  

카슈미르는 지리적으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이다. 현재 인도가 지배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최근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영유권을 주장하며 두 차례 전쟁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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