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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12. 2016

[M.M.C] 18편/제로의 초점/마츠모토 세이초

1958년 전후 일본 사회의 자화상.

 Madam Mystery Cabinet No. 18     

    

  제로의 초점 セ ゛ ロ  焦点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소설∥ 양억관 옮김      


 1958년 전후 일본 사회의 자화상.     

  

  솔직히 말하면 패전 후 일본 사회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없을 뿐만 아니라 갖고 싶지도 않았다. 내 나라가 겪은 비극과 참상에 쓸 시간도 모자란 판에 무슨. 일본이 우리에게 안긴 해악이 비단 ‘식민지 통치’뿐이랴. 고스란히 우리 현대사에 남아 구석구석 꼼꼼하게도 폐해를 안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 『은하철도 999』를 보았다.


  일요일 오전 9시, 장엄하면서도 구슬픈 노래와 함께 긴 경적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지금 보아도 어둡고 음울한 이야기를 어린 나는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일단은 예쁜 ‘메텔’을 보는 재미였겠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아빠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철이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와도 같은 ‘메텔’과 여행한다. 아직 어렸던 나는 이웃에 살던 사촌 언니한테 이 궁금증을 꺼낸 적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녀가 한 말을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던 같다. 어렴풋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일까?

  “전쟁에 져서 그래.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러나 몰라.”

  이런 비슷한 내용이었다.

  뒷말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언제까지 피해자 행세를 한다.’고 덧붙였던 것도 같다.


  훗날 만화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된 나는 친구들과 『은하철도 999』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일본 사회는 패전 후 지독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특히 ‘남성성’이 치명상을 입었다. 전쟁에 진 일본에 적국인 미군이 들어왔다. 상처받은 ‘남성’ 대신 ‘여성’이 일어섰다. 전쟁 중에도 그랬을 것이다. 모든 남성이 동원되었고 남은 여성은 생계와 육아와 전쟁 물품 보급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런 사정이야 한국전쟁까지 겪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남성’의 패배감이 더 심했다.

  『은하철도 999』 의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松本 零士)는 1938년생이다. 어린 시절 패전을 경험하고 전후 남성성이 위축된 일본 사회에서 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로의 초점』 보다 더 어둡다.



  1909년생인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가 그린 『제로의 초점』 속 사회도 패전 후 일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음울한 면에서는 확실히 『은하철도 999』 보다 덜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존재감이 미미한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남성들은 존재하지만 어딘지 흐릿하기만 했다.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을 보자. 먼저 주인공 이타네 데이코.

신혼여행 후 곧바로 남편이 실종된다. 맞선 상대와 결혼하여 아직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출장 가는 남편을 배웅한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데이코는 남편이 사라진 곳으로 떠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등장하지만 철저히 이방인이다. 물론 데이코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혼다. 그리고 살짝 수상쩍지만 겐이치의 형인 소타로까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의 주체는 데이코다. 테이코는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고 정보를 얻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사건을 이끌어 간다. 실종된 남편의 행방을, 이유를, 과정을 그리고 범인을. 그 가운데 패전 후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무로타 사치코가 있다.

데이코의 남편 겐이치의 거래처인 <무로타 내화벽돌> 사장의 우아한 부인.

 능수능란한 말솜씨와 명석한 두뇌, 그리고 곧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역을 사로잡은 명사. 데이코는 남편이 실종된 가나자와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치는 그녀의 모습을 부러운 듯 지켜보았다.


 다음은 남성이다.

데이코의 남편 우하라 겐이치. 1장에만 등장한다.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실종되기 때문이다.

 

 겐이치의 형인 우하라 소타로. 그는 동생의 실종 사건에 무언가 역할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 곧바로 힘을 잃고 만다.      

  

  겐이치의 직장 동료이자 데이코 옆에서 끝까지 힘을 보태줄 것만 같았던 혼다 요시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기대를 배신한다.      


  그리고 <무로타 내화벽돌>의 사장 무로타 기사쿠. 그는 일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알지 못한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움직였지만 너무 늦었다. 모든 일은 그의 손을 떠났다. 허공에 흔들어보는 그의 손짓은 무의미 해 보일 뿐이다.

 

  무섭게 파도치는 겨울 바다! 마침내 드러난 실종사건의 전모.

 데이코는 강했다. 검은 점이 되어 포효하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사치코 역시.


 

 미스터리 소설답게 속도와 집중력이 대단했다. 그러면서도 간결하고 말끔한 문장에 매료되었다. 한 시라도 빨리 뒷장을 읽고 싶었지만 나는 자꾸 멈칫거렸다. 책장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 짓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못했다.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살짝 끝부분에서 힘을 잃은 것도 같지만 1958년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근에 본 영화 [아가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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