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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Jul 26. 2016

[M.M.C] 20편/유년기의 끝/아서 C. 클라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끝

  Madam Mystery Cabinet No.20     

         

        유년기 

          c h I l d h o o d' s  e n d     

         아서 C. 클라크 지음∥정영목 옮김     

  

  감상적인 성장 소설을 기대했다.

  내가 무식했던 탓이며 SF소설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다 틀린 것은 아니었다. 주제가 ‘성장’에 대한 것은 맞을 수도 있다. 규모의 문제였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한 ‘개체’가 아니라 ‘전체’에 대한 것이라는.     

  내가 읽은 SF소설이라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가 전부였다. 원래 SF라는 주제는 규모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소설의 제목만 보고는 평소대로 규모를 ‘개인’으로 한정한다는 데 있다.

  초반의 실수를 만회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즉 규모를 확장시켰다. 인류 전체의 유년기가 끝장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다. 심호흡을 두 번쯤 했지만 반전은 기대 이상이었다. 195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을 2016년에야 본 나는 전반부부터 비명을 질렀다. 지금껏 보았던 많은 SF영화의 첫 장면이(지구 상공에 거대한 우주 선단이 떠 있는 장면) 이 작품의 오마주(hommage)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잠시 머리를 갸웃거렸던 장면도 있었다. 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경쟁 장면.

1953년이란 시간을 감안했기 때문에 이해는 했다. 나는 1953년이라는 시간을 한반도 위로 끌어왔다. 어쨌든 내가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제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휴전을 향해 가던 때. 3.8선을 사이에 두고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때. 경상남도의 한 작은 마을, 산속으로 피난 갔던 우리 엄마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때. 그때, 아서 C 클라크는 ‘오버로드’라는 외계의 종족이 지구의 하늘을 덮어버리는 장면을 그렸다. 그가 있는 공간은 영국.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의 패권이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가 버린 때에 말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조금 우울해졌다. 결국 미래에 있는 나는 시간의 유리한 점에 기대 보기로 했다.      



  2016년에서 적어도 몇몇 장면에는 작가의 상상력에 허점이 있길 바라면서. 1953년의 작품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작가가 전제하는 시간과 공간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지금의 우리 역시 진화의 산물이자 신인류였다. 따라서 언제가 되었든 우리 다음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살았다. 적어도 나는 늘 그런 희미한 불안이 마음속에 있었다.

 불안. 새로운 것에 대한 그리고 옛 것이 되는 것에 대한.      

  

  어느 날 내 아이의 모습에서 언뜻언뜻 과거의 내 모습을 볼 때 느꼈던 생경한 감정. 그것은 일종의 공포와 불안과 작은 환희였다. 이 작품은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게 해 주었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는 과거가 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애잔하고 쓸쓸했다. 또한 내가 죽어도 이어지는 생명체의 존재 때문에 무서웠다. 그 아이 역시 내가 걸어왔던 유년기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유년기의 끝’이란 개인적으로도, 인류 전제적으로도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유년기가 끝나야 청년이 된다. 따뜻할 것만 같았던 세상은 끝장난다. 유년을 마친 아이가 걸어야 할 길은 더 이상 가족과 부모의 품속이 아니다. 그것은 거칠고 부조리하며 때로는 부당한 곳일지 모른다. 부모와 가족이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그렇게 아이는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된다. 지구도 인류도 그럴 것이다.

 

P.S: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미래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2016/ 미국/ 잭 스나이더 감독

 


   그러니깐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배트맨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보았다.

151분의 러닝타임 동안 소름이 올랐던 장면. 영화 속 텔레비전 토론 장면. 한 토론자가 슈퍼맨의 존재에 대해서 했던 발언. 빈약하기 짝이 없는 내 기억을 동원하면 대충 이랬다.

  ‘슈퍼맨이란 외계 존재(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능력을 가진)는 지구에서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존재 가치를 너무도 보잘 것 없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의 타이틀을 맡은 배트맨은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대표하며 슈퍼맨과 대결한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우리의 미래를 막연하게 그릴 수 있었다. 아서 C. 클라크가 1954년에 그렸던 그 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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